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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인(敵國人) 통합예비심문보고서, 194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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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유형
      일반문서류
    • 일자
      [생산]   1945-05-21 ~ 1945-05-21
    • 기술
      이 문서는 루손섬 공격에 참여했던 미 육군 제1군단 사령부 첩보부(G-2)에 소속되었던 163언어파견대가 1945년 5월 19일 필리핀 루손섬 타야바스(Yayabas)지역 딩가란(Dingalan)만 근처에서 포로로 잡힌 조선인 ‘위안부’ 5명(마츠모토 야나기, 가네모토 모모코, 가네모토 요이, 소노다 긴란, 소노다 소란)을 심문한 보고서이다. 이들 중 소노다 긴란과 소노다 소란은 친자매다. 이 보고에서는 이들이 대만 타이중에서 일본군의 ‘위안부’가 되었으며, 조선으로 잠시 귀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44년 4월 29일에 이들을 포함한 62명의 일본인 및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 육군의 ‘위안부’로 필리핀으로 끌려와서, 다시 무리를 나누어 필리핀 각 지역으로 보내졌다. 일본군이 어떻게 일본군의 이동과 군사적 필요에 따라 조선인 여성들을 ‘위안부’로 모집하고, 관리하고, 이동시켰는지를 잘 보여준다. 심문을 받았던 5명은 일본군의 필요에 따라 필리핀 여러 지역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다가, 미군과 일본군의 전투가 격화된 이후, 일본군과 떨어져 해안가로 이동하던 중에 미군을 발견하고 구조 신호를 보내 미군에게 구조된다. 1996년 정신대연구소의 연구원이 김소란(가명)을 만나, 소노다 소란이 김소란(가명)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 내용에 대한 증언도 이루어졌다. 김소란이 증언한 내용도 이 심문보고서의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김소란은 이후 루손 제1포로수용소에서 심문을 받고, 마닐라 빌리비드(Bilibid) 형무소 내 민간인 억류자 수용소로 이송되는 등 여러 수용소로 이동한 끝에 1945년 10월 29일 필리핀에서 마리(Mari)호를 탑승하고 40명의 ‘위안부’ 여성들과 함께 일본을 경유해 부산으로 귀국했다. 조선인 ‘위안부’에게 직접 심문을 진행한 결과를 바탕으로 생산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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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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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어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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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RG 165 Entry NM84 177 Box 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