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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기록 이야기 #8] 한강대교의 비극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3일째인 1950년 6월 28일 새벽, 다가오는 포성을 피해 한강을 건너 피난을 가던 사람들이 다리와 함께 물속으로 잠기고 말았습니다. 북한군의 남하를 경계한 국군이 한강의 다리를 폭파시켜버렸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과 자동차가 건널 수 있는 다리는 한강인도교(현재의 한강대교)가 거의 유일했기 때문에 수많은 시민들이 그 위에 몰려 있었는데요. 갑자기 다리가 무너지자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과 자동차들, 심지어 군인들까지도 폭파에 휩쓸리거나 물에 빠졌고, 운 좋게 죽음을 면한 사람들은 피난길이 막힌 채 서울에 갇혀야만 했습니다.
참사를 일으킨 군은 공병감이었던 최창식 대령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지우고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그러나 1964년 진행된 재심에서 최공병감은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채병덕 소장(1950년 7월 27일 전사)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고, 다리 양편에 교통을 차단하기 위한 군인들을 배치시켜 사고 피해를 줄이고자 했음이 밝혀져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상관들의 잘못된 판단과 혼란스러운 명령체계로 인해 발생한 참사에 ‘희생양’으로 선택되었던 이의 억울함은 14년이 지나서야 풀릴 수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한강대교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남쪽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이 막힌 것입니다. 서울이 다시 수복되고 파괴된 인도교도 임시로나마 복구되자, 서울의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피난민들이 다시 한강인도교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검문소와 군인들, 그리고 ‘한강도강증’이라는 것이 있어야만 다리를 건널 수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한강인도교〉, 1950년대, 서울역사아카이브
〈한강 도하 엄금 주의 전단〉, 1950년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눈앞의 집을 두고 돌아서지 못한 사람들은 인도교 아래에 빽빽이 자리를 잡았고, 몰래 도강(渡江)을 시도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물이 녹아 있는 동안에는 암암리에 배를 구하거나 배 대신 나무 상자를 타고 강을 건너려 하였고, 물이 얼면 얼음 위를 건너다 살얼음 구간에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운 좋게 강을 건너더라도 곧장 적발되어 다시 강남으로 이송되었기 때문에 피난민들의 원한은 날로 깊어져만 갔습니다. 서울시는 이러한 비극을 줄이기 위해 도강 제한을 완화하고 시민증으로 한강을 오고갈 수 있도록 요청하는 진정서를 미군에 제출하였으나, 이 요청은 휴전협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시민증발급에대한고시의건〉, 《고시(제1호~제8호)》, 1951.12.31., 서울특별시 행정국 민원과
https://archives.seoul.go.kr/item/852029
〈서울특별시민증〉, 1950.10.28.,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https://www.nfm.go.kr/common/data/home/relic/detailPopup.do?seq=PS0100200100107997400000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강인도교는 휴전협정이 이루어진 1953년 이후 시민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보수공사를 한다며 다시 통행이 금지되었고, 1958년 다시 개통될 때까지 복구공사는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하였습니다. 철교 일부 구간에 임시 보도가 설치되었으나 너비는 50cm에 불과하고, 아스팔트는 갈라지고, 난간과 조명도 없는데 인파는 밀려들어 연일 위험천만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당국은 임시인도교를 대신해 부교, 강철주교(배다리), 목교(나무다리) 등을 가설해 이용하도록 하였습니다.
〈한강인도교공사〉, 《한강인도교공사》, 1958.04.07., 공보처 홍보국 사진담당관, 국가기록원 소장
http://theme.archives.go.kr/viewer/common/archWebViewer.do?bsid=200200043455&dsid=000000000003&gubun=search
〈한강 부교 개통식〉, 1957.10.14., 서울특별시 공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7778
〈한강대교 준공식〉, 1958.05.15, 서울특별시 공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7804
이처럼 수많은 사연을 가진 한강인도교, 즉 한강대교는 복구공사와 확장공사를 완료한 지금까지도 그날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강대교 교각을 살펴보면 한국전쟁 당시의 총탄자국을 발견할 수 있고, 노들섬 둔치에서는 ‘한강인도교 희생자 위령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작년 서울시는 이러한 한강대교를 보존 가치가 큰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정하여 서울시 등록문화재 제1호로 지정하였습니다.
《한강, 서울_기억이 흐르다》 전시의 〈한강다리 이야기〉 파트에서 한강대교 관련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