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전후 불기 시작한 레트로 열풍 사이로 LP(Long Playing Record)가 부활했습니다. 부모 세대는 아련한 그리움의 모양을 한 ‘빽판(LP를 불법 복제한 해적판)의 추억’과 레코드샵을 떠올리고, 자녀 세대는 ‘낭만’ 한 스푼 얹은 아이템으로 소비하는 그 LP 맞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내는 물론 동네 곳곳에서 쉽게 레코드샵을, 공식 용어로는 음반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사람들이 음악을 CD 같은 물리적인 음반이 아닌 MP3와 같은 디지털 포맷으로 듣기 시작하면서 음반점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음반을 사는 사람이 줄면서 음반점 역시 문을 닫게 되었고,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듣는 오늘날에는 음반점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던 동네 음반점의 흥망성쇠를 기록으로 만나 봅니다.
|
|
|
음반점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빽판’입니다. ‘빽판’은 음반 판권 소유자와의 라이선스 계약 없이 불법으로 제작·유통된 해적 음반을 뜻합니다. 초기 ‘빽판’은 음반 커버에 이미지나 수록곡 정보를 제대로 표기하지 않고 단순한 하얀 라벨만 사용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특히 팝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경로가 주한미군 라디오 방송 AFKN 등으로 제한적이었던 1950~1960년대에는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빽판’ 제작이 활발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국제저작권협회에 가입하지 않았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에 이러한 ‘빽판’은 버젓이 납세필증 인지와 지방자치단체의 검인을 붙이고 판매되기도 했습니다.¹ 1972년 음반법이 개정, 발효되기 전까지 ‘빽판’은 정부의 어떤 규제도 받지 않고 거래되었습니다. 정식 음반점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
|
|
‘빽판’ 시장이 점차 비대해지자 문제의식을 느낀 정부는 1971년 <음반에 관한 법률 시행령(음반법)>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령은 ‘빽판’ 제작업체에 대한 단속뿐 아니라 음반 판매업자에 관한 처벌 규정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불법 제작을 단속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통망까지 규제해 음반 시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음반법 제7조 ‘판매업자등록 신청’ 규정에서 볼 수 있듯 이때부터 정식으로 등록된 음반 판매업자가 등장하고, 2000년대 초반까지 동네 곳곳에서 볼 수 있던 정식 음반점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
|
|
제7조 (판매업자등록 신청) ² 음반의 판매를 업으로 하고자 하는 자(이하 “판매업자”라 한다)가 법 제7조의2제1항의 규정에 의한 등록을 받고자 할 때에는 별지 제5호서식에 의한 음반판매업자등록신청서에 다음 서류를 첨부하여 문화공보부장관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1. 판매업자의 이력서(법인 또는 단체인 경우에는 그 대표자의 이력서).
2. 영업소의 소재증명.
3. 법인 또는 단체인 경우에는 정관이나 규약 및 등기부등본이나 그 설립을 증명하는 서류.
|
|
|
서울기록원 소장 기록물 중 ‘음반판매업자 등록신청처리 OO음악사’는 1984년 당시 관악구에 소재했던 음반점에서 음반판매업자 등록을 위해 작성한 ‘음반판매업자 등록신청서’의 일부입니다. 개인 정보가 있어 전체 공개가 어렵지만 해당 기록물에는 판매업자의 이력과 해당 음반점의 소재지 약도까지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점은 음반판매업자 등록신청서와 함께 제출된 ‘서약서’입니다. 서약서의 내용에는 아래와 같이 기재되어있습니다.
|
|
|
상기 본인은 상기 소재지에서 음반 판매업을 실시함에 있어 음반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9조 2(판매업자의 준수사항)의 규정을 준수할 것을 서약하며 이를 위반할 시는 법률제13조(벌칙)에 의거 처리하여도 의의가 없음을 서약합니다.
|
|
|
서약서 내용에서 언급된 시행령 제9조 2(판매업자의 준수사항)는 1976년 개정법에서 신설된 조항으로, ‘빽판’의 판매 금지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
|
|
제9조의2 (판매업자의 준수사항) ³ 판매업자는 다음 각호의 사항을 준수하여야 한다.
1. 판매업자 등록증을 업소내의 보기쉬운 곳에 게시할 것.
2. 판매가격표를 보기쉬운 곳에 게시할 것.
3. 음반에 관한 대장을 비치하고 그 매매사항을 정확히 기록ㆍ유지할 것.
4. 확성기를 설치한 경우 고성방음으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아니하도록 할 것.
5. 사용ㆍ판매금지 또는 납본을 필하지 아니한 음반을 판매하거나 진열하지 아니할 것.
6. 음반의 판매질서를 문란하게 하지 아니할 것.
|
|
|
<음반판매업자 등록신청처리 OO음악사>, 1984.9.14., 서울특별시 관악구 총무국 총무과
|
|
|
하지만 당시 시민들은 ‘빽판’의 유혹을 상당 기간 떨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서약서의 내용을 보면 1971년 음반법이 제정되고 1972년 시행 유예기간이 종료된 뒤 대대적인 ‘빽판’ 단속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시장에서 활발히 유통되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빽판’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라는 경제적 이점 외에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심했던 당시 금지 처분을 받은 국내 가요나 희소성 있는 곡들을 정식 라이선스 음반으로는 접할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단속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1981년 서울시는 국내외의 음란한 가요 등을 무단 복제해 팔아온 불법 음반판매업자 103명을 적발, 이들이 만든 퇴폐 음반과 카세트 테이프 2만5,000여개를 수거, 소각하기도 합니다.
|
|
|
또 적발된 불량 음반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한다는 음반업자의 각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
|
“본인은 상기 불법음반을 판매하여 서울특별시 합동단속반에게 적발 수건된 물품이므로 본 소유권을 일체 포기함에 민,형사법에 의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사읍기 포기서를 제출합니다.”
|
|
|
<불법음반단속 결과조치>, 1984.10.02., 서울특별시 관악구 총무국 충무과
|
|
|
음반 저장 기술 따라 변한 레코드샵의 호황기와 침체기
|
|
|
정부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빽판’은 한동안 인기를 유지했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빽판’의 소멸을 이끈 직접적인 요인이 단속이 아닌, 새롭게 상용화된 음반 규격이자 저장매체인 CD(Compact Disc)의 등장이었습니다. CD가 보급되고 LP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자연스럽게 LP 포맷을 기반으로 한 ‘빽판’의 전성기 역시 종말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은 한국 음반 시장에서 유통된 미디어 포맷이 LP에서 CD로 급격히 전환되던 시기로, 국내 음반 산업이 가장 활기를 띤 시기로 기억됩니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국내 가요 시장 역시 급성장하며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진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음반점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당시 동네 곳곳에 자리했던 음반점은 호황을 누리며 대중음악 문화의 사랑방 혹은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디지털 오디오 규격으로 개발된 손실 압축 오디오 코딩 포맷인 ‘MP3’ 가 대중화되고, 인터넷을 통해 음원을 불법적으로 내려받거나 공유하는 문화가 확산됐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음반 구매와 멀어졌고, 이로 인해 음반점 역시 모습을 감추게 되었습니다.
2024년 말 현재, 서울의 대표적인 젊음의 거리인 홍대입구역 인근을 찾으면 놀랍게도 새로 문을 연 레코드샵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K-pop의 세계적인 인기와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LP 시장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흐름에 비례해 레코드샵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진다면 불쑥 레코드샵의 문을 열고 들어가 아날로그 감성 듬뿍 담긴 LP 음반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
|
※ 개인 정보를 제외하고 원문을 수록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문서 열람을 원할 경우 별도 열람 신청을 통해 제공 가능합니다.
¹최규성. 2020. 『빽판의 전성시대』. 태림스코어.
²구 음반에 관한 법률 시행령(1971.12.31. 대통령령 제593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7조. ³구 음반에 관한 법률 시행령(1977.3.22. 대통령령 제851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9조의2.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