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미 해군 소속 소커슨 대위(Lt. Edward D. Sockerson)가 1945년 4월 21일 오키나와 자마미섬 임시수용소에 구금되었던 조선인 ‘위안부’ 한 명을 촬영한 사진이다.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였던 1944년 오키나와에는 수많은 일본군 병력이 집결했고, 이에 오키나와에는 백여곳이 넘는 위안소가 세워졌다. 이 사진의 촬영지인 자마미섬 인근의 도카시키섬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던 배봉기에 따르면 그는 1944년 11월, 51명의 여성과 함께 일본 가고시마에서 일본군 수송선을 타고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그 가운데 7명의 여성들이 각각 도카시키섬, 자마미섬, 아카섬에 배치되었다. 1944년 11월 배치된 여성들 외에 이 곳에 얼마나 더 많은 조선인 ‘위안부’가 있었는지, 그들 중 몇 명이 오키나와전에서 살아남아 자마미 수용소에 수용되어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위안부’들과 생활공간을 공유했던 주민들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오키나와 전역에 121개소의 위안소가 있었다고 보고한 1992년 오키나와 여성사연구모임의 조사를 고려할 때, 오키나와에는 상당히 많은 조선인 ‘위안부’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사진을 촬영한 소커슨 대위는 이들을 “게이샤 여성들(Geisha Girls)”이라고 지칭하면서 “류큐제도 자마미섬에서 발견된 일본 조선인(Jap Korean)으로 일본군이 섬으로 데려왔다”는 설명을 사진에 덧붙혀 놓았다. 이를 통해 이 여성이 오키나와에 동원된 조선인 ‘위안부’임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소커슨 대위와 미 해군이 찍은 다른 사진들인 <오키나와 자마미섬 임시수용소의 조선인 "위안부" 1-9>에서 자마미섬 임시수용소에 구금된 조선인 ‘위안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여성들이 누구인지, 조선으로 무사히 돌아왔는지,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진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