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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60년대 서울시 주택형태의 변화

재건, 후생, 부흥, 국민, 외인, 희망 주택

대한주택영단은 1954년 안암동 개운사에 재건주택 49호를 지으면서 전쟁 후 집단주택지 건설을 주도하였다. 당시에는 건축자재가 부족했기 때문에, 흙벽돌을 주요 재료로 하여 1953년부터 1956년까지 서울에 총 3,000여 호를 건설했다. 전쟁 후 공영주택은 형태, UNKRA*와 UCA** 등 원조기관과 자금의 출처 및 목적에 따라 재건주택, 후생주택, 부흥주택, 국민주택, 외인주택, 희망주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대한주택영단이 건설한 연립주택의 시작은 청량리 부흥주택이다. 1951년과 1952년 사이 서울시로부터 청량공원의 일부 부지를 매입한 대한주택영단은 그곳에 주택지 조성을 위한 토지조성사업을 마치고, 1955년과 1957년에 각각 시영주택 204호, 영단주택 283호를 건설·공급하였다. 1958년 대한주택영단의 주택사업은 전환점을 갖게 되었다. 건축 전문가인 김윤기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주택의 계획과 설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55년부터 1961년 말까지 서울에 건설된 공영주택은 총 1만 7,137동이었다. 이 중 ICA주택이 6,487동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부흥주택 1,372동이었다.

[2000년대를 향한 서울시도시기본계획 (1990)] 대지역구분도
  • 대한주택영단 1941년 일제강점기 주택난 해소를 위해 설립한 특수법인이 해방 후 1948년 대한주택영단으로 개칭한다. 1962년 ‘대한주택공사법(법률 제3841호)’에 의거 대한주택공사로 개칭·발족하였다. 대한주택공사는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통합되어 ‘한국토지주택공사’로 이어지고 있다.
  • 부흥주택·국민주택 정부시책으로 산업 부흥국채 발행기금 또는 귀속재산처리 적립금 중 주택대금융자에 의하여 건설 및 관리, 분양 또는 확대하는 주택 또는 아파트상가주택 등을 말한다.
  • 재건주택 정부계획에 의하여 운크라(UNKRA, 국제연합한국재건단) 원조의 자재 및 자금으로 건설·관리하는 주택을 말한다.
  • 희망주택 부지와 공사비를 입주자가 부담하되 자재에 한하여 대한주택영단에서 배정·분양하는 주택을 말한다.
  • 외인주택 운크라(UNKRA, UN한국재건단) 원조의 자재 및 자금으로 건설·관리하는 외국인용 주택을 말한다.
  • 시범·시험주택 대한주택영단 자본 기금으로 지은 시범적 또는 시험적 주택을 말한다.
  • UNKRA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 1950년 12월 1일 국제연합(UN) 총회 결의 410(V)호에 의거, 한국의 부흥과 재건을 돕기 위해 설립된 기구를 말한다.
  • ICA 미국국제협력처(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1955년 6월 30일부터 1961년 9월 4일까지 존속했던 미국 정부기관으로, 해외 지원 및 비군사 안보 프로그램을 수행하였다.
  • 자료 출처 <서울 도시공간기록화사업 조사대상목록화 가이드라인제작 및 시범조사> 본보고서, 2020, 서울도시건축센터
지역 공영주택명칭 준공연도 공영주택 유형 지역 공영주택 명칭 준공연도 공영주택 유형
종로구 숭인동국민주택 1958 국민주택 용산구 이태원 외인주택 1955~60 외인주택
옥인동국민주택 1959 부흥주택 이태원 국민주택 1955~60 국민주택
중구 신당동부흥주택 1957 부흥주택 이태원 시범주택 1955~60 시범주택
서대문구 창천동재건주택 1957 부흥주택 이태원 시범주택 1955~60 시범주택
창천동 희망주택 1955 희망주택 성동구 행당동 희망주택 1956 희망주택
홍제동 부흥주택 1957 부흥주택 금호동 국민주택 1957 국민주택
홍제동 국민주택 1958 국민주택 성북구 안암동 재건주택 1954 재건주택
홍제동 희망주택 1955 희망주택 정릉 재건주택 1954 재건주택
불광동 재건주택 1956 재건주택 정릉 희망주택 1955 희망주택
대조동 재건주택 1957 재건주택 정릉 국민주택 1958 국민주택
대조동 국민주택 1958 국민주택 장위동 재건주택 1958 재건주택
북가좌동 국민주택 1959 국민주택 장위동 부흥주택 1958 부흥주택
동대문구 휘경동 재건주택 1954 재건주택 영등포구 신길동 국민주택 1958 국민주택
휘경동 희망주택 1955 희망주택 관악구 상도동 국민주택 1959 국민주택
회기동 희망주택 1955~59 희망주택 흑석동 국민주택 1958 국민주택
회기동 재건주택 1955~59 재건주택 흑석동 재건주택 1957 재건주택
회기동 국민주택 1955~59 국민주택 본동 국민주택 1959 국민주택
답십리 재건주택 1956 재건주택
이문동 재건주택 1956 재건주택
청량리 부흥주택 1957 부흥주택

1950년대 대표적인 공영주택 단지와 기록지도

불광동국민주택-60년대 불광동국민주택-15A-1평면도-15평 불광동국민주택-15A-1평면도-16평 이태원 외인주택지 현황도 외인주택 한남동 UN Village배치도 정릉재건주택 배치도 정릉재건주택단지 정경-1957 회기동 희망주택 배치도 회기동 희망주택단지-1977 청량리 부흥주택단지 배치도 청량리 부흥주택단지 전경

토지구획정리사업, 택지개발사업의 시기별 변화에 따른 변화 추이

서울의 주요 주택유형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변화하였으며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세분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1960년대는 도시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고, 국민주택으로 대표되는 표준형 단독주택의 보급을 통한 서울의 교외주택 확산시대이다. 1970년이 되어도 아파트는 전체 주택의 0.77%에 불과하고, 단독주택이 95.3%를 차지하고 있었다.
인구증가로 인한 주택부족의 문제가 심화되면서 서울시는 불량주택 정리의 일환으로 '공동아파트 건립계획'을 본격화하면서 시영주택 혹은 시민아파트가 건립된다. 1970년대 강남 및 여의도 개발과 함께 중산층 주택으로서의 아파트 건립이 추진되어 아파트지구 지정 및 대단위 아파트단지 건설이 추진된다. 1980년 이후부터 대단위 주거지개발을 통한 신도시개발이 추진되었고, 뉴타운을 중심으로 하는 광역 단위의 재개발사업이 추진되어오고 있다.

1960년대 주택형태 변화

토지구획정리사업, 택지개발사업의 시기별 변화에 따른 변화 추이

1960년대 주택형태 변화
  • 196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 서울시에서 토지구획정리사업이 가장 활발히 추진된 시기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이다. 1960년대는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추진과 더불어 신시가지 개발을 위해 토지구획정리사업이 20개 지구(6,367.4만㎡)로 크게 확대되었고, 70년대에는 14개 지구(4,965.0만㎡)에서 사업이 시행되었다. 1962년 이전까지는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라 단독주택 건설을 전제로 한 택지개발이 이루어졌다면 1962년에 도시계획법, 토지수용법 등 택지개발 관련 제도들이 정비됨에 따라 토지구획정리사업과 일단의 주택지조성사업에 의한 택지개발이 시행되었다. 이 시기의 택지개발은 화곡 10만 단지(‘65년) 등 단독주택 위주의 주거지들이 산발적으로 개발되었으나 정부의 시범적 정책에 의해 마포아파트(’61년), 동부이촌동 공무원아파트(‘66년, 한강아파트) 등 일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개발되기도 하였다.
  • 197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 이 시기의 택지개발 역시 토지구획정리사업법에 근거한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보완을 통해 단독주택지 조성 지역에도 아파트 단지 개발을 가능하도록 했다. 1975년 12월에는 아파트용지 확보를 위한 집단체비지 지정을 골자로 하는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의 개정이 이루어졌고, 1976년 1월에는 개발자에게 아파트단지 건설을 의무화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도시계획법상의 지역지구에 아파트지구를 추가하는 “아파트지구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를 통해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대부분 주거지가 아파트단지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강남지역의 개발과 함께 부동산 투기열풍 등으로 택지개발 및 주택건설 촉진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1977년 12월에는 주택건설촉진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새로운 택지개발의 근거법으로 자리잡았다.
  • 198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 투기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토지구획정리사업이 공영개발이라는 새로운 제도로 대체되었으며, 토지구획정리사업은 강동지구, 개포지구, 가락지구, 양재지구 등 5개 지구(1,454.1만㎡)에 한정적으로 시행되었다.
  • 1980년대 이후 택지개발사업 택지개발촉진법(이하 택촉법)의 제정으로 1970년대 후반에 활발히 추진되던 주택건설촉진법(이하 주촉법)에 의한 택지개발은 소규모 개발사업에서만 이루어지게 되며 대규모 개발은 주로 택촉법을 근거로 한 택지개발 후 주촉법에 의해 개별 단지들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정부는 택촉법 제정과 동시에 1차로 30개 도시에 1,000여만 평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하였고 1986년에는 수도권과 6대 도시에 구획정리사업을 억제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이들 지역에서 택촉법에 의한 공영개발사업이 신규 택지공급의 주요방식이 되었다. 이는 1988년 정부의 200만 호 주택건설계획의 추진과 함께 더욱 활발한 추진실적을 이루게 된다. 개포, 고덕, 목동, 상계, 중계, 수서, 수도권 5개 신도시 등 1980년 이후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개발된 대규모 주거지들은 대부분 택촉법을 근거법으로 하여 택지개발을 시행한 후 주촉법에 의해 개별 주거단지들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조성된 것이다.

대표적인 지구사업과 기록

신당-청량리지구 상계-중계지구 강동토지구획정리사업 잠실지구구획사업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