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도시기억전시관

[협업 콘텐츠] 도시계획국×서울기록원

2021용산도시기억전시관 기획전시

서울기록원은 콘텐츠 협업을 통해 서울시 여러 부서의 아카이빙 성과를 온라인으로 공유합니다. 본 콘텐츠는 도시계획국용산도시기억전시관에서 2021년 개최한 기획전시 7월16일, 용산> 의 온라인 버전입니다.

2020년 4월 개관한 용산도시기억전시관은 용산의 도시변천사가 기록된 공간입니다.
1947년 용산에 창설한 미 보병 31연대의 모습부터 한국전쟁 당시의 용산, 50~60년대 용산 사람들의 삶까지 용산의 변천사를 담은 사진과 영상을 통해 용산의 도시변천 과정과 용산공원 조성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958년 서울 한강 중지도(오늘날 노들섬 일대) 항공사진 _국가기록원
도시계획국 이미지

도시계획국 전략계획과 도심전략사업팀은 용산공원조성 특별법, 용산공원 조성계획 및 실시계획, 용산공원 주변 도시관리 실행 전략 수립,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 운영 등을 수행하고 있으며, 용산기지 내 시설물 공동조사와 아카이브 구축, 용산도시기억전시관을 포함한 용산공원 시민 소통공간 운영과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용산도시기억전시관 기획전시
7월 16일, 용산
혼돈의 봄 이미지

1945년 광복 후 기쁨도 잠시,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전쟁으로 서울시민들의 삶은 처참했습니다. 한강철교와 용산 철도정비창 등 폭격이 이어졌고, 서울 전체가 파괴되었습니다.
서울시민들은 지속된 전쟁 상황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후 미군 대한 원조가 이어졌고 서울의 기반시설들이 복구되었습니다.
무너진 도시에서도 모두가 삶을 회복하는데 힘을 모았던 1950년대 서울, 그리고 용산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연표보기
  1. #1. 폭격 Bombing
    한국전쟁초기 용산은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엄청난 피해와 전화를 입었다.
    용산기지를 비롯한 서빙고, 원효로, 해방촌 일대의 피해가 컸다.

    특히, 1950년 7월 16일 미공군의 용산 폭격은 피난을 못 가고 머물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용산 주민들의 인명피해를 동반하며 용산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2. #2. 귀향 Homecoming
    중국군의 참전(1.4후퇴)으로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던 용산 사람들은1951년 3월 15일부터 귀향했다.
  3. #3. 복구 Restoration
    폭격에 무너진 집과 건물 주위로 흩어진 돌조각 하나도 복구에 소중한 자재였다.
    용산 사람들은 변변한 장비 하나 없이 맨손으로 건물을 복구했다.
  4. #4. 재건 Reconstruction
    사람들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다시 건물을 세웠다.
    도시의 재건은 용산 사람들이 삶을 이어가는 몸부림이었다.

    용산 군용지 프로젝트(제 79공병건설대대)
    1952년 8월25일부터 1953년 11월 30일까지 용산 군용지의 건설 및 복구를 다룬다.
    이 기간 동안 주요 공사가 착공 및 완료되었다.

용산의 역사를 기억하다 Remembering the history of Yongsan
7월 16일, 용산 이미지

용산도시기억전시관은 매주 화요일~토요일 오전 10시~저녁7시까지 운영되며, 서울공공서비스예약(https://yeyak.seoul.go.kr)이나 현장접수를 통해 관람할 수 있습니다.

용산의 시대별 변천사와 용산참사 관련 자료, 작품 등을 전시한 1층 외에도 용산기지를 촬영한 300여 장의 사진과 영상, 문서자료를 볼 수 있는 아카이브룸이 2층에 마련되어 있으며 미국 국립문서보관청(NARA)에서 수집한 10여개의 영상 또한 만나볼 수 있습니다.

  • 전시총괄 / 이정화(서울시 도시계획국장)
  • 전시감독 / 윤호중(서울시 도시계획국 전략계획과장),
    강대양(서울시 도시계획국 전략계획과 도심전략사업팀장)
  • 전시기획 / 김홍렬(서울시 도시계획국 전략계획과)
  • 전시자료 / 김천수(용산문화원), 전갑생(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 전시참여 / 성지은, 박희경(용산공원 시민소통공간 매니저)
  • 디자인 / 뮤지오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