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디지털 전시 _ 용산,금단의 땅을 전傳하다.
한반도는 1945년 일제의 항복으로 해방되었지만,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이북지역은 소련군이, 이남지역은 미군이 각각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45년 9월9일 미군 제24군단에 정식으로 항복하였으며, 남한의 일본군은 10월말까지 일본으로 귀국하였다. 조선 주둔 일본군사령부가 용산을 떠나면서 일본군의 용산기지 역사는 마무리된다. 대신 용산기지를 접수한 미국은 이곳을 “캠프서빙고 (Camp Seobinggo)”라고 명명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1948년) 되면서 미군은 한국에 주한미군사고문단(KMAG) 495명만 남기고 철수했다. 이때 한국군과 국방부가 약1년 가까이 용산기지를 사용 하였으나 한국전쟁이 발발(1950년)하자 용산기지는 북한군의 지휘소가 되었다가 다시 한국군이 차지하게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