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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기록 이야기 #28] 노량진 수산시장
- 2022-09-23 | 보존서비스과| 조회수 : 896
- 서울의 노량진동을 떠올리면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날까요? 조선시대에는 노들나루, 현재 지하철과 고속도로가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 수험생으로 가득 찬 학원가와 고시촌, 사육신 역사공원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수산시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허정 서울시장, 서울중앙수산시장 시찰〉, 1958. 1. 21., 서울특별시 내무국 공보과. https://archives.seoul.go.kr/item/784 사실 노량진 수산시장은 처음부터 노량진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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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기록이야기 #27] 불광천
- 2022-09-14 | 보존서비스과| 조회수 : 1013
-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http://map.ngii.go.kr/ms/map/NlipMap.do 서울경관아카이브, https://urban.seoul.go.kr/cityscape/archives/seoul_archive/%eb%b6%88%ea%b4%91%ec%b2%9c-5 불광천이 거쳐온 변화 서대문, 은평지역 대표 수변공간으로 지역주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불광천. 불광천(佛光川)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을 기점으로 은평구·서대문구·마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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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기록이야기 #26] 피맛골
- 2022-08-29 | 보존서비스과| 조회수 : 1673
- 조선시대 종로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교자나 가마가 지나다니는 큰길인 육조거리가 있었습니다. 이 길에서 교자나 말을 타고 다니는 고관대작이 지나가면 백성들은 길가에 엎드려 예의를 표해야 했습니다. 백성들은 매번 엎드리는 것이 번거로웠을뿐더러, 무관이 달리는 말에 치이는 교통사고의 위험도 있었기에 백성들은 말을 피해 좁은 길목으로 다니기 시작합니다. 이 길을 따라 목로술집 모주집, 장국밥집 등이 연이어 생겨났으며, 서민들의 격조가 담긴 이 골목을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따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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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기록 이야기 #25] 노면전차의 퇴장
- 2022-08-22 | 보존서비스과| 조회수 : 549
- 서울 곳곳이 지하철과 버스로 연결되기 이전, 서울 시민들은 어떤 교통수단을 가장 많이 이용했을까요? 바로 노면전차가 있었습니다. 〈동대문 단청공사〉, 1963. 10. 11.,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5979 1899년 5월에 등장한 노면전차는 한성전기회사가 사업을 담당하게 되며 본격 운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성전기회사는 거상 김두승과 이근배가 청원하고 전차와 전등 시설에 큰 관심을 보인 고종 황제가 황실의 이름으로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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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기록 이야기 #24] 서울시민회관
- 2022-08-19 | 보존서비스과| 조회수 : 943
- 장소는 도시와 기억을 형성합니다. 수많은 장소가 시대상을 표상하는 기억의 공간으로 기능했습니다. 그러나 장소가 되는 공간은 사라지고 다시 생성됩니다. 서울시민회관 역시 그러한 장소 중 하나입니다. 시민회관(市民會館)은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60년대 서울시민의 공연예술행사를 책임졌던, 대표적인 문화공간입니다. 〈시민회관 전경〉, 서울특별시 공보실, 1963. 2. 14. https://archives.seoul.go.kr/item/2832 서울기록원 카탈로그 [공간/지역] 서울시민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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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기록 이야기#23] 파고다아케이드의 철거와 탑골공원 성역화
- 2022-08-08 | 보존서비스과| 조회수 : 947
- 탑골공원 중수(파고다 아케이드)부터 성역화에 이르기까지의 탑골공원의 변천 <파고다 아케이드가 둘러진 탑골공원의 모습> <민사소송판결에따른대책검토>, 《파고다아케이트관계철(Ⅰ)》, 1982.9.11., 서울특별시 환경국 공원과, https://archives.seoul.go.kr/item/1098222 <파고다아케이드의 철거> 중수사업으로 세워진 파고다 아케이드의 모습입니다. 탑골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파고다 아케이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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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기록 이야기#22] 탑골공원의 조성과 중수
- 2022-08-02 | 보존서비스과| 조회수 : 687
- 종로 3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탑골공원. 이 공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시나요? <1969년 탑골공원 모습>, 1969.3.26,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902#none <고려시대 ~ 대한제국> 탑골공원에 대해 알기 위해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고려시대의 국교는 불교로 도심에 사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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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기록 이야기 #21] 지하철 1호선의 등장
- 2022-07-27 | 보존서비스과| 조회수 : 731
- 해방 직후, 100만 명 수준이던 서울시의 인구는 1960년에는 약 244만 명, 1970년에는 약 553만 명으로 급증하였습니다. 당시 대중교통수단이던 노면전차는 급증하는 서울시민의 발이 되기에는 작고, 낡고 느렸기에 1968년 12월 1일 0시를 기준으로 역사 속으로 퇴장하였습니다. 이후 버스와 택시로는 인구증가를 감당하기 역부족이었고 서울 시내는 수많은 버스와 택시가 얽혀 교통혼잡이 일상이었습니다. 〈1967년 10월 서울시내 교통현황〉, 1967. 10. 1.,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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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기록 이야기#20] 그린벨트 시리즈 #3 그린벨트 해제준비기
- 2022-07-21 | 보존서비스과| 조회수 : 629
- # 해제 준비기의 시작 1997년 7월 2일, 김대중 대통령 후보는 서울상공회의소에서 ‘그린벨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우리나라는 남한만해도 전체 면적의 60%가 산이라 더 이상 그린벨트가 필요한지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 봐야 하며, 평가결과에 따라 필요 없는 지역은 해제하고 필요한 지역은 그린벨트로 묶되 국가가 지가증권을 발행해서 사들여야 한다.”* * 「개발제한구역 제도의 변천과정」, 류경진, 국토, 2021 이후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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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기록 이야기#19] 남산서울타워 입장료 사건
- 2022-06-29 | 보존서비스과| 조회수 : 957
- 기록물을 보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남산 서울타워에 얽힌 입장료 사건을 기록물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공개요청에대한회신>, 《남산탑공개관계철》, 서울특별시 환경국 공원과, 1983.6.4. https://archives.seoul.go.kr/item/1098271 1980년 개장 당시의 리플릿에 수록된 남산타워 전경 남산서울타워는 1975년 전파의 혼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합 전파탑의 목적으로 준공하였습니다. 준공 후 안보상의 이유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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