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이나 직무, 명예 따위를 나타내는 띠, 리본, 배지 따위의 표지 또는 국가, 단체를 상징하는 그림 등의 표시. ‘휘장’의 뜻입니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국가부터 지방정부, 학교와 기업, 종교기관, 특정 업종이나 관심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직이나 공동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갑니다.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며 관계를 형성하는데, 이를 매개하는 상징물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휘장 같은 상징물을 통해 조직이나 공동체, 각 사회와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치와 지향, 목표 등을 압축해 효과적으로 공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00년 넘는 수도 역사와 에너지 넘치는 메가도시의 활력이 유려하게 흐르고 있는 서울의 휘장을 만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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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헌장>
제1장 시와 시의 권한
시의 명칭과 구역
제1조 「경성부」를 「서울시」라 칭하고 이를 특별자유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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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남한을 통치한 미군정은 1946년 <서울시헌장>을 공포합니다. <서울시헌장>은 서울시가 ‘특별자유시’로서 ‘특별시’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이자, 미군정 시기 군정장관이 서울시에 부여하고자 했던 자치권의 상징이었습니다.¹
아래 기록을 보면 “단기 4279년(1946년) 9월 18일 서울시가 특별자유시로 승격되어 서울특별시의 새로운 명칭을 상징할 휘장의 고안을 일반에게 모집”하였고, 당선된 휘장을 “단기 4280년(1947년) 4월 1일 고시 제17호로 제정” 했습니다. 당선된 휘장은 “가운데 원은 서울 시가를, 외각의 팔각은 서울의 주위를 싸고 있는 남산, 와우산,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무학봉, 응봉 등의 팔악을 보석의 섬광 형태로 상징한 것인데,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수도의 찬연함을 표현”한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서울의 휘장은 1995년 민선시대가 출범하기까지 거의 50년 가까이 서울의 대표 상징으로 역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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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휘장 설명, 서울시 시세일람>, 1948., 서울특별시 내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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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일반화되고 있는 이미지 통합작업(CI) 바람이 민선시대 들어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 자치단체들은 관선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이미지와 비전을 창출, 향상된 행정서비스와 도시환경을 제공하고 주민들이 일체감 속에서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작업에 앞다투어 뛰어들고 있다.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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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풀뿌리민주주의, 시민들과 함께 하는 숙의민주주의를 표방한 역사적인 지방자치제가 부활했습니다. 제1기 민선시장 시대를 맞은 서울시도 “지방화 ・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서울시의 이미지를 통합 ・ 형성하고 21세기 세계도시로 도약하는 긍정적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휘장 변경 등이 포함된 <서울특별시 CI 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합니다. 또한 CI 개발 사업을 내실있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서울 새얼굴 만들기 본부 조직’을 구축해 서울시 이미지 조사, 지향 이념 설정, 서울의 새얼굴 만들기, 서울의 새얼굴 시민 모니터링, 서울의 새얼굴 개발 및 발표 등의 주요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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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 CI 개발 세부계획 시달(송부)>, 1996.5.30., 서울특별시 문화관광국 문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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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새얼굴 만들기 본부 조직 업무체계 구축계획 송부>, 1996.8.8.,
서울특별시 문화관광국 문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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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새얼굴 만들기 본부 조직’은 서울시의 CI 개발을 위해 시민 ・ 시공무원 ・ 주한외국인들에게 서울에 대한 의식 조사와 탑인터뷰, 기존 자료 조사 분석 등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CI자문위원회 및 전문위원단의 회의, 시 내부의견 수렴 등을 통해 서울시가 지향하는 이미지와 핵심 개념을 도출하게 됩니다. 서울의 자산인 자연조건, 역사, 활력, 인간을 중심으로 낮은 소속감이나 환경 ・ 교통문제 같은 서울의 문제와 외부 환경을 고려한 결과, 서울의 지향 이미지는 ‘역사와 활력의 인간도시 서울’, 서울의 핵심 개념은 ‘인간 중심’으로 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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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지향이미지, 핵심개념 설정 시달(송부)> 1996.8.8.,
서울특별시 문화관광국 문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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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서울의 얼굴’ 휘장, 시민이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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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21세기 얼굴을 찾습니다.” 지난달 21일 서울시 거리홍보단 40명은 이같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시민들을 찾아 거리로 나섰다. 서울시의 CI(City Identity ; 도시 이미지통합) 작업에 시민들을 참여시키기 위해서였다.
서울시는 CI의 일환으로 7월 중순까지 심볼마크(휘장)와 슬로건을 공모키로 했다.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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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상징마크인 휘장과 슬로건을 정하기 위해 시민 공모를 진행하였고, 심볼마크 부문 1,819점, 슬로건 부문 5,535점이 응모될 정도로 시민들의 호응이 컸습니다. 최종 선정을 위해 응모작 중 휘장과 슬로건 2점을 선정하고 디자인 광고카피전문팀이 3점을 개발하여 설문조사, 시민 반응 조사, 공청회 등 시민 평가 작업을 이어갔습니다.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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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심벌마크, 슬로건 공모 입상자 발표(안) 일간지 공고>, 1996.8.28.,
서울특별시 내무국 시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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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최종 선정을 위한 시민 대상 의견 조사 등을 위해 외부 공개가 불가피한 5점의 휘장에 대해 “상징마크 확정 전 동일 ・ 유사 표장등록에 따른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업무표장 등록을 출원”하고, 이후 최종 선정된 휘장에 대해서도 업무표장 등록을 출원하는 등 ‘21세기 서울의 얼굴’을 만드는 작업은 깐깐하게 관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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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 상징마크 후보안 업무표장 출원>, 1996.8.30. 서울특별시 문화관광국 문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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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 상징마크 업무표장 출원>, 1996.10.9., 서울특별시 문화관광국 문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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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최종적으로 한강과 산 등을 형상화한 서울시 휘장을 확정해 1996년 10월 9일 업무표장 등록을 출원하고, 10월 28일 마침내 서울시민의 날에 공개하였습니다. 1996년 이후로 오늘날까지 쓰고 있어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시 휘장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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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울시는 휘장을 발표한 후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윗부분 동그라미는 일장기를 의미하고 밑 부분은 일본어 「ソ」를 그대로 표기한 것’ 같다는 민원들이 들어온 것입니다. 서울기록원 소장 기록 중에는 이에 대한 서울시의 답변도 있습니다. 휘장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서울의 지향 이미지와 색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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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휘장은 겸재 정선의 ‘목멱조돈’(남산의 아침 해뜨는 장면)과 단원 김홍도의 ‘무동’(춤추는 사람)에서 착상하여 한글 ‘서울’의 자음 ㅅ, ㅇ,ㄹ과 서울의 산, 해, 한강을 나타내면서 전체적으로는 ‘신명나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인간중심 도시를 지향하는 서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연, 인간, 도시의 맥락 속에서 녹색 산은 환경사랑, 청색 한강은 역사와 활력, 가운데 해는 미래의 비전과 희망을 함축하고, 이 세 가지 요소를 붓터치로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서울의 이미지와 사람의 활력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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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상징마크 교체요망”에 대한 회신>, 1999.08.02., 서울특별시 문화관광국 문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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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김수자 번역. 2021. 『서울시 헌장』, 서울근현대사자료집 6. 서울역사편찬원. p.8 ²동아일보. (1996년 5월 11일). ‘“휘장-상징물을 새롭게" 「도시 이미지」 바꾼다’. 13면. ³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0일). '[확산되는 시티마케팅](1)거센 CI바람.. 새얼굴 알린다'.
⁴동아일보. (1996년 5월 11일). '서울시 CI선정절차 6~8월 공모후 시민평가작업 10월 28일 서울시민의 날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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