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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렐리우섬 사령부 본부, 기동 부대 94.5.3. 공식 작전일지, 1946-02-05
    • 관리번호
      서울기록원 고유번호 :
    • 식별번호
      RG7-SR8-FI37-IT77
    • 기술계층

      기록철(File)

      기록건(Item) <-

      펠렐리우섬 사령부 본부, 기동 부대 94.5.3. 공식 작전일지

    • 부제목
      Official War Diary, Headquarters, Island command, Peleliu
    • 기술계층
      기록건(Item)
    • 법적지위
      非공공기록
    • 소장처
    • 기록유형
      일반문서류
    • 일자
      [생산]   1946-02-05 ~ 1946-02-05
    • 기술
      이 문서는 태평양 서쪽의 도서국가인 팔라우(Palau) 펠렐리우(Peleliu)섬을 점령한 미군이 1946년 2월 5일 작성한 작전일지다. 일본은 1914년 11월 팔라우가 속한 캐롤라인제도를 비롯해 북마리아나제도와 마셜제도 등 태평양의 섬들을 점령했다. 그리고 군정을 실시하면서 자원을 확보해 일본군의 태평양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았다. 당시 일본은 자신이 식민지로 점령했던 이들 태평양의 섬들을 남쪽 바다의 섬들이라는 뜻을 지닌 "남양군도" 라고 불렀다. 1922년 남양청 본부가 설치된 팔라우는 일본의 남양군도 통치의 중심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남양군도를 점령함에 따라 이에 속한 섬들로 조선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했고, 노동자 강제동원이 시작된 1939년 이후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남양청 대신 일본 해군이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했고, 태평양의 섬들이 격전지가 되면서 군인과 ‘위안부’가 동원되었다.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남양군도’에는 노동자와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다수 남아있었다. 이 작전일지에서는 팔라우 최대의 섬인 바벨투아프(Babelthuap)섬에서 1946년 1월 소개(evacuation)한 결과를 목록으로 정리했는데, 이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선박을 이용해 부산으로 소개되었다. 한편 ‘5. 의료활동(Medical Activities)’ 항목을 통해 소개된 이들 가운데 일부가 ‘위안부’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항목에서는 ‘위안부’들이 귀환한 이후 섬의 상황을 언급하는데 “대부분 ‘위안부’였던(practicing prostitution) 조선인 여성의 소개는 미군 병력의 성병 가능성을 낮췄다.”라고 하고 있다.
    • 기여자
    • 연관정보
    • 수집/이관 기관
    • 언어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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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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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근유형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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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유형
      제한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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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RG 127 Entry A1 46B Box 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