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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우리의 공원 온라인전시_제1섹션

     산에서
     공원으로

제1섹션은 국회의사당건립을 위한 토목 공사로 잠시 공원을 폐쇄하는 1959년의 기록으로 시작한다. 산이었던 남산은 조림, 사방공사, 위락·문화시설 등을 갖춘 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공원의 경계는 주변 도시와 관계 맺으며 끊임없이 확장과 축소를 거듭한다. 제1섹션에서 산에서 공원이 되는 남산의 변화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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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은 서울의 4대산 중 하나로 오랫동안 서울의 상징 역할을 해왔다. 서울의 특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주요 조망점이자 서울 어디에서나 보이는 조망 대상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왜성대공원, 한양공원, 장충단공원이 지정되면서 공원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한양공원 자리에 있었던 조선신궁 부지에 이승만 정부는 국회의사당 건립을 추진했다. 공병대가 동원되어 부지 정지까지 했지만 여의도로 부지가 변경되면서 남산공원의 거점 공간이 되었다. 1섹션은 국회의사당건립을 위한 토목 공사로 잠시 공원을 폐쇄하는 1959년의 기록으로 시작한다. 당시 공사계획도에는 조선신궁의 계단과 석축 등이 그대로 남아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62년 이 부지를 대상으로 남산공원 설계 현상공모를 시행해 야외음악당(현 백범광장, 회현자락) 등 공원 문화시설을 조성했다. 공모 서류에 명시된 남산공원의 지향점은 “수도 서울의 유일한 관광지 및 휴양지로 만들기”였다. 1960년대 팔각정과 장충단공원에서 찍은 시민들의 사진 기록에서는 신혼부부의 모습도 발견된다. 남산공원이 서울의 대표 관광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967년 기록에는 남산공원 전체의 공원계획이 담겨 있다. 이전의 계획은 회현, 예장, 장충 자락 주변으로 부분적이었다면, 이 계획은 남산 전체의 공간계획과 동선계획을 수립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산이었던 남산은 조림, 사방공사, 위락·문화시설 등을 갖춘 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공원의 경계는 주변 도시와 관계 맺으며 끊임없이 확장과 축소를 거듭한다. 제1섹션에서 산에서 공원이 되는 남산의 변화를 만날 수 있다

[1]
국회의사당 건립을 위해 
남산공원 일부 폐쇄

국회의사당 건설을 위한 정지공사를 위해 남산공원 일부를 폐쇄한다는 문서다. 첨부된 도면에서 일제강점기에 만든 조선신궁의 계단과 석축 등이 남아있었다는 점을 확인 할 수 있다. 국회의사당 부지에 2개중대라고 적혀있어, 당시 군대를 동원해 공사가 계획된 것을 알 수 있다
 

 

 

남산공원폐쇄에 관한 공고건(1959년) [서울기록원 기록건 IT857335]

[2]
남산 팔각정 주변 나무심기

남산 팔각정 주변에 식재도면으로 1959년 당시 팔각정 주변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공사비 285,400환의 공사내역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으며 도면에는 식재수종과 주변 지형과 시설 등이 상세히 표현되어 있다. 그 일부 문서와 도면을 담는다
남산팔각당 주변 식수공사 실시의 건(1959년) 中 식재계획도 [서울기록원 기록건 IT1089751]

     [3]
     남산공원설계 현상

       남산 국회의사당 부지에 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설계공모 서류로 남산공원의 목표를 “수도 서울의 유일한 관광지 및 휴양지로 만들기 위해” 로 두고 있다.
       공모 일정, 상금, 야외음악당의 수용인원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남산공원설계현상모집(1962년) [서울기록원 기록건 IT861175]
** 사진을 선택하면 큰 화면으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한양공원 주변 녹화계획

현재 회현자락의 북측순환로(남산케이블카 옆)가 대상지이다. 3천평 면적의 식재공사계획서로 내역서와 도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고3~4척(1m 내외) 규격의 잣나무 한그루가 1,100환이었으며 넓은 면적에는 잣나무, 전나무, 향나무를 집단으로 식재하고 경계부에 넝쿨장미를 계획한 점 등이 눈에 띈다

[5]
후암동-팔각정 도로 주변 나무심기

면적 1만 6천 평에 전나무, 잣나무, 리기다소나무 등의 공사설계서로 총 공사비 13,480,650환으로 계획하였다. 첨부된 도면에는 수종별로 컬러와 기호로 구분하여 식재구역이 표현되어 있다. 도로주변과 경계를 따라서 광범위하게 녹화 계획을 수립하였다

[6]
장충단공원 계획

장충단공원의 스케이트장, 배수시설, 석축공사에 대한 준공서류이다. 본 전시에서는 준공사진이 포함된 조서일부, 시방서에 해당되는 내용을 담은 당시의 공사설계서, 도면을 담는다. 도면은 수표교와 어린이놀이터 위치가 표현되어 1964년도 장충단공원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한양공원 주변 조림공사 설계서(1962년) 中 식재계획도 [서울기록원 기록건 IT1090102]
후암동-팔각당 노변 조림공사 설계서(1962년) 中 식재계획도 [서울기록원 기록건 IT1090104]
장충단공원 시설공사(1964년) 中 장충단공원평문도 [서울기록원 기록건 IT1090614]
 

[7]
남산공원 계획

시설이 빈약한 남산공원을 다목적 공원으로 확충하기 위해 개수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남산공원은 남산공원, 장충공원, 한남공원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각각의 면적과 시설현황이 명기되어 있다. 도로, 어린이놀이터, 식물원, 조림, 조명, 운동공간, 야생동물원, 풀장 등을 계획하였고, 시비투자와 민간투자 사업으로 구분하였다
남산공원 건설계획(1967년) [중부공원녹지사업소 소장]
 
남산공원 건설계획(1967년) 中 남산계획도로망계획도(위), 남산조성계획도(아래)

[8]
아동공원 계획

명동공원의 매각에 따라 대체공원으로 일제강점기 시절의 한양공원(현 아동광장, 회현자락) 자리에 아동공원을 계획하였다. 현황으로 무허가 건물 5동과 아카시나무가 1,000주 있으며 지형은 급경사로 분석하고 있다. 도로, 놀이시설, 조명시설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실제 조성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명동공원 대체공원에 대한 아동공원 계획(1967년) 中 기안문 [중부공원녹지사업소 소장]
 

[11]
남산보호위원회 개최

남산야외음악당철거와 동물원이전에 대한 내용을 주요안건으로 한 남산보호위원회 회의록이다. 위원회의 기본방침이 자연보호, 잠식시설금지 등으로 명기한 것으로 보아 당시 남산 관리의 기본방향을 엿볼 수 있다. 음악당과 동물원 철거에 대한 토론이 생생하게 회의록에 담겨있다. 본 전시에서는 위원회 구성과 회의록 요약본을 담는다
남산보호위원회개최결과보고(1979년) 中 위원회 구성 [서울기록원 기록건 IT1097228]

[9]
남산관광도로 정비

남대문에서 어린이회관에 이르는 남산관광도로주변의 경관 정비 계획이다. 불량건물을 정비하고 도로 주변의 공원 풍치를 보호하여 관광서울의 이미지 제고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정비대상에 대해 어린이놀이터와 야외음악당 주변을 완전개조, 건물개수, 녹지보호, 무허가 정비로 구역을 구분하였다


남산관광도로(남대문-어린이회관) 주변 정리계획(1970년) 中 계획도 [서울기록원 기록건 IT1142520]


[10]
장충공원 변경

장충공원의 일부지역을 원호대상자 주택건립시행에 따라 공원용지를 해제하게 된 기록이다. 공원해제 사유가 명시되어 있으며 첨부된 도면에는 해제지역이 표시된 장충공원 전체의 경계가 표현되어 있다

도시계획 공원일부변경(장충공원) (1976년) 中 계획도 [서울기록원 기록건 IT880053]


[13]
녹화전시장 보존

공원의 경관을 위해 조성되었던 녹화전시장을 계속 보존함이 타당하다는 공원관리사업소장의 의견에 따라 이를 1년간 연장한다는 승인 기록이다. 사업계획서 내용 중에 ‘국민식수운동전개’, ‘국토녹화좌담회 개최’, ‘새마을운동 적극참여’와 같은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항목이 눈에 띈다. 도면에 표현된 식물기호도 눈 여겨 볼만 하다
도시공원(남산공원)점용허가연기허가 승인(1980년) 中 식재계획도 [서울기록원 기록건 IT1096837]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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