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Jobs Ep.03 「EDITOR」 월간 《디자인》 전은경 디렉터 인터뷰 전문
며칠 전 월간 《디자인》 전은경 디렉터님의 일과 삶, 아카이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Archives&Jobs Ep.03 「EDITOR」를 공개했습니다. 인터뷰 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영상에 모두 담을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에 인터뷰 내용을 편집하여 소개합니다.
(*일부 생략 또는 편집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Q1) 편집장님,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전은경(이하 전) : 저는 전은경이라고 하고요. 2006년에 월간《디자인》기자로 입사를 했고, 2011년부터 편집장을 10년간 했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월간《디자인》디렉터로 직함을 바꿨습니다.
Q2) 디자인 분야의 에디터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전 : 저는 처음부터 디자인 전문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월간《디자인》에 입사를 했고요. 어렸을 때보면 장래희망 란에 항상 기자나 아나운서라고 썼었어요. 그런데 디자이너도 되고 싶었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지금 기자와 디자이너의 영역이 교차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Q3) 월간 《디자인》에서 에디터로서의 일은 어떤 가요?
전 : 제가 하는 일은 에디터십을 갖고 콘텐츠 비즈니스 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직업인이라는 것은 일정 부분 어떤 식으로든 목적성이 있고 기여도 할 수 있어야 되고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의 비즈니스도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핵심 속성 중 에디터에 가까웠다고 생각을 해요. 저는 새로운 기획하는 것을 원래 굉장히 재밌어하고, 좋아했었어요. 그리고 호기심이 정말 많고 싫증을 굉장히 잘 내는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오래 했던 것은 바로 그런 저의 성격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싫증 잘 내고, 호기심 많고, 매달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에디터 하시라고, 저는 잡지 에디터가 ‘딱’이라고 권해드리고 싶거든요.
Q4) 기자에서 편집장, 지금은 디렉터가 되셨는데,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전 : 기자로 시작을 했기 때문에 편집장도 하고 싶었어요. 욕심이 났죠. 하고 싶었고 이왕 했으니까. 그런데 이것은 또 다른 국면이었어요. 그러니까 속성, 에디터십을 가지고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는 일은 같은데 조금 더 비즈니스가 되게 하는 역할에 더 무게가 있었던 거죠. 그런데 저는 그것도 좀 즐거웠어요, 결론적으로는. 내가 애써서 만든 콘텐츠가 더 노출이 되고 더 잘 팔리고 더 영향력이 있게 만드는 일들을 해야 했던 거죠. 그런데 이거는 다 연속선상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Q5) 에디터로서의 일이 개인적인 성격과 잘 맞았다는 말씀이시죠?
전 : 결과물을 빨리빨리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어요. 일들의 결과물을 바로바로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싫증을 낼 수가 없었던 것이, 하나 하고 나면 바로 다음 호 기획을 해야 되기 때문에, 반성하거나 실의에 빠져있을 시간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후회를 별로 안 하게 된 것 같아요. 지나간 것을 장기간 동안 반성하기보다는 ‘다음 기회가 있지, 다음 호가 있으니까 더 잘하면 되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도 그런 식으로 엄청난 정신 승리, 자기 최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매달 새로운 일들을 기획을 하고 앞으로 나가는 일을 했던 거지, 뒤를 자꾸 돌아보는 일은 안 했던 것 같아요.
Q6) 일을 하며 느낀 월간 <디자인> 아카이브의 의미
전 :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처음부터 그것을 굉장히 염두에 두진 않았어요. 지난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했던 전시에 아카이브를 쌓아가는 디자인 매거진 입장에서 참여를 했는데, 그때 제가 많이 깨달았어요. ‘제가 매달 만드는 새로운 기록물들이 자연스럽게 쌓여서 아카이브가 되었다.’라는 얘기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잡지는 매달 그 필드에 있는 새로운 일들을 취재를 하고, 트렌드라든가 이런 이슈들을 계속 기록하는 일을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매번 새로운 일들을 쌓아가는 경험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중에 한국 디자인 역사 아카이브에 영향을 만들어가고 또 그걸 쌓아가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는 조금 더 이슈를 고른다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 더 신경을 많이 쓰게 되긴 했어요.
Q7) 월간 《디자인》 디지털 라이브러리는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전 : 월간 《디자인》은 사기업이 발행하는 매체에요. 하지만 디자인 전문지라는 시장이 워낙 특수하고, 그리고 국내에서 최초로 발행을 시작했고, 아직까지 발행이 되는 잡지다 보니까 저희가 사명감과 책임감이 큰 것이죠. 그리고 디자인하우스의 이영애 사장님의 의지가 또 굉장히 크셨죠. 나중에 디자이너들이나 한국 디자인의 역사와 아카이브를 남긴다는 그런 자부심으로 저희가 계속 잡지도 발행하고 있고, 그래서 디지털 아카이브도 남기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Q8) 월간 《디자인》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만들기 전에는 어땠나요? 또는 디지털화가 필요했을 텐데요. 또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전 : (디지털화는) 제 기억에는 2010년, 11년 정도였을 것 같아요. 전에는 수장고에 책으로만 보관했었고, 세 권씩, 네 권씩 합본을 했었어요. 낱권으로 보관하면 다 없어지거든요. 2000년대 중반부터는 데이터가 인디자인 파일로 나왔지만, 그 전까지는 디지털화가 되어있지 않아서 드럼스캔을 받았어요. 나머지들은 데이터로 갖고 있는데 이미지로 올라가 있긴 해요.
갑자기 그 때 고생한 생각이 나는데 왜냐하면, 스캔을 했든 데이터가 있든 업로드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목차와 태그를 다는 작업을 일일이 해야 했어요. 그런데 외주를 주거나, 남을 시킬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거예요. 저희 기자들하고 근 몇 개월 동안 그걸 일일이 엑셀에 제목, 주요한 태그들을 다는 작업을 정말 몇 달을 했어요.
사실은 분류가 더 중요해요. 그것이 올라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활용가치가 낮거든요. 검색할 때 내가 생각하는 키워드로 검색해서는 아카이브를 찾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분류가 잘 되어 있어야지 검색도 잘되고,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찾을 수 있거든요. 그런 작업이 안 되면 그냥 덩어리죠. 그래서 요즘에 드는 생각은 아카이빙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나중에 연구하거나 자료를 찾는 사람들이 원활하게 접근할 수 있는 형태로 분류하는 작업이 정말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이 디지털 라이브러리는 저희 책을 정기구독하시는 독자들에게만 전체 오픈을 하고 있습니다.
Q9)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내 아카이브
전 :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사실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관리가 잘 되어있는 디자인 전문 라이브러리예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레어북 룸이라는 곳이 있어요. 중요한, 디자인과 관련된 중요한 잡지들을 전권 소장하고 있는 곳이거든요. 500호를 기념해서 월간 《디자인》을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서 전권 소장을 하셨어요. 워낙 오래된 책이 많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관리를 해줘서 오픈할 수 있으면 저희로서는 더 너무 더 기쁜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책 모으는 데도 사실은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 책을 500권이면 그게 500권이 다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저희도 여분의 책을 많이 갖고 있지 않았어요. 쭉 모아보니까 한 300권? 이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머지 책을 저희와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같이 구했어요. 그래서 또 느꼈죠. ‘보관을 잘해야 되겠다.’ 저는 관리 잘 해줄 곳이 제 입장에선 더 중요해요. 따로 보관도 잘 해주고, 대출이나 열람 관리를 잘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컨디션을 가진 곳에 월간 《디자인》이 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Q10) 아카이브
전 : 저는 항상 지금부터 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보통은 시간 지나고 나서 옛날 아카이브를 찾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하고 책 구하는 데 애를 쓰는데, 디지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지금 있는 정보들은 너무 흔한 거예요. 그래서 아무도 관리를 똑바로 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제 시간이 지나면 옛날 자료를 찾으려고 그때부터 고생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오늘부터 시작하는 아카이브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Q11) 디자인 업계에서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 가요?
전 : 디자인 쪽의 아카이브도 굉장히 열악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세계적인 기업들도 크게 다르진 않았던 것 같아요. 몇 년 전에 디자인 잘하는 기업의 브랜드북을 취재하는 기획기사를 준비했었어요. 그때 소니, 뱅앤올룹슨, 애플 같은 기업의 브랜드북이 나와서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애플의 브랜드북은 20만 원이 넘는 고가인데도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굉장히 화제가 됐었거든요. 조너선 아이브가 한 인터뷰를 보니까 거기도 마찬가지였더라고요. 본인도 아카이브북을 만들려고 했더니 사실은 물리적인 아카이브에 서툴렀다는 것을 알게 됐대요. 그래서 브랜드북에 나오는 사진들은 사실 매장 가서 새로 사고, 옥션 가서 구하고, 이런 것들이었다고 해요. 자체적으로도 아카이빙을 똑바로 하지 않았던 거예요. 제품 아카이브를. ‘물리적인 아카이브는 우리도 서툴렀다.’라고 설명을 하더라고요.
Q12) 디자인 계에서 아카이브의 활용법
전 : 럭셔리 브랜드일수록 아카이브와 헤리티지를 정말 잘 활용하거든요. 왜냐하면 소위 명품 브랜드들은 헤리티지 자체가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핵심 자산이라서 그렇거든요. 그래서 디올이나 다른 브랜드들도 헤리티지 전담 매니저가 따로 있어요. 옛날에 꾸뛰르 드레스라든가 그리고 디올이 살았던 성을 매입을 해서 뮤지엄으로 개조를 한다든가 이런 작업을 하는 팀들이...
그런 관리를 잘 하니까 브랜드북도 만들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정신들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보관하는 헤리티지 뮤지엄이 있고 그렇거든요. 그 근간이 되는 것은 결국 아카이브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Q13) 월간 《디자인》 아카이브를 활용한 콘텐츠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게 있다면?
전 : 아카이브를 활용한 기획들은 대부분 기념호 때 많이 나와요. 일종의 헤리티지를 어필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아카이브에서 기사를 많이 가져와요. 저의 경우는 400호를 만들 때 그런 방식을 좀 취했어요. 저희 월간 《디자인》 자체의 디지털 라이브러리에서 찾은 한국 디자인의 하이라이트 류의 기사를 기획한 거죠. 그래서 그 때 제가 400개를 채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원래 의도는 한 호당 제일 중요했던 이슈를 하나씩, 특집 같은 거겠죠? 딱 집어서 그것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기사였어요. 그래서 기사를 이렇게 보기만 해도 한국 디자인, 월간 《디자인》을 통해서 보는 한국 디자인의 장면들 하이라이트를 모아서 쉽게, 한 번에 이해할 수 있게끔 기사를 만들어야 되겠다고 기획을 했었어요.
Q14) 기억에 남는 기획
제가 2006년에 아트 마케팅에 관한 기사를 그때 기자일 때 특집으로 기획해서 썼었거든요. 이게 트렌드이고 앞으로 굉장히 중요한 이슈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그런 아트 마케팅 콜라보레이션이 너무 흔한데, 그때만 해도 국내에 사례가 많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예감. ‘이거는 굉장히 중요한 이슈가 될 것 같아.’ 사례를 좀 찾아보니까 해외에는 꼭 아트 마케팅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유사한 사례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기사로 한번 기획을 해봐야 되겠다.’라고 그때 당시 편집장님과 상의를 해서 제가 하고 싶다고 자원을 해서 기사를 썼어요. 그 기사 이후로 신문사나 이런 데서도 기사를 써달라는 청탁도 많이 받았고, 이걸로 강연을 해달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 이후에 비슷한 기사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그때 최초로 ‘아 내가 이런 약간 감이 좀 있나 보다. 내가 이 일에 자질이 좀 있나 보다.’ 라고 생각을 했어요.
에디터는 글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한데요. 이슈를 잘 파악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냥 글 잘 쓰는 분들은 굉장히 많은데, 잡지라는 형태로 나올 때는 어떤 이슈를 제안해줄 수 있어야 하거든요. 특히 전문지는 그것이 더 중요한 롤이라고 생각을 해요. 일반 매체들보다는. 그래서 그런 감과 능력이 중요하고, 그리고 지금 같은 시대에는 종이책을 넘어설 수 있는 콘텐츠 제작 능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15) 일상의 기록 습관?
저는 제가 쓴 노트 막 다 버리거든요? 그런데 뒤져보기 시작하니까, 또 잘 모으는 성격이기도 했더라고요. 취재를 가거나, 컨퍼런스 가면 프레스택을 주거든요. 제가 그걸 모아놓은 거예요. 나한테 재미있었고, 의미 있었다고 생각하는 행사의 택들은 보관을 해놓고요. 제가 어떤 행사를 갔을 때 받았던 초청장들 같은 게 있잖아요? 그리고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보내주는 제작물들은 아주 예쁜 것들이 많아요. 그런 것들은 박스로 모아놨더라고요. ‘은경박스’라고 해서, ‘어, 이건 정말 좋은 디자인인 것 같아.’ 이러면 거기다가 넣어놓거든요, 요즘도...
그런데 이건 일과 개인적인 성향이 다 얽혀진 것이고, 저는 그런 것들을 다 모았다가 한꺼번에 버리는 것 같아요. 저는 기록도 주기적으로 좀 버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내 눈에는 너무 좋고, 멋지고, 꼭 갖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좀 시간이 지나서 판단해보니까, 그럴 가치가 없으면 좀 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3년까지는 일기를 썼어요. 일기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월기에 가까웠죠. 월의 이슈들, 그런 것들을 기록하는 버릇이 있었어요. 어느새 부터인가 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SNS 때문인 것 같아요 내가 마음에 드는 순간과 코멘트를 달아서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으면 기록으로 남질 않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는 일종의 그걸 개인 아카이브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Q16) 앞으로의 계획?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그런 말을 했더라고요. ‘참여하는 사람은 기록하지 않고, 기록하는 사람은 참여하지 않는다.’ 이런 멋있는 말을 했는데. 약간 이거랑 비슷한 것 아닌가? 왜냐하면 저는 기자라는 롤만 떼어놓고 생각을 해보면,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에 가깝지 직접 실행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거예요 경험이 늘어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기록도 하고 편집도 하지만 뭔가 참여하고 실행하는 일로도 조금 더 에디터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 이런 니즈가 조금 더 생기는 것 같아요 일종의 진화. 진화나 발전?
Q17) 전은경에게 아카이브란?
저에게 아카이브는 오늘의 기록, 내일의 헤리티지 아닐까 생각하고요. 기억보다 더 중요한 기록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