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동남아시아번역심문센터(South East Asia Translation and Interrogation Center, SEATIC)가 생산한 1945년 2월 1일자 통합심문보고서 84호이다. 미치나(Myitkyina)에서 생포된 일본군 군의관 소위(2/LT) 출신 포로 카츠야마 쇼이치로(KATSUYAMA SHOICHIRO)의 심문을 바탕으로 작성한 보고서이다. 포로는 일본군의 성병관리실태와 군 위안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1943년 2월부터 7월까지 싱가포르에 있었는데, 그곳에 군이 관리하는 위안소(Controlled Naval and Military Brothels)가 100곳 이상 있었고, ‘위안부’는 조선인과 중국인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해군 위안소는 스콧(Scotts) 도로에, 육군 위안소는 케언힐(Cairn Hill) 도로에, 장교용 위안소는 굿우드파크(Goodwood Park) 호텔의 인근과 카통(Katong)의 신축 아파트 블록의 “게이샤 클럽(Geisha Club)”에 있었다. 또한 성병을 예방하기 위해 군위안소를 이용하라고 지침이 내려졌고, 군위안소의 모든 ‘위안부(women)’들이 군의관에 의해 매달 검진받았으며, 군인이 콘돔을 이용하게 하도록 위안부들을 교육시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