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기록 이야기 #10] ‘아름다운 한강 다리’의 시작, 성산대교
‘아름다운 한강 다리’ 하면 어떤 다리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올림픽대교, 반포대교, 원효대교 등 다양한 다리들을 떠올리실 텐데요. 많은 한강 다리들이 환한 색상과 특색 있는 구조물, 화려한 야경으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한강 다리가 처음부터 미관을 고려해 건설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60~70년대에 세워진 양화대교(구교), 한남대교, 마포대교, 잠실대교 등의 다리들은 경제성과 기능성을 우선하였기 때문에 다소 평범한 외관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렇게 ‘건너는 다리’에서 ‘보는 다리’로 한강 다리의 개념이 변화한 시기를 찾아보면 그 시작점에 1980년에 준공된 성산대교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자춘 당시 서울시장은 성산대교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이가 길고 조형미가 넘쳐흐르는 예술작품”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합니다. 우후죽순처럼 바삐 세워지던 한강 다리에서 ‘아름다움’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산대교의 ‘조형미’를 높이기 위해 각계각층의 자문을 받던 서울시는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 김교만 교수에게 성산대교의 모형 제작을 의뢰하였고, 바깥쪽에 반달모양의 아치를 세운 다리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반달모양 난간에는 각각 9개씩 구멍을 뚫었는데, 지루하지 않도록 리듬감을 살린 것입니다.
〈성산대교형태결정을위한연구용역〉, 《공사대장Ⅱ》, 1977.02.28., 서울특별시 건설기획국 도로계획과
https://archives.seoul.go.kr/item/1176501
〈성산대교 조감도〉, 1978.01.21., 서울특별시 문화공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7878#none
〈구자춘 서울시장, 성산대교 공사 현장 시찰〉, 1978.09.09., 서울특별시 문화공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7712#none
성산대교는 11번째 다리인 성수대교와 같은 ‘트러스 공법’으로 세워졌으며, 다른 한강 다리보다 기둥 사이의 거리가 멀어 날렵해 보이도록 하였습니다. ‘트러스’란 철로 만든 봉을 그물 모양으로 연결해 만든 뼈대를 말하고, 미리 만들어 둔 트러스를 기둥 위에 올려 다리를 세우는 방식을 ‘트러스 공법’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다리의 형태와 종류
〈성산대교 공사 현장〉, 1978.06.06., 서울특별시 문화공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7850#none
〈성산대교 공사 현장〉, 1979.03.27., 서울특별시 문화공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7852#none
색깔은 산뜻한 주황색으로 칠하여 푸른 한강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는데, 이 색깔을 정하게 된 데에도 한 가지 비화가 전합니다. 개통식을 앞두고 성산대교의 색을 고민하던 서울시 관계자가 ‘정부 고위층 인사가 부산대교의 색이 좋다고 칭찬했다’는 말을 듣고 관계 공무원을 부산에 급히 출장 보내 부산대교와 같은 주황색으로 칠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세하게 미관을 신경 쓴 덕에 성산대교는 오늘날까지도 ‘아름다운 한강다리’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81 서울〉, 《81서울》, 1981., 서울특별시 홍보담당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1236659
《한강, 서울_기억이 흐르다》 전시실 전경
서울기록원 《한강, 서울_기억이 흐르다》 전시의 〈한강다리 이야기〉 파트에서 성산대교 모형과 관련 자료들을 확인해보세요.
※ 참고자료 : 성산대교 건설 관련 신문기사 바로보기
1) 「국내최장의 ‘성산대교’ 조형미 살리기로」, 『동아일보』 제16949호, 1976.11.02. 【6면】
2) 「반달형 성산대교가 선다」, 『조선일보』 제17178호, 1977.02.03. 【6면】
3) 「성산대교 색깔 주황색으로」, 『동아일보』 제18053호, 1980.06.07.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