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군사정보국 포로 및 노획물과(Military Intelligence Service Captured Personnel and Material Branch, MIS CPMB)가 작성한 1945년 10월 24일자 심문요약보고서이다. 조선인 포로에 대한 특별질문을 바탕으로, 4월 11일 세 명의 조선인 포로인 이박도, 백승근, 강기남에 대해 이루어진 심문을 바탕으로 한다. 이 세 명의 포로는 태평양 섬에서 포로로 포획된 후, 하와이의 호놀룰루 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높은 수준의 첩보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어 미국 캘리포니아로 보내졌다. 이들은 당시 부상 때문에 트레이시 기지(Camp Tracy) 근처의 레터만 병원(Letterman Hospital)에 입원했고, 심문 또한 병원에서 이루어졌다. 이들은 ‘위안부’ 관련 질문에 대해 “태평양에서 본 모든 조선인 위안부들(prostitutes)은 지원자이거나 그들의 부모가 팔아서 위안부가 된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 진술을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일단 심문 대상이었던 이박도의 경우 <포로 및 노획물과 심문보고 요약 1157호>를 보면, 1925년 경상남도 출생으로 소학교를 마친 이후, 오사카에서 5년 동안 중학교를 다녔고, 1940년 이후에는 사할린과 혼슈 지방을 여행하다가 1944년 4월에 징집되었기 때문에 조선 내 사정을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다. 조선에 거주하고 있더라도 조선 총독부가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퍼뜨리는 것을 조언비어 유포죄로 처벌하고 있었기 때문에 포로들로서는 ‘위안부’와 관련된 내용을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다. <포로 및 노획물과 심문보고 요약 1690호>에서 나타나듯, 같은 질문지로 심문을 받은 조선인 포로 김기연이 ‘위안부’ 관련 항목만을 답변하지 못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한편, 이 보고서에 따르면 포로들은 일본에 의한 ‘위안부’ 징집이 사실이라면 격렬한 봉기가 일어날 것이라고 진술했다. 미군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위안부’ 강제 모집에 대한 조선인들의 반일감정에 더 주목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