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시내버스가 달리기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요? 일제강점기 때 처음 도입된 버스는 지금까지도 가장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대중교통 수단으로 확고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시내버스는 도시화와 인구 증가, 자동차 이용 확대 등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끊임없는 혁신이 거듭했습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로 2004년 진행된 대대적인 개편이 꼽힙니다. 그리고 ‘걸어서 5분, 대중교통 세력권’ 실현을 모토로 2026년 시내버스 노선체계 전편 개편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간 서울 시내버스가 달려온 변화를 따라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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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3개 노선 시작, 1949년 본격화한 교통버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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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4월, 서울 최초의 시내버스인 경성부영버스가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경성부에서 운영했던 부영버스는 서울역을 기점으로 3개 노선이 있었고, 운행 초기부터 여성 차장을 두어 노면전차와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하지만 전차와 노선이 겹치고 요금이 2전 높았던 부영버스는 전차의 인기에 밀려 경성전기로 운영권이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시가 대형버스를 도입했고, 1949년 8월, 교통부가 버스업자들에게 정식 허가를 부여하면서 본격적인 서울 교통버스 시대가 열렸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230대에 불과하던 서울의 버스 보유 대수는 도시 재건에 힘이 실린 1950년대 말 600여대까지 늘었습니다. 하지만 차량의 질이 낮아 사실상 가동될 수 있는 버스는 300여대에 불과했습니다. 교통난이 심해지자 서울시는 지속적으로 버스를 증차해 1962년 2,000여대 규모로 확대하지만¹ 교통난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말에는 무제한으로 버스 증차를 허용하는데, 당시 서울시 관광운수국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에 4천여대로 증가했습니다. 아울러 버스 못지 않게 승용차도 급증하면서 도로가 정체되고 버스 운행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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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현황 서울통계연보>, 1979.9.26., 서울시 관광운수국 운수사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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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동 시내버스 개통식>, 1959.10.20., 서울특별시 내무국 공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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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버스 정류장 모습>, 1962.12., 서울특별시 공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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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종점>, 1962. 12., 서울특별시 공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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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을시내버스와 택시>, 1963.11.15., 서울특별시 공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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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도입 초기 서울의 풍경은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언론은 시내버스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를 연일 보도했습니다. 회수권은 한 달에 30만 권 이상 판매됐지만, 시민들은 회수권을 사기 위해 9개 판매소에서 2~3시간씩 줄을 서야했고 매진되는 일이 잦아 불편을 겪었습니다.² 이런 상황을 틈타 회수권을 웃돈을 얹어 판매하는 암표상이 성행³했으며, 회수권 위조 사건도 빈번히 발생했습니다.
교통 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버스가 열차와 충돌하거나 버스 간 정면 충돌하는 사고도 일어났고, 노선 증설에 관련된 시민들의 불만도 컸습니다. 급증하는 서울 인구와 심화되는 교통난 속에서 1964년에는 버스 업자들이 요금 인상을 요구하며 운행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이에 1966년 정부 차원에서 ‘교통난 완화책’을 발표하는데, 주요 골자는 전차 운행 중단 및 버스 증차, 버스 정류장의 차양대 및 줄짓기대 설치 등이었습니다. 더불어 서울 시내버스 공영제 도입이 본격 논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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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직접 운영한 시영버스는 1967년에 도입되었습니다. 이는 1970년대 시 외곽 지역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노선 운영에 부담을 느끼는 민간 버스 사업자 대신 서울시가 나서 지역의 주민들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조치였습니다. 당시 신개발지로 분류된 지역은 신림동, 개화동, 시흥동, 상계동, 거여동 등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비스를 시작한 시영버스는 전재민과 수재민, 화재민, 철거민 등 약 6만 명이 정착해 있던 이들 지역과 도심을 연결하는 발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정책 취지는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영버스가 여러 문제에 봉착한 사실이 기록을 통해 확인됩니다. 운전원과 안내원 부족은 대표적인 현안으로, 신문에 채용 공고가 자주 실린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운수사업 운영의 합리화 방안으로 업무에 불성실한 종업원은 계속 정리’를 하고 있고 ‘운전원 및 안내원의 부족으로 비번과 연장근무로 정상 운행에 지장이 있어’ 근무자를 모집한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급여는 민간 버스 기준에 맞춰 책정되었으며, 안내원 자격증 소지자만 지원 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1969년 2월부터는 통학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20대의 학생 전용 시영버스가 운행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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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장거리 운행 노선과 열악한 비포장도로, 운영 적자로 인한 불규칙한 배차 간격 등도 시영버스의 고질적인 문제였습니다. 기사들이 운송 수익금을 갈취하는 등 부정적인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결국 이런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시영버스는 도입 2년 만에 민간에 매각되며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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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카드, 안내 시스템, 전산화 등 시내버스에 도입된 교통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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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서울시는 <시내버스 개혁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대중교통의 체계적인 개선을 추진했습니다. 이 계획은 2004년 7월 시행된 버스 교통 혁신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정부 보조금 없이 요금 수입에 의존해 운영되던 당시 서울의 시내버스에는 외부적으로는 비효율적인 운영 시스템과 근무자의 불친절 문제가, 내부적으로는 운송 원가 미달과 근무자의 낮은 임금 문제가 끊임없이 따라붙었습니다.
1997년 서울시 교통관리실에서 작성한 <시내버스 요금조정문서>에 따르면 시내버스 요금정책은 교통정책적 차원이 아니라 정부의 물가관리 차원에서 결정되었다며 당시 커피, 짜장면, 설렁탕 등의 식료품 가격 인상과 비교해 놓은 표가 눈에 띕니다. 정부의 지원 없는데다 외국 도시와 비교해도 서울시 버스 요금이 낮은 수준이라는 점도 요금 인상 근거로 제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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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요금조정> 1997., 서울특별시 내무국 시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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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서울시는 버스카드와 안내 시스템을 도입하며 대중교통의 현대화를 위한 초석을 다졌습니다. 버스카드는 1990년대 초 민간 업체가 RF(Radio Frequency. 주파수를 이용한 비접촉 통신 수단) 방식의 카드를 개발하면서 도입되었으며, 1995년 말 서울버스조합이 21-2번 버스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한 것을 계기로 실용화되었습니다. 서울에서 개발된 이 교통카드 시스템은 효율성과 편리함을 인정받아 외국의 여러 도시로 수출되기도 했습니다.⁴ 같은 시기, 서울시는 버스 안내 시스템을 구축하고 노선 전산화를 추진해 버스 운영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했습니다. 이를 통해 시민들에게는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행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혁신은 서울 버스가 더 체계적이고 편리한 대중교통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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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준공영제 도입해 대중교통 공공성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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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으로 이어진 <시내버스 개혁 종합대책>의 주요 내용은 버스업체 경영 합리화, 구조조정 방안, 버스 기반시설 구축, 고급화 방안 등이었습니다. 특히 버스 공영제 도입과 규제 완화 방안이 중점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1997년 대책은 2004년 7월 ‘서울시 버스 교통 혁신’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갔습니다.
대중교통의 공공성 강화를 목표로 서울시는 버스 업체와 수입금을 공동관리하는 방식의 준공영제를 도입하는 동시에 버스 대수 총량제를 폐지해 버스 업계의 자유경쟁을 유도했습니다. 또 매년 서비스 평가를 통해 승객이 운행 체계를 감시하는 시스템도 마련됐습니다. 버스 노선도 번호와 색상을 활용해 간선, 지선, 출발지 및 도착지를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도록 재편해 이용편의성도 높였습니다.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2000년부터 보급하기 시작한 천연가스 버스 보급률도 서서히 높여나갔습니다.
서울시 시내버스 수송인원은 1996년 177만2,859명에서 2004년 145만6,978명까지 감소하다가 2005년에 163만1,004명으로 다시 증가했습니다. 서울시 버스체계 개편의 영향으로 짐작할 수 있는 변화입니다. 대중교통 역사상 중요한 개편으로 평가되는 2004년 버스 체계 개편은 전국 지자체로 확산되면서 대중교통 개선의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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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2024년 11월 25일 접속] (데이터로 본 서울-대중교통수단).
https://data.si.re.kr/node/365
²경향신문. 1963.10.19. 누구를 위하여 만들어졌나 버스표.³동아일보. 1963.08.09. 50전짜리 장사버스 표암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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