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은 머리감을 목(沐)과 몸을 씻을 욕(浴)으로, 머리를 감고 물로 몸을 씻는 행위를 뜻합니다. 목(沐)에는 또한 ‘다스린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니 목욕은 마음을 다스리는 행위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¹ 그런데 기록을 보면 목욕 문화가 위생, 건강 등과 관련돼 있는 것만은 아니네요. 주거 환경, 생활 습관 등의 변화로 대중목욕탕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이 즈음 마음의 안정과 휴식을 찾는 힐링 공간으로, 지인들과 소통하는 사회적 교류의 장으로 변신해 온 목욕탕을 기록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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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복합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는 목욕탕이 서울에 생기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00년대 초반입니다. 당시 신문에 목욕탕에 관한 광고들이 등장합니다. 1901년 청계천변 무교동에 있던 ‘취향관’에서 목욕탕을 수리하고 한증막을 설치했으니 많은 이용 바란다는 광고², 1902년 영친왕 탄신일을 맞아 새문밖 ‘장수정’에서 무료로 목욕탕을 개방한다는 광고³, 1904년 서린동에 ‘혜천탕’을 신장 개업한다는 광고⁴ 등입니다.
그러나 당시 서울에 들어선 목욕탕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위생과 휴식, 건강 등의 키워드와는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몸을 씻는 것이 목적이었다기 보다 대개 술과 음식을 파는 유흥의 공간으로 역할했습니다. 또한 유교사상이 강하게 남아있던 시대, 서로의 벗은 몸을 보이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았기에 소수의 사람들만이 목욕탕을 이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혜천탕의 경우는 개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 폐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중들이 이용하는 이른바 대중목욕탕이 생겨난 것은 1930년대가 되어서이지만 아래의 기사를 보면 여전히 조선인이 이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듯 싶습니다. 목욕은 연중 행사인 것이 ‘일반적 사실’이라면서 조선사람이 목욕을 자주 하지 않는 것은 ‘때에 대한 애착심’이라는 웃지 못할 표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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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람 ― 더구나 드러안진 안악네는 섯달금음날이 一년중에 한번 밧게업는 『목욕데1』로 정해저잇는것이 일반적 사실이다. 조선사람이 목욕을 자조 하지 아니하는 것은 돈이 업다는 것보담 위생사상이 보급되지 못하였다는 것보담 몸에 샛ᄭᅡᆷ앗케 무든 『ᄯᅢ』에 대한 애착심이 만흔 것이 아닐가?” 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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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대중목욕탕 관련 기록 중 눈에 띄는 것은 ‘공중목욕탕 증설’에 대한 내용입니다. 제9대 임흥순(재임 기간 : 1959.6.12.~1960.4.30.) 시장 때의 주요 시책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석동 7번지의 129호에 공중목욕탕 부지를 기부채납 받아 서울특별시립 공중목욕장을 개장한 것입니다. 서울시립장석동공중목욕장은 1960년 3월 12일 임흥순 서울시장 및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장식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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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동 공중목욕탕 개장식>, 1960.3.12., 서울특별시 내무국 공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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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7월에는 장석동 공중목욕장을 시민의 공중보건을 위한 복지시설로 관리, 운영하기 위해 <서울특별시립 공중목욕탕 설치조례>(조례 183호)를 공포하였습니다. 조례는 공중목욕탕의 명칭 및 위치, 관리자(지방공무원을 둔다), 요금 징수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석동공중목욕장은 개장 후 10여년이 지나 인근에 다른 목욕탕이 생기면서 타산이 맞지 않아 시에서 건물을 철거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1977년 행정 법령(자치법규) 정비 조치에 따라 <서울특별시립 공중목욕탕 설치조례>와 관련해 장석동 공중목욕장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1977년 현재 목욕장이 없으므로 조례도 폐지 수순을 밟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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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들어서면 정부의 에너지 소비 절약 추진 강화 등의 이유로 목욕장업의 영업 제한 조치가 이루어집니다. 1990년 12월 서울시는 동력자원부에서 확정된 정부의 2단계 ‘에너지 소비 절약 강화 추진 대책'으로 물 다소비 업소인 사우나탕·복합목욕탕의 주 1회 정기휴일제를 실시하게 됩니다.
1992년에는 일반목욕장의 정기휴일제를 강화해 영업시간을 1시간 단축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1993년 국무총리 주재 관광정책심의위원회에서 관광 진흥을 위해 관광호텔 내 사우나탕업의 정기휴일제 해제를 검토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월 2회로 정기휴일을 완화시킵니다. 이에 대해 일반 업소 운영자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형평성 등의 이유로 1994년 일반목욕장과 특수목욕장 모두 정기휴일을 업소의 자율에 맡기기로 합니다.
그러나 3년 후 IMF 외환 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경제살리기 종합대책 실천계획’으로 목욕장업에 대해 또 다시 주 1회 정기휴일제를 실시하게 됩니다. 이후로도 사회, 경제적으로 다양한 이유로 정기휴일 및 영업시간 등의 제한 조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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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탕 및 복합목욕탕 영업제한(주 1회 정기휴일)>, 1990.12.22., 서울시 내무국 시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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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위생 접객업소 영업 제한>, 1992.09, 서울시 내무국 시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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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위생 접객업소 정기휴일제 변경고시>, 1993.10.21., 서울시 내무국 시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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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위생 접객업소 정기휴일제 변경고시>, 1994.4.13., 서울시 내무국 시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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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위생 접객업소(목욕장업) 정기휴일제 변경고시>, 1997.12.10., 서울시 내무국 시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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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사라지는 서울 목욕탕,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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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목욕장업 인허가를 받은 서울의 목욕탕은 총 3,930개입니다. 이 중 2024년 말 현재 영업 중인 곳은 675개입니다. 동네 작은 목욕탕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반면 최근 문을 여는 목욕탕은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사우나 시설과 한증막, 불가마 등을 갖춘 대형 찜질방의 모습입니다.
한편으로 오래된 목욕탕을 개조해 전시와 취미 프로그램 등을 아우른 복합문화공간이나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로 재탄생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힙한’ 관광 상품으로 소비될 정도로 깨끗하고 편리한 휴식 시설을 갖춘 대형 스파, 찜질방이 늘고 있지만 가끔은 냉탕과 온탕이 전부였던 낡은 동네 목욕탕이 그립습니다. 이제는 점점 사라지고 있어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된 성동구의 성수목욕탕과 같은 옛날 목욕탕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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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변하는데 목욕탕은 같은 장소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게 누군가에게 소중한 기억일 수 있겠구나. 이런 사람들 만나는 게 소소한 재미야. 같이 나이 먹어 가는 거지.” 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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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이인혜. 2019. 『목욕탕:목욕에 대한 한국의 생활문화』.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p.12. ²횡성신문. 1901년 8월 27일자. 광고. ³제국신문. 1902년 10월 29일자. 광고. ⁴제국신문. 1904년 9월 7일자. 광고.
⁵중앙일보. (1932년 1월 15일). ‘大京城의 數字行進 (二七) 二千名市民압헤 沐浴湯한개 平均 文化都市京城의 이모양 저모양’. 2면)
⁶박현성 사진·이재영 기획. 2023. 『서울의 목욕탕』. 서울:6699press.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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