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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섬 점령군 작전일지, 1946년 1월 1일-1946년 1월 31일, 1946-01-01 ~ 1946-01-31
    • 관리번호
      서울기록원 고유번호 :
    • 식별번호
      RG7-SR8-FI37-IT76
    • 기술계층

      기록철(File)

      기록건(Item) <-

      트럭섬 점령군 작전일지, 1946년 1월 1일-1946년 1월 31일

    • 부제목
      G-2, G-3 Report for Occupation Forces Truk and Central Carolines War Diary
    • 기술계층
      기록건(Item)
    • 법적지위
      非공공기록
    • 소장처
    • 기록유형
      일반문서류
    • 일자
      [생산]   1946-01-01 ~ 1946-01-31
    • 기술
      이 문서는 1946년 1월 1일에서 1946년 1월 31일 사이 트럭섬 상황을 다루고 있는 트럭섬 및 캐롤라인제도 중부 점령군의 작전일지다. 당시 트럭(Truk)섬으로 불린 이곳의 현재 명칭은 축제도(Chuuk Islands)다.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위임통치를 통해 트럭섬이 속한 캐롤라인 제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며 주요한 군사기지로 활용했고 일본군 "위안부"도 동원하여 배치했다. 1944년 2월 미군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트럭섬의 일본 함선과 항공대 등이 궤멸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군이 이 지역을 점령, 통치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일본군의 전쟁범죄, 그리고 군인 및 민간인의 소개 업무를 담당할 부대를 구성해 트럭섬에 머물렀던 이들의 귀환을 실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46년 1월 트럭 두블론섬에서 총 14,298명의 귀환이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일본인이 10,795명으로 가장 많았고, 조선인이 3,483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 외에 오키나와인 11명, 대만인 9명 역시 1946년 1월 트럭섬에서 본국으로 귀환했다. 3,483명의 한국인 중에는 군인이 190명, 노동자가 3,049명, 민간인이 244명이었다. 보고서에는 일본군 ‘위안부’로 추측되는 26명의 조선인 여성과 아이 1명이 탑승했던 이키노(IKINO)호가 1946년 1월 17일 368명의 승객을 태우고 트럭 두블론섬을 출발했음을 보여주는 기록, <트럭(TRUK)에서 소개된 일본인, 조선인과 오키나와인 인원 명부, 일본 이키노(IKINO)호 승선>이 존재한다. 또한 보고서 말미에 1946년 1월의 귀환에 관계된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이 첨부되어있다. 그 가운데 1월 17일 이키노호를 타고 두블론섬을 떠난 조선인 여성들의 사진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였던 이복순으로 추정되는 사진도 존재한다.
    • 기여자
    • 연관정보
    • 수집/이관 기관
    • 언어
      영어
    • 보존유형
      준영구
    • 접근조건
      접근유형
      공개
    • 이용조건
      이용유형
      제한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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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색도구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RG 127 Entry A1 46B Box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