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Jobs Ep.01 「CURATOR」 인터뷰 내용 공개
지난주에 정다영 큐레이터님의 일과 삶, 아카이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Archives&Jobs Ep.1 「CURATOR」를 공개했습니다.
인터뷰 때, 흥미로웠던 이야기가 정말 많았는데, 영상에 모두 담을 수 없어 영상을 공개하고도 참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마련했습니다. 정다영 큐레이터님과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합니다.
(*일부 생략 또는 편집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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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카이브와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큐레이터로 알려졌습니다. 혹자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데, 스스로 정의하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무엇인가요?
정다영) 큐레이터는 사물과 사람을 매개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작가의 작품, 역사적 자료들 그리고 비물질적인 디지털 자료까지 시대를 담은 이야기의 사물들을 끄집어 내 펼쳐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물들에 집중하고 선택할 수 있는 눈 밝은 사람이 큐레이터이고, 저는 그 중에서 전시와 책을 만드는 일로 제 일을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Q) 커리어의 변화는 어떠했고, 그 변화가 지금의 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정) 저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입사하여 큐레이터로 일하기 전에 한국 최초의 문화예술전문지인 <공간>을 발행하는 공간사 편집부에서 에디터로 일했습니다. 공간사옥은 건물 자체가 문화유산으로서 시간을 간직한 곳이었고, 50년이 넘는 <공간>지의 역사는 제가 하는 일 자체가 가진 무게의 중요성을 알려주었습니다. 최근에야 공간은 건축전문지로 심화되었지만, 2000년도 이전만 해도 당대 한국과 세계의 문화예술을 우리말로 선보이는 최고의 잡지였습니다.
제가 일했던 당시의 편집부는 한국 건축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기획자들의 산실이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좋은 분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지금 정림건축문화재단의 상임이사인 박성태 선생님이 편집장이셨고, 임진영 오픈하우스서울 대표님이 당시 편집팀장, 박성진 사이트앤페이지 대표님, 그리고 김정은 현 <공간>지 편집장이 제 선임이었습니다. 이런 분들과 일하면서 기자가 어떤 태도로 현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지를 자연스레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당시 <공간> 편집부에서는 기획기사가 정말 중요했는데, 각자 어떤 주제로 특집을 만들어갈지 은근 내부 경쟁하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기획기사를 만드는 것을 정말 좋아했고,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는 다양한 이야기를 편집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아마도 이 경험이 제가 에디터에서 큐레이터로 전향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기획기사를 만드는 것이 2차원의 평면 위에 기획을 하는 것이라면, 전시는 3차원의 공간 안에서 기획을 하는 것이니까요. 제가 하는 일의 무대가 달라졌을 뿐, 큰 줄기는 그리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Q) 전시를 기획할 때 영감을 받는 것이 있다면?
정) 제가 전시를 만들면서 좋아하는 자료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행정기록과 건립지입니다. 이런 자료들을 보면 그 안에 있는 내용들이 자신들을 끄집어내 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아 흥미롭습니다. 멋진 건물을 볼 때의 감흥처럼, 빛바랜 자료를 발견한 때의 감흥이 제게는 비슷합니다.
행정기록을 좋아하는 이유는 한국 건축의 특수성과도 관련 있습니다. 국가 재건의 시기였던 1960~1980년대 건축은 그 자체로 독립하지 못하고 국가 주도의 프로젝트로 진행되어왔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만든 전시가 2018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 한국관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이었습니다.
한국 건축에서 국가의 역할을 떼어놓고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했던 전시였어요. 그런 국가의 역할을 살필 수 있는 것이 바로 행정기록입니다. 당시 행정부가 건축가에게 어떤 요구를 했는지, 어떤 목적으로 이러한 장소와 건물을 지으려 했는지 생생하게 살필 수 있는 자료이지요.
건립지도 마찬가지 입니다. 딱딱한 개조식 문서와 실시 도면과 공사 현장 사진 등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지만, 당시 기술의 조건, 현장의 분위기, 협업 체계 등을 살필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인 자료 입니다. 소설가 김연수가 소설을 쓸 때 “구체적인 단어를 쓰는 건 세계를 좀 더 현실 세계와 가깝게 만들기” 위해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전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전시가 화이트큐브의 박제된 무엇에 그치는 아니라 우리의 현실과 좀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 정확히 따져 묻는 것이 필요하고, 그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그러한 자료 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Q) 아카이브를 토대로 많은 전시를 해오셨는데요. 그 기획 과정이나 방법은 어떠했나요?
정) 2013년에는 정기용 건축가 개인의 자료를 가지고 일종의 회고전을 구성했고요. 2014년에는 비슷한 방식으로 <이타미 준>이라는 재일 건축가 전시를 기획을 했었어요. 최근에 <이타미 준의 바다>라는 영화도 개봉했었고요. 한 작가의 유산을 재구성해서 보여준 전시가 아니라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조금 다른 결로 했던 전시가 2017년도에 했던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였어요. 제목에서 보시는 것처럼 종이 자체가 주인공인 전시여서 굉장히 많은 문서들이 전시장에 놓여 있었고, 문서는 납작한 형체이기 때문에 어떻게 공간에 펼쳐 놓을지가 하나의 숙제였어요.
정기용 선생님 전시는 그분이 남기신 자료가 있었는데, <종이와 콘크리트> 전시를 만들 때는 사실 손에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자료들을 찾아서 모으는 것이었는데, 탐정처럼 ‘이 분이 아마 이걸 가지고 있을 것이다.’ 추적하면서 자료를 찾았고요. 그 자료를 저희가 “한 번 보여주세요.”하고 방문을 했을 때, 많은 분의 대답은 “이게 어떻게 전시가 되겠어요?”였어요. 자료들을 모으고 분석해내는 과정에서 큰 줄거리를 설정하는 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정기용 선생님 전시는 그 분께서 남긴 이야기를 어떻게 잘 구현할까에 초점을 두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주제를 인위적으로 설정하기 보다는 그냥 자료가 말하는 것들을 잘 지켜주고 싶다. 저는 길을 닦는 사람역할 정도만 했던 것 같고요. 근데 <종이와 콘크리트> 같은 경우는 아카이브의 편집, 재맥락화, 이런 관점에서 더 힘을 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료도 차분히 나열하는 것보다는 약간의 시선의 차이를 두었어요. 중요한 자료는 크게 , 굉장히 작은 자료는 작게 보여주고, 그리고 어떤 것들은 영상으로 만들고 또 어떤 것들은 실제 사물로 대체하는 식으로요. 각각의 자료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이 전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연관시키는 좋은 방법은 무엇인지, 적합한 방법을 찾기 위한 가공의 과정이 많았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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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저희가 이제 일 얘기를 해보았고, 이제 선생님의 개인적인 기록에 대한 생각을 여쭤보려고 합니다. 개인 정다영에게 기록이란 무엇인가요?
정) 제가 어렸을 때 사실 책이 굉장히 많았었어요. 특히 아버지가 책을 사는 걸 너무 좋아하셨고요. 심지어 책 하나하나를 다 아스테이지로 정성스럽게 싸고 어디서 샀는지 메모하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었는데, 그렇게 책과 기록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 제가 하는 일하고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께 받은 하나의 선물이 있는데 그게 아버지가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썼었던 육아 일기예요. 그림이랑 글이랑 같이 담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 대한 본인의 사랑과 소망을 적어놓으셨던 것인데요. 첫 페이지에 그런 말을 써놓으셨더라고요. ‘이 공책은 아가가 5학년이 될 때 줄 것이다.’ 그리고 ‘1980년도’라고 적혀있었는데, 그 노트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40년 전의 정말 오래된 노트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가 너무 생생하게 다가오는 거죠. 저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지만, 육아 일기를 단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랬을 때 이런 어떤 마음 그 다음에 사랑, 이런 것들이 지금 저를 있게 한 근본 같은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사실 제가 사물의 가치를 굉장히 많이 얘기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물건에 애착은 좀 없는 편이에요. 그런데 아버지가 주셨던 그 노트는 저의 역사이기도 하고, 저의 기록이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혹시 아버지가 써주신 육아 일기에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정) 저는 어떤 특정한 구절보다는 그 ‘아가’라는 말이 너무 감동적으로 들리더라구요. 그러니까 ‘아기’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고, ‘아가’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어떤 순수함. 저는 그 말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누가 나를 이렇게 감싸주고, 이렇게 토닥여주는 느낌이 있어서, 저도 이제 저희 아이한테 ‘아가’라는 말을 지금도 하는데, 그 말이 가지고 있는 포근한 함의가 너무 좋아서 다른 것보다 그 표현이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Q) 선생님의 기록, 또는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면?
정) 그나마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기록의 습관이라고 하면 ‘쓴다’라는 거 같아요. 여전히 펜을 가지고 종이에 쓴다. 업무 다이어리 같은 경우도 여전히 그렇게 쓰고 있고, 메모도 사실은 핸드폰으로 남기는 것보다 손으로 쓰는 게 익숙한 사람인데요. ‘쓴다’라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약간 거창한 표현이기 하지만, 수행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필기구에 민감한 편이거든요. 그래서 특정 종이와 특정 필기구가 얼마만큼 케미가 맞느냐 이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런 ‘쓴다’라는 게 정신적으로도 좋은 거 같고요. 전 여전히 종이책을 더 좋아하고 특히나 책에 굉장히 줄을 많이 그어요. 줄을 긋는 것도 저는 ‘쓴다’라는 행위의 하나라고 보는데, 종이라는 물성과 펜이라는 것이 만나는 그 접점이 다이어리를 통해서, 독서를 통해서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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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카이브에 대한 큐레이터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요즘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아카이브가 유행입니다. 큐레이터님이 몸담고 계신 건축 분야에서 아카이브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나요?
정) 10년 전과 비교해 지금의 아카이브 열기는 굉장히 다르고 뜨겁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도 미술연구센터라는 아카이브 연구 센터가 생겼고, 내부 아카비스트 분들이 열심히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이 될 미술연구센터가 개관 준비 중이고, 2025년 개관 예정인 국립도시건축박물관이 건축 아카이브로 거듭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카이브가 여전히 건축계라는 현장의 생생한 언어로 자리잡진 못하고, 아카이브에 대한 학계의 말들이 약간 겉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론적으로 건축 아카이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실천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고, 현장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못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계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실무를 하는 분들, 아카이브 업무를 하고 계신 분들의 생생한 실천이 이론화될 필요가 있고,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이를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아카이브 열기로 인하여 일종의 피로도가 높아진 것 같기도 합니다. 아카이브 전시라고 했을 때의 뻔한 전경들이 관람자의 호기심을 빼앗기도 합니다. 단순히 자료를 나열하는 아카이브 전시는 기획 의도를 잘 전달하지도 못하고 시각적인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전시를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전시마다 서로 다른 해석과 배치법이 있고, 그 배치법이 전시의 가장 유의미한 지점을 건드리기도 합니다. 그간 보지 않았던 많은 자료들을 모아두었다고 해서 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를 위해서는 전시의 형식에 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Q) 국립현대미술관 입사 후 첫 전시는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입니다. 당시 전시를 기억하며 “헌신하는 마음으로 임한 전시다. 한 건축가의 일생 일대기가 기록된 자료, 그 자료의 가치를 발굴해 누군가의 유산을 밝게 비춰주는 것, 먼지 속에 있는 걸 세상으로 내보여주고 싶었다.”고 답한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큐레이터로 일을 시작할 때 아카이브에 대한 생각은 어떠했고, 이제 10년차에 들어서는 큐레이터 정다영에게 아카이브란 무엇입니까?
정) 아카이브는 제게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제도화된 소장품 목록과 소장처의 출처가 부재한 건축이란 장르를 전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 없었던 자료의 무덤이기도 합니다. 이때 제가 말하는 아카이브는 공식적인 아카이브가 아니라 대안적인 아카이브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개인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기록물의 더미, 여러 기관에 흩어져서 쌓여 있던 기록물, 오래된 잡지들, 이런 것들을 연결해서 이야기 흐름을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기용 선생님의 자료는 매우 귀중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미술관에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전시라는 절차를 거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스 더미에 먼지가 쌓여 초라한 모습으로 쌓여 있던 그 모습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미술관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 자료들이 작품처럼 전시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시를 함께 만들었던 디자이너, 아키비스트 모두 한 개인이 남긴 어머어마한 기록의 무게감과 그것의 진정성에 깊이 경의를 표했고, 무조건 전시를 성공적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정기용 선생님 전시를 올리기 전에 건축도시공간연구소와 미술관이 공동으로 건축 아카이브 관련 세미나를 했는데 그때 청중의 첫 질문이 “미술도 아카이빙하기 힘든데 웬 건축이냐.”라고 했던 말도 저한테는 깊이 박혀 있었지요. 미술이냐 건축이냐 그것의 장르 가르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일생동안 쌓아온 시간의 역사를 존중받게 하는 일이 제게는 중요했습니다. 그건 그간 미술관에 매우 약하고 희미하게 자리잡고 있던 ‘건축’이라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전시를 올린 후 정말 많은 분들이 전시를 보러 오셨어요. 전시 자체보다는 정기용이라는 사람이 가진 힘도 있겠지만, 그 전시를 통해 건축 아카이브를 대중화하고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Q) 정다영은 건축 아카이브 전시에서 하나의 브랜드처럼 보입니다. 그 일을 시작했고 주위에 좋은 영향을 끼치면서 커지고 있습니다. 이 브랜드를 어떻게 가꾸고 키울 생각인지 듣고 싶습니다. 그런 다짐, 미래에의 계획과 관련된 기록이나 기억이 있다면 보여주시거나 이야기해주셔도 좋습니다.
정) 저는 오랫동안 공공미술관의 큐레이터로 일해 왔기에, 전시가 가진 공공성과 그것이 끝날 때의 사후적 가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왔습니다.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전시보다 그 이후에 남겨질 물질적 유산들을 아카이브로 돌릴 수 있을지 고민했고, 미술관에 건축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0년이 지나니 이런 생각들도 조금은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공적이고 제도적인 기록보관소로서의 아카이브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개인들이 만들어내는 대안적인 아카이브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엮어 전시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개인들이 꾸준히 즐겁게 만들어 내는 기록들을 응원하고, 이것을 네트워크처럼 엮어 내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 개별의 대안적 아카이브가 제도적 아카이브 구축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그간 관심 가졌던 것이 '건축의 아카이브'였다면 지금은 '아카이브의 건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축에만 집중하지 않고, 디자인과 시각문화로 시야를 넓혀서 제가 가진 경험과 기술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건축이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건축하기’로서 가진 능동적이고 수행적인 힘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작년부터 대학원 디자인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건축, 디자인, 시각문화 전반을 관통하는 현상과 말을 찾고 그것들을 연구하고 기록하고 전시로 만드는 일을 구상하며 지금보다는 넓은 대상을 탐색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저 혼자 할 수는 없고 여러 동료와 연구자들과 함께 구상할 것입니다. 그런 연대를 생성하는 것이 또 전시 만들기의 가능성이기도 하니까요. 기획이란 원래 누군가를 위해 참여할 수 있는 공동의 판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판’을 잘 설계하여 다수의 새로운 건축 큐레이터들이 활동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Q) 아카이브 관련해서 "우리는 자료가 없어 항상 새롭게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큐레이터가 고고학자 역할까지 해야 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런 악습을 끊어내는 게 지금 디자인과 건축 큐레이터의 역할인 것같다. 항상 모든 게 새로워야 한다면, 그래서 기반이 없다면, 결국 헐겁고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맨 바닥에서 시작해야하는 일의 반복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축적되고 지속되는 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정) 국내 대학에 미술사학과는 있지만 건축사학과나 디자인사학과는 없습니다. 이론과 실기를 모두 한 전공에서 통합해서 가르치는 우리나라 교육 현장과도 연결되는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미술에 비해 건축은 그 연구기반이 헐거운 편입니다. 한국 현대건축과 관련된 개론서나 통사가 부족하고, 관련 작가 비평도 드문 편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생산해낸 건물의 질은 많이 높아졌지만, 그것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가 부족합니다. 건축은 건물이 아닙니다. 지어지지 않은 것, 건물을 구성하는 여러 지식 체계가 건축 입니다. 건물과 건축을 구분해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고, 건축에 관한 말들을 끌어내는 장이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시를 할 때 늘 고민되는 것은 전시가 비평과 담론, 역사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것을 촉발하는 것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번 전시 서문을 볼 때 우리는 “무엇 무엇을 기대한다”라는 종결로 끝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무엇을 기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인의 어깨위에서 바라보는 선명한 풍경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어느 정도의 역사적 거리를 확보한 사안에 대해 우리는 공증된 평가를 내릴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걸 회피하고 돌아간 나머지, 지금까지 쌓아온 많은 것들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합니다. 그나마 이런 어려움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현장에서도 느낍니다. 아카이브에 관해서라면 제가 10년 전 미술관에 들어왔을 때와 비교하면 정말 그 관심과 가치가 엄청나게 높아졌습니다. 관련한 박물관 건립 논의도 계속 진행되고 있구요. 이런 모든 것의 가장 기초는 시간을 기록한 사물들이 축적된 가장 보수적인 아카이브의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토대 위에서 각자의 관점을 갖고 다양하게 해석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이 정다영
인터뷰어 전미정
현장진행 전미정, 박소진
영 상 도미팩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