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물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깨끗한 물이 나오고 주변 상점에서 쉽게 생수를 사 마실 수 있는 요즘과 달리 수도 시설이 없던 전근대 시기에는 어떻게 물을 구했을까요? 마을이라는 뜻의 한자 ‘동(洞)’은 같은 물을 사용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상수도 시설이 생기기 전 주된 식수원은 마을 내 우물이었는데, 해방 직후 미군정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만 2만개 정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전근대 도시에 가장 많았던 시설이 우물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다가 서울에 물을 파는 물장수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원래 여성의 역할이었던 물 긷는 일은 기후와 생활문화가 바뀌면서 하나의 직업으로 등장합니다. 오염된 우물이 늘어나는 한편 노비를 부릴 수 없는 가난한 양반과 일자리를 찾는 건장한 남자들이 증가하면서 남자 물장수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먼 곳에서 깨끗한 물을 구해다 파는 물장수들에게 위협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1908년 뚝도정수장의 준공 소식이었습니다.¹
|
|
|
서울의 상수도 역사는 고종이 부족한 식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03년 12월 9일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트윅에게 경성 수도시설에 관한 허가권을 주면서 출발합니다. 콜브란과 보스트윅은 1898년 전기 사업 경영 특허권을 받아 서울에 전기, 전차를 도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상수도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받게 된 이유는 흘려보내기만 하는 하수도와 달리 상수도는 전기의 동력을 이용해 만든 압력으로 송수, 배수, 급수를 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³ 그 시작이었던 ‘뚝도정수장’은 1906년 착공해 1908년 8월 31일 준공되었고, 다음 날부터 서울의 사대문 안과 용산 일대 주민들에게 1만 2,500㎡의 수돗물을 공급하였습니다.
현재의 뚝도아리수정수센터가 있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터잡았던 뚝도정수장은 1956년부터 1973년까지 꾸준히 정수장 시설을 증설해 수돗물을 안정적으로 서울시민들에게 공급해 왔습니다. 이런 사실은 수돗물 증산을 위해 정수장의 정수 설비 및 취수 설비 공사를 시행한 내용이 담긴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1정수장은 1970년부터 1971년 사이, 세 차례 정수 설비 공사를 시행합니다. 공사의 목적은 '상수도 공급량 1.1만톤/일 증산 계획'에서 5만톤/일 증산을 위한 신설 공사로 시내 일원의 급수난을 타개하는데 있었습니다.
|
|
|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정수설비공사>, 1971., 서울특별시 상수도사업본부급수부
|
|
|
1972년도에는 뚝도수원지 제4정수장에 취수관을 부설하고 펌푸실을 설치하는 등의 취수설비 공사 결과로 수돗물 6만톤을 증산하게 되었습니다.
|
|
|
<뚝도수원지 4정수장 취수설비공사>, 1972., 서울특별시상수도사업본부 급수부
|
|
|
뚝도수원지 제3정수장은 1973년 당시 4만톤/일을 취수하고 있었는데 하절기 급수대책의 일환으로 9만2천톤/일을 확보하기 위해 1973년 12월 취수 설비 개량 공사를 착공해 1974년 4월에 준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
|
<뚝도수원지#3취수설비개량공사>, 1974., 서울특별시상수도사업본부 급수부
|
|
|
당시 서울시 상수도 공무원들의 구술 자료집에는 “그 시절 사진들을 보면 시장들이 정수장 개통식에서 통수 버튼을 누르는 장면들이 많이 있더라”는 면담자의 말에 “그때는 물이 중요했어요. 물 나오는 걸 잘 보여줘야 했던 거죠.”라고 합니다.⁴
|
|
|
<뚝섬수원지, 수도 증산 통수식>, 1973.6.12., 서울특별시 공보실
|
|
|
“서울시는 12일 오후 시내 성동구 뚝섬수원지에서 수도물 매일 십만t 증산 통수식을 가졌다. 서울시는 서울변두리와 고지대식수난을 덜기 위해 지난 72년 12월부터 뚝섬, 노량진, 영등포동 3개 수원지의 증수시설확장공사에 착수, 지난달 말까지 시설공사를 모두 마치고 이날부터 하루 십만t의 수도물을 증산하게 된 것인데 뚝섬수원지에서는 매일 사만t을 증산, 성동구, 성북구, 동대문구 일부로 물을 보내게 되며 (……) 이 수돗물 증산을 위해 뚝섬수원지에는 2백마력짜리 송수펌프 2대를 신설했으며 여과지 2곳, 침전지 2곳을 증설했고 (……) 이번 십만t증산에 따라 수도물 총생산량은 백사십칠만t으로 늘어났으며 여름철 수도물 수요량증가에 따라 앞으로 시설을 90% 가동, 총생산량에 가깝게 수도물을 공급할 예정이다.” ⁵
|
|
|
1908년부터 서울시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던 뚝도정수장 제1정수장은 1989년에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96년 제1정수장은 수도박물관으로 용도가 변경되었고, 1997년 문화재 시설로서 보수 공사가 진행됐습니다.
|
|
|
<1997년4월문화재심의도면(뚝도수원지제1정수장보수공사)>, 1997.4.30., 서울특별시 문화국 문화재과
[기록물 자세히 보기]
|
|
|
이렇게 약 100년 간 가동되던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은 시설이 노후돼 2003년 8월 6일 가동을 중지하고 9월 9일 폐쇄됐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정수장인 뚝도정수장 제1정수장은 서울의 수돗물 통수 100주년을 맞아 2008년 수도박물관으로 새롭게 거듭나 수돗물의 역사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뚝도정수장은 현재도 서울시가 과학적이고 친환경적으로 생산, 관리하는 수돗물 브랜드 ‘아리수’와 연결돼 뚝도아리수정수센터로 불리며 마포구, 서대문구, 성동구, 성북구, 용산구, 종로구, 중구에 속하는 71개 동에 거주하는 서울시민 102만여 명의 식수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
|
|
한편 수도박물관과 함께 서울 수돗물의 우수성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적인 공간으로 새롭게 발돋움하고 있는 뚝도아리수정수센터는 고도 정수 처리 시설을 완비하고 24시간 아리수를 생산·공급하고 있습니다.⁶
1994년 8월 3일 개정된 수도법에서는 수돗물을 안전하게 마실 수 있도록 정기적 검사 실시 및 공표, 수도 사업자에 대한 수질 관리 기술에 대한 자문을 수행하기 위해 시 ・ 도에 ‘수돗물 안전성진단위원회’를 두게 하였습니다. 이때 대통령령으로 정했던 수돗물의 안전성진단위원회 조직과 운영 등에 관한 사항을 1997년 8월 23일 수도법 개정을 통해 ‘수돗물수질평가위원회’로 명칭을 수정하고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했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1998년 3월 10일에 <서울특별시수돗물수질평가위원회조례>를 공포합니다. 조례는 위원회 설치와 운영에 필요한 사항으로, 서울의 ‘아리수’가 세계적으로 깨끗한 물로 평가받고 신뢰를 얻는데 톡톡한 기여를 했습니다. 수질평가위원회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각 1인을 포함해 15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수돗물 수질 전문가와 서울시의회 소관 위원회 위원 2인 이상, 수돗물에 관심이 많은 시민, 기타 소비자보호단체・환경단체・여성단체 등의 장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
|
|
<서울특별시수돗물수질평가위원회조례공포(사본)>, 1998.2.27., 서울특별시 상수도사업본부
[기록물 자세히 보기]
|
|
|
³서울특별시. 2016.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 – 정밀실측조사보고서』. 서울시청. pp.58~60. ⁴박명호・류상진 편. 2023. 『서울 물 만드는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 서울역사구술자료집 17. 서울역사편찬원. p.56.
⁵동아일보. (1973년 6월 12일). ‘水道물 하루 十萬t 增産’. 6면.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