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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기록 이야기 #6] 한강 물고기 떼죽음 사건

[전시 기록 이야기 #6] 한강 물고기 떼죽음 사건

2021-11-25 보존서비스과 조회수 : 642

한강종합개발이 한창이던 1984년, 서울대교 인근에서 물고기 수백 마리가 떼죽음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개발에 필요한 자갈과 모래를 채취하기 위해 제방을 만들면서 대형 웅덩이가 생겼고, 거기에 인근에서 흘러든 생활하수가 고이면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한강물고기떼죽음보도에대한조치〉, 《중랑하수처리장관계철》, 1984.06.28., 서울특별시 건설기획국 하수계획과

https://archives.seoul.go.kr/item/1204984


다행히 이 사건은 제방의 일부를 헐어 오수가 빠져 나가게 하고, 하수는 한강 본류로 빠지도록 하면서 해결된 듯 보였습니다.
시민들은 맑아진 한강에서 낚시를 즐겼고, 언론은 ‘다시 태어난 한강’과 ‘돌아온 물고기’를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4년 뒤인 1988년 여름, 또다시 한강 곳곳에서 떼죽음 당한 물고기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한 달 전에 준공된 한강 하류의 수중보가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환경 단체들은 한강의 생태환경을 보호하려면 수중보를 철거해야한다고 말합니다.

한강의 수중보는 언제 어떤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왜 문제가 된 것일까요?

수중보란, 강물을 막아 가두기 위해 물속에 설치한 둑입니다.
현재 한강에는 잠실과 김포 두 곳에 수중보가 있는데요. 한강종합개발 사업의 하나로 설치되었습니다.
잠실수중보는 1986년 잠실대교 하단에 세워졌고, 물이 둑 위로 넘치게 하는 고정보, 댐처럼 물을 한꺼번에 뺄 수 있는 수문을 단 가동보, 배가 오르내릴 수 있는 갑문, 물고기가 다니는 어도(魚道)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김포의 신곡수중보는 1988년 행주대교 하류에 있는 백마섬 인근(현재 김포대교 하단)에 세워졌으며, 고정보와 가동보로만 구성되었습니다.
 

 

〈한강을 인공호수로〉, 《서울시보》 제106호, 1984.12.27., 서울특별시

〈한강 하류에 수중보 설치〉, 《서울시보》 제131호, 1985.09.11., 서울특별시

https://archives.seoul.go.kr/item/1071361


〈잠실 수중보 건설 기공〉, 1984.12.26., 서울특별시 공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7193#none




〈한강종합개발 잠실지구 공사현장〉, 1986.01.24., 서울역사아카이브

https://museum.seoul.go.kr/archive/archiveNew/NR_archiveView.do
 



〈서비관리청 하천공사 (하류수중보) 준공인가 신청서 제출〉, 《한강종합개발사업하류수중보실시계획》, 1988.06.14.,

서울특별시 건설기획국 하수계획과


두 개의 수중보는 한강 수위를 2.5m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시켜 한강을 ‘인공호수’로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한강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유람선이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잠실수중보에 설치된 어도는 상류로 이동하는 물고기와 이를 노리는 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생태학습장으로도 활용되며 시민 생활에 즐거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한강 유람선 시승〉, 1983.11.30., 서울특별시 공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7571#none
 

〈어도기능 개선을 위한 대상시설물 현황조사 보고〉, 《수중보 일반관계철》, 2004.11.24.,

서울특별시 한강시민공원사업소 시설부 치수과


그러나 수중보는 강물의 흐름을 막아 유속을 느리게 하므로, 강으로 흘러든 폐수가 한곳에 고여 썩어가도록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한강종합개발 이후 물고기가 떼죽음하고 오염물질이 떠다니자 수중보가 원인으로 지목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되살아난 줄 알았던 한강이 썩어간다는 것을 알게 된 시민들은 악취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고, 환경전문가들과 언론은 이러한 결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강행한 서울시와 환경청을 질타하였습니다.
 

 
 

〈기구변동에따른하류수중보처리〉, 《하류수중보관계철(7)》, 1988.06.08., 서울특별시 한강시민공원사업소 시설부 시설과

https://archives.seoul.go.kr/item/1241000


결국 서울시는 팔당댐의 방류량을 늘리고 수중보의 갑문을 열어 물의 흐름을 빠르게 만들었으며, 한강의 부유물을 수거하는 대청소를 하고, 안양천 및 난지도 하수처리장에 2차 처리시설을 설치하는 등 오염된 한강을 되살리기 위한 작업들을 시행하였습니다.
 

 
 

〈안양천,난지하수처리장방류구위치조정설계용역집행〉, 《88가양하수처리장방류관리》, 1988.12.24.,

서울특별시 건설기획국 하수계획과

https://archives.seoul.go.kr/item/1209683


이러한 노력들을 기울였다고 해서 한강의 자연이 단숨에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한강은 그 이후로도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한강 자연성 회복 사업’ 등 다양한 대규모 사업들을 겪었습니다. 한강의 경관은 다시 변화하였고, 일부 지역은 옛 모습을 제법 되찾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한강에는 수많은 환경 문제가 남아 있고, 시민들의 편의도 완전히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한강 수중보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강, 서울_기억이 흐르다》 전시의 〈개발의 이면〉 파트에서는 한강 수중보 건설 후 불거진 환경오염 문제 관련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