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사람들 : 기록행 INTERVIEW
서울링 VOL.1
청계천, 가난과 저항의 기록
- 최인기 빈민운동가·사진가 인터뷰 -

전국노점상연합회(현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이자, 30여 년간 청계천과 도시 빈민의 삶을 기록해온 사진가다. 1989년 청년단체의 문을 두드리며 사회운동을 시작한 그는 노점상 단체에서 30여 년간 활동한 빈민운동가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의 의를 전수받은 이 시대의 기록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동대문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내렸던 순간, 고가도로 위를 달리며 아래로 펼쳐진 판타지 같은 도시 풍경과, 도착한 월곡동의 판잣집 사이의 이질감. 그것이 그에게 심어준 '도시적 감수성'은 평생의 작업 주제가 되었다. 청계천은 그에게 어린 시절 어머니가 구멍가게를 하시던 삶의 터전이자, 보석세공 노동자로 일하며 계급의식에 눈뜬 곳이며, 30년간 노점상들의 저항을 함께하며 기록해온 투쟁의 현장이다. 카메라는 그의 또 다른 목소리다. 그의 사진은, 이제 한국 도시 빈민 기록사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 30년간 청계천과 함께 살아온 빈민운동가이자 사진가 최인기를 만났다.
보석세공사로 시작하여,
노동운동가로
그러다가 사진작가가 되셨어요.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뿌리를 찾아가면 어렸을 때부터예요. 제가 전주 살 때 우리 집 옆방에 살았던 분이 전주 팔각정에서 사진을 찍으셨어요. 예전에는 관광지에 사진사분들이 계셨잖아요. 그분이 사진을 찍고 작두 같은 걸로 자르고, 암막실도 있고, 빨래집게로 사진을 걸어놓고 그러니까... 그게 신기했어요. 어렸을 때 그걸 쳐다보고, 그분이 저한테 사진도 찍어주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중고등학교 때는 카메라가 너무 갖고 싶어서 올림푸스 카메라를 샀어요. 보통 24장인데 한 2배를 더 찍을 수가 있는 카메라였어요. 필름을 쪼개서 찍기 때문에요. 그거 가지고 다니면서 소풍 가서 친구들 많이 찍어줬어요.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한 것은 제가 청계천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제가 보석 세공 노동자로 일할 때, 그 일대가 예지상가 쪽이었고, 그쪽에 카메라 가게들이 있었어요. 중고 카메라도 팔고 당시 월급이 10만 원이었는데요. 월급을 받고, 카메라 가게로 달려가서 미놀타 카메라하고 SLR 주렌즈, 가방까지 한 번에 샀어요. 질러버린 거죠. 그거 가지고 여행 다니면서 사진 찍고, 20대 초중반 때 친구들이랑 제주도도 가고 광주 망월동도 가서 사진 찍고요. 많은 추억과 기록을 남겼습니다.
당시 부천에 살고 있었는데요. 영등포에 내려서 첫 차를 기다리면서 심야다방에서 비디오를 보면서 졸고 있었어요. 그런데 눈을 떠보니 카메라가 없어졌더라고요. 그때는 "아, 여기까지가 사진과의 내 인연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어요. 80년대의 일인데요. 만일 그때 카메라를 잃어버리지 않아서 지금까지 쭉 찍어 왔더라면, 저의 사진 인생도 좀 달랐을 텐데 아쉽네요.


그럼 언제 다시 사진을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그 후로는 쭉 잊고 지내다가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인도로 회의를 하러 갔어요. 국제 노점상연합 관련해서요. 그때 "카메라가 있어야 되겠다" 싶었어요. 그전에도 사무실에는 조그마한 일회용 카메라가 있었거든요. 단속이 있거나 분쟁이 생기면 카메라를 항상 꺼내서 찍어야 했어요. 일회용 카메라는 망가져도 덜 아깝잖아요. 제가 선전 쪽 업무를 맡다 보니까 신문을 내거나 하면 사진이 꼭 필요했고, 또 현장에서 분쟁이 생겨서 재판을 받게 되면 제가 찍은 사진들이 증거 자료로 많이 쓰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인도 갈 때 용산에 가서 캐논 10D라는 제품을 샀어요. 굉장히 튼튼한 제품인데, 그것도 월급을 다 털어서 샀죠.


그 전과는 사진을 찍는 동기와
의미가 완전히 달리진 거네요.
그 이후로는요?
계속 사진을 찍는데 뭔가 좀 변화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임종진 사진작가님한테 찾아갔어요. 한겨레 신문에서 사진 기자로도 활동하시고, 얼마 전에 SBS 〈꽃보다 청춘〉에 나왔던 그분이에요. 그때가 박근혜 정권이 막 들어선 그다음 날인가 다다음 날이었어요.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작가님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어요. "선생님께 사진을 좀 배우고 싶어요. 사진으로 마음도 위안도 갖고 취미도 하고 싶어요.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습니다." 했더니, 선생님이 "최인기 선생님이 사진을 찍으면 아주 유용하게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 한 번 같이 제대로 해봅시다."라고 하셔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배웠다고 할 수 있어요. 기술적인 것도 그렇고요. 현장에서 작가분들을 만나도 열심히 찍기 바쁘니까, 사진의 매커니즘에 대해서는 잘 몰랐거든요. 지금까지도 사진작가님들께 많이 물어보면서 찍습니다.
첫 전시는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리슨투더시티’라고 청계천 쪽에서 활동하는 박은선 대표가 "선생님 사진 너무 좋아요. 우리 전시 한 번 해요." 하더라고요. 상상도 못했던 일이죠. 전시는 예술가들이 하는 거 아닌가, 내 사진을 전시한다고 누가 보러올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을 왕창 드렸어요. 그 사진들을 추려서, 연세대학교 교내의 한 카페에서 열린 도시문제 관련 행사에 제 사진을 함께 전시했어요. 그 전시가 처음이었죠. 이후 박은선 대표가 텀블벅을 활용해서 사진집도 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또 첫 사진집을 내게 되었죠. 그 이후로 사진 찍는 사람으로 알려져서, 여기 저기서 사진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사람도 많아졌고요. 그때부터 계속해서 전시도 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 사진의 주요 배경이 되는
청계천에 대한 생각을
여쭤보고 싶은데요.
청계천이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의 도시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데가 사대문 안의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은 워낙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 도시잖아요. 그런 서울을 관통하는 하천이 청계천이거든요. 청계천만 잘 연구를 해도 한국의 도시 문화를 좀 엿볼 수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의 도시사, 그리고 개발의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어떤 양태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변화가 집약적으로 나타나고, 변화무쌍하게 전개가 되었던 곳이 청계천이니까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곳이죠.
청계천의 현재와 과거를
미래 세대에게 전달할 때,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앞서 말씀드린 한국 사회와 도시가 변화되는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그곳의 역사성을 기록으로 남기는 게 첫 번째예요. 그렇지만 대부분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저항, 이런 것들은 잘 들춰내지 않거든요. 근데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정부나 서울시나 도시를 기획하는 정책가들과 같이 만나서 실제로 청계천의 숨은 역사들을 이야기 나눠야 한다고 봐요. 충돌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야 제대로된 사회적 합의나 거버넌스가 이루어질 수 있거든요. 당사자들의 삶과 남겨지는 기록이 융합이 될 수 있도록 마주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것을 글과 사진으로 작업하는 역할이 저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기록원의 노트
최인기 선생님의 기록은 현장에서 마주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꾸준한 시도가 시간 속에서 어떻게 기록으로 자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말로 남기기 어려웠던 현장의 순간을 담아낸 작업이었고, 그 기록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당시 사람들이 어떤 시간 속에 있었는지를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이 지점은 서울기록원에도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단편적인 기록을 모으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현장에서 만들어진 목소리가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기록활동 주체가 남기려 했던 기록이 현장을 넘어 사회적 기억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