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사람들 : 기록행 INTERVIEW
서울링 VOL.1
사라져도 남는 것들:
- 청계천과 삼일아파트의 마지막을 기록하는 임승한 -

청계천과 동묘 일대를 걸으며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폐업한 정비소의 녹슨 간판, 재개발을 앞둔 골목의 풍경, 주민들이 떠나고 텅 빈 동네의 온기 없는 거리. 청계천 일대 중고차 시장과 정비소, 부품상들의 풍경. 동묘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오래된 자동차 카탈로그와 잡지들. 그는 이 모든 것을 찾아다니며 기록하고 보존한다. "나라도 남겨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20년 넘게 쌓아올린 그의 아카이브는, 사라지기 전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기록자의 책임감. 그것이 그를 매일 거리로 나서게 한다.
처음으로 아카이브를 시작하신건
자동차 관련 수집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원래는 제가 차가 주예요, 올드카를 좋아해서 그 분야에서 주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어서 청계천 주제랑은 조금 안 맞는데, 제가 오래된 걸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장되어 ‘오래된 것’을 분야로 찾아다니게 됐죠.
청계천과 삼일아파트를
처음 기록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사진을 찍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황학동 도깨비시장이 예전부터 있던 곳이어서 한 번 가보려 했는데, 마침 주변이 재개발되면서 시장이 사라지려 하더군요. 그 변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다닌 건 아니고, 건물과 철도에 관심 있는 친구가 있어서 함께 다녔습니다. 삼일아파트 내부 사진도 그 친구가 “들어가 보자”고 해서 촬영하게 됐죠.
당시 철거 중인 건물에 들어가
촬영하는 게 가능했나요?
지금처럼 철저하게 관리되던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철거 중인 아파트가 열려 있기도 했고, 들어가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직 퇴거하지 않은 주민도 있었고, 가게나 창고로 쓰는 공간도 있어서 정돈되지 않은 분위기였죠.


삼일아파트 내부 사진은
다른 기록자들과 비교해도 드물더군요.
특별히 내부를 촬영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네, 철거되는 아파트 사진을 찾아보면 대부분 외관만 있고 내부 구조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방향에는 무엇이 있고, 뒤돌면 어떤 풍경이 보이는지 등 공간의 구조를 알 수 있도록 촬영했습니다. 그 내용을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정리해 올렸습니다.
삼일아파트 외에도
기록하신 공간이 있나요?
네, 동대문아파트나 충정아파트 같은 오래된 건물들도 찍었습니다. 특히 충정아파트는 언론에서 언급될 때마다 제 블로그 방문자가 확 늘어나곤 합니다.
청계천과 동묘에 자주 가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청계천 일대에 중고차 시장이 있고, 정비소들도 많이 있었어요. 그리고 동묘 벼룩시장에 가면 옛날 물건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자동차 관련 자료도 그렇고요. 정확한 경로는 잘 모르는데, 제가 들은 얘기로는 사람들이 이사할 때 버리잖아요. 물건을 폐기하는 거 말고, 책이나 생활 물건들을 수거해 가는 사람들이 있대요. 그래서 그게 시간이 흘러 동묘나 청계천 일대 헌책방으로 가는 거 같아요. 아파트 보면 책 같은 거 묶어서 쌓여 있고, 좀 멀쩡한 것 같은 가전제품도 그냥 버려져 있고 하잖아요. 그것도 다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주기적으로 그쪽을 가요.
청계천을 기록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인상 깊은 인물이 있을까요?
당시엔 “없어진다”는 분위기가 곳곳에 감돌았어요. 도깨비시장이 사라지면 상인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청계 고가도로가 없어지면 교통은 어떻게 되나 하는 불안함도 있었죠. 저는 주로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었습니다. 물건을 버려둔 채 떠난 흔적들, 정리되지 못한 자리들. 남들은 “왜 그런 더럽고 버려진 걸 찍느냐”고도 했지만, 저는 그 안에서 묘한 ‘남겨진 감정’을 느꼈습니다. 제 공간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랄까요.


2000년대 초반과
2019년의 청계천을 비교했을 때
어떤 변화가 느껴지셨나요?
예전에는 삼일아파트나 주변 건물들이 2~3층 정도 남아 사용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밑 1~2층만 남겨 쓰고 있더군요. 건물 일부가 유지되고는 있지만,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땐 사람도 많고 활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상업적인 것만 남은 느낌이에요. 예전처럼 옛 물건을 찾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더군요.
황학동과 풍물시장을
비교하는 포스팅도 있었는데,
주로 어떤 물건을 찾으셨나요?
처음에는 자동차 관련 잡지를 찾았습니다. 한번은 1970년대 신문 스크랩 뭉치를 발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비슷한 자료를 찾아다니게 됐어요. 신문사에서 예전에 냈던 ‘보도 연감’ 같은 자료나 미니카, MD 플레이어 같은 물건들도 관심 있게 봅니다.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건 아니고, 지나가다 눈에 띄면 사는 정도입니다.
블로그는 언제 시작하셨나요?
2004년인가 5년, 4년일 거예요. 시작은 단순했는데, 그 시절에 싸이월드가 유행했어요. 남들 다 하는 거 하기 싫어서 블로그를 시작한 거거든요. 제가 그 시절 때 사진 같은 거에 조금 관심이 생길 때쯤이었기도 하고,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거를 좀 남겨보면 어떨까 처음에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거예요. 주변에 블로그를 이미 하고 계신 분들이 있었는데, 그분들하고 소통을 하려면 아무래도 블로그를 하나 만들어 놓으면 좀 낫겠다 싶어서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카이브를 구축하려는 의도보다는
개인 소장하려는 이유가
더 컸다고 하셨죠?
맞습니다. 처음부터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그저 사라지는 장소들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그 공간이 가진 감정을 남기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기록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카이브 형태가 된 것뿐입니다.
촬영하신 기록물을
혼자 갖고 있는 걸 넘어서
타인에게 공유하게 된 이유는 뭔가요?
그런 걸 찾는 사람들이 또 분명히 있을 거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으니까 한번 올려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제 블로그도 처음에는 오래된 건물과 같은 것을 별로 안 올렸었거든요. 그냥 제가 사진 찍어서 올리고, 막 멋있는 사진 하나 찍어놓고 밑에 문구 몇 개 적어놓고 그랬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관심 있어 하는 분들이 생기고 그런 거를 하는 사람들을 또 만나기도 하고. 그래서 이거 좀 소통의 수단으로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블로그를 전혀 안 하고 혼자만 싸고 있으면 저 혼자는 좋은데 발전이 없잖아요. 여기서 더 확장을 시킬 수가 없는데, 블로그는 그게 조금 쉬워요.
기록하길 잘했다고
생각하시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지금 이렇게 자료를 찾아볼 수 있을 때, 보고 싶을 때 그게 있다는 거요. 없으면 찾아보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찾아봐야 될지 막막하잖아요. 근데 저는 수집을 쭉 해왔으니까 뭐 한번 찾아보자, 여기 한번 뒤져보자 하면 대충 비슷하게 나오거든요. 그리고 반대로 제가 궁금한 것들도 찾을 수 있지만, 남이 궁금해하는 것들도 제가 대신 찾아줄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개인 기록으로 시작된 활동이
지금 공동체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처음엔 제 취미일 뿐이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보니, 누군가에게는 ‘그때의 풍경’을 기억할 수 있는 자료가 되더군요. 내가 찍은 사진이 누군가의 기억을 환기시키고, 사라진 공간의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아카이브라고 생각합니다.

서울기록원의 노트
임승한님의 기록은 거창한 목표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 마주한 사라지는 풍경을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남긴 사진들이 쌓이면서, 그의 기록은 시간이 지나 도시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단서가 되었다. 서울의 기록은 거대한 프로젝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 남아 있는 것에 잠시 멈춰 서는 시선, 그 하루의 기록을 이어보려는 작은 움직임이 도시의 기억을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