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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정치성에 관한 몇 가지 단상(2)

기록의 정치성에 관한 몇 가지 단상(2)

2019-04-29 서울기록원 조회수 : 420



* 4월 25일 국가기록원이 주최한 <1차 기록관리 정책포럼: 국가기록관리의 사회적 역할과 사명>에서 한신대 이영남 선생님이 발표한 내용입니다. 아카이브를 다루는, 공부하는, 관심을 갖고 있는 공동체가 함께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두 번으로 나누어 공유합니다. 저자의 주장은 서울기록원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4장 ‘정치적 존재인가, 아카이브’와 5장 ‘몇 가지 제안’을 공유합니다.

 


 

4. 정치적 존재인가, 아카이브

1) 정치적 행위와 정치적 책임

윤리적 행위를 먼저 살펴보고 정치적 행위를 비교하며 서술한다. 윤리적 행위는 개인의 시각에서 출발한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를 고민한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기본적으로 윤리학이다. 다른 사람을 설득할 필요까지는 없다. 윤리적 행위는 자기가 자기를 설득하는 것이고 스스로 납득되는 것이다. 내 의지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순수한 관계를 맺고, 지금 여기에서 시의적절 하게 행동하는 지혜와 용기가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적 행위는 차원이 다르다. 정치적 행위에는 다른 종류의 화합이 필요 하며 목표가 다르다.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영향력-파급력있는 조직을 결성하고 활동해야 한다. 정치적 행위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설득되는 것이다. 물론 선거처럼 제도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설득의 의미가 살아난다. 정치적 행위는 내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 행위에는 다른 사람들의 의지를 고려하는 것 이 중요하다. 또한 법과 제도 등 지속적인 관리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
윤리적 행위와 정치적 행위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차이점은, 누구와 상대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이상 으로 원론적인 차원에서 윤리적 행위와 정치적 행위를 살펴보았다. 서술이 더 필요한줄 알지만 여기에서 줄인다. 정치적 책임은 현정문서를 분석할 때 언급하는 형식으로 한다.
 

2) 아카이브는 무엇인가

아카이브를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기록물을 기다리는 빈 기록상 자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기록관리 종사자들에게 아카이브는 음성이나 문자 로서 존재하는 것 같다. 현재까지는 개념으로서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다.
20년을 열심히 달려서 굵직한 변화를 끊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기록의 인구구 성이 달라졌다는 점일 것 같다. 새로운 이유로 기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 다. 그들은 자신들의 절실한 욕망을 기록에 넣고 있다. 예를 들면 인권, 정의, 연대같은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언어를 쓰고자 하며 새로운 윤리를 기록에 새기고 있다. 이런 흐름을 현행 기록관리는 수용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기록의 요구이 다. 기록으로 안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카이브는 무엇인가를 묻는다.
아카이브를 익숙한 방식인 기록관리 시설이나 건물, 보존기록물, 기록관리 절차와 방법 등으로 이해하든 상관은 없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두 개의 기 록세계가 들어가야 할 집이라는 점은 합의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은 ‘기록관리를허문 다음에 세워야 할 ‘새로운 기록은 아카이브’라는 가설을 내세운다. 이 가설에 대 해서는 대화가 필요할 것 같다.
아카이브는 이미 익숙한 일상, 더 이상 궁금함을 자아내지도 않고 매력도 없는 사물이 되어 버린 것만 같다. 그러나 묻고 싶다. 우리는 아카이브를 다 아는 것일까. 아 카이브는 이제 과거를 알려주는 지질학의 대상이 되었는가. 그렇지는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기록관리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카이브를 무시하는 것 같다. 찬밥 신세이 다. 현실이라는 이유로 기록관리만 손에 쥐고 있는 것 같다.
아카이브는 어디에 있을까? 세종시의 대통령기록관이 아카이브인가. 성남의 나라 기록관이 아카이브인가, 서울 은평구의 서울기록원이 아카이브인가. 만약 아카이브라 면 왜 이름을 아카이브라고 하지 않고 기록관이라고 할까. 영구기록물관리기관/전문 기록물관리기관/헌법기록물관리기관/지방기록물관리기관/각급기록물관리기관,... 끝없이 이어지는 기록물관리기관은 그 앞에 형용사만 바꾸고는 반복된다. 계절이 바뀌면새들도 바뀐다. 아직 아카이브라는 이름을 가진 새들이 없다는 점에서 기록의 계절은 여전하다(최근 시도되는 지방아카이브에 대해서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
기록관리가 아카이브의 번역어이니 기록관리를 말하는 것이 아카이브를 말하는 것 이라는 말에는 생각을 달리한다. 일상적으로 아카이브를 쓰고 있으니 관심을 갖고 있 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달리한다. 아카이브라는 발음을 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일까. 그러나 생각해보자. ‘대통령기록관리’는 당초 1999년에 기록관리법에 이미 들어 있었다. 사무관리제도의 구석에 있었던 문서관리처럼 대통령기록관리도 공 공기록관리의 후미진 구석에 있었다. 그런데 이차저차해서 별도로 독립해나가면서 건물도 생겼고, 인력도 늘어났고, 조직도 만들어지고, 기록물도 많아지고, 점차 위험의징후를 보이더니 우여곡절의 역사를 써가고 있다. 단지 말이었다면, 이미 알고 있는 말뿐이었다면 그런 현실의 변화는 발생할 수 없었다. 국가기록원도 건물을 늘려가지만 그것은 새로운 사회적 존재를 구성하는 건물의 확장은 아닌 것 같다.
변화는 개념에서 온다. 새로운 개념은 새로운 존재들을 불러들인다. 선영도 그랬다. 선영이 기록관리라는 개념을 만들자, 제도(법률), 기구(기록관), 인력(기록물관리전 문요원), 재산(기록물), 원칙과 방법론이 맞물려 들어왔다. 그러면서 기록관리라는 새로운 세계가 형성된 것이다.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라는 존재는 기록관리라는 개념이 있은 후에 출현한 법률적 존재이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개념은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논문 한 편에 담기는 것이 개념은 아니다. 개념을 형성하는 계열 중의 하나가 탄 탄한 연구논문인 것은 사실이지만 논문 자체가 개념은 아니다. 개념은 무엇보다도 당사자들의 집단적 경험이나 집단적 힘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나 힘을 조직하는 것은 물음과 대화이다. 제도의 힘이 물론 있어야 하지만 규범의 힘이 크게 작용할 것 같다.
아카이브란 무엇인가, 의문을 품어야 한다고 본다. 또는 아카이브를 옮겨야 할 것같다. 만약 대통령기록관이 매일 위치를 바꾼다면 대통령기록관 직원들은 늦지 않고 출근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은 생기지 않지만 우리 마음에 있는 아카이브 이미지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묻는 것은 우리를 구속하는 고정관념을 의심하는 것이다. 고정 관념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꿀벌에게 배워본다.
꿀벌을 치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다. 어느 날 그는 번뜩이는 생각에 한 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아침에 벌집을 열면 꿀벌들은 각자, 또는 삼삼오오 모여서 꽃을향해 날아갔다. 저녁이 들어올 무렵이면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치고 각자 자기 집으 로 들어오지 않은가. 이 점이 신기했다. 꿀벌은 어떻게 자기 집인 줄 아는가. 만약 꿀벌의 위치를 바꿔놓으면 어떨까. 그래도 자기 집을 찾을 수 있을까.
첫 날이었다. 아주 조금, 슬쩍,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벌집을 5cm 옮겼다. 그런 데 꿀벌들은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무사히 자기 집으로 귀환했다.바보 같으니. 적어도 왜 옮겼어 하면서 양봉업자가 벌인 작당에 대해 한 마디는 하고집으로 들어가야지.
둘째 날이었다. 이번에는 힘을 쓰기로 했다. 벌집을 번쩍 들어서는 대여섯 발걸음을 걸어가 내려놓았다. 2m 거리에 벌집을 옮겨 놓았다. 꿀벌 치는 사람의 이마에는땀이 조금 맺혔다. 놀랍게도 꿀벌들은 집을 찾지 못했다. 원래 벌집이 있던 곳에서밤새 웽웽거렸다. 바보 같으니. 조금만 고개를 돌려서 옆을 봐. 옆에 있잖아. 겨우 2m야. 같이 지낸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 새 양봉업자를 닮아서는, 고정관념, 기득권, 이해타산에 빠져 있는 거야. 양봉업자의 문법에 따를수록 ‘간신히 빛나던 존엄’은 사 라지잖아. 존엄은 내팽겨 치고 오직 꿀, 꿀, 꿀 하지 마. 동물이면 동물답게 굴어. 날개가 있는 너에게 2m 거리는 별 일도 아니잖아.
셋째 날이었다. 양봉업자에게 권력의 맛은 꿀보다도 달콤했다. 타인을 그의 의사 에 반해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힘(가장 전통적인 권력의 의미)은 얼마나 짜릿한지. 양봉업자는 이번에는 이삿짐센터를 불렀다. 차로 한참을 가서 벌집을 내려놓았다. 3km 거리. 저녁이 왔다. 어떻게 되었을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꿀벌들은 평소 와 다름없이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각자 자기 집을 찾아 들어갔다. 어떻게 그럴수 있었을까. 미스터리.7)

7) 다음을 개작했다.

“벌집을 매일 밤 3cm씩 옮겨도 벌들은 아침에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 놀랍게도, 벌집을 3km 옮겨도 벌들에게는 문제가 없다.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방향감각을 재설정하는데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벌집을 2m 옮기면 벌들은 치명적인혼란에 빠진다. 그들은 상황이 달라진 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감각을 재조정하지 않는다. 따라서먹이를찾아나갔다가 돌아왔을때 그들은자신들의집을인지하지못한다.집이불과2미터옆에있 는데도 그들은 원래 집이 있던 빈 공간을 계속 맴돈다.”

(월터 머치, 《눈 깜빡일 사이》, 2010, 비즈앤비즈, 22쪽).

세 번의 실험에 대해 이번에는 꿀벌의 이야기를 들었다. 꿀 치는 사람의 이번 임 상실험에 참가한 소감에 대한 것이었다. 5cm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았다. “그 정도 변화는 평소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굳이 왜 옮겼느냐고 따질 게재는 아니었습 니다. 우리는 어제의 관행에 따라 오늘을 살았습니다.” 2m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았다. “그것은 난감했습니다. 우리라고 왜 2m 거리에 있는 벌집을 보지 못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집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상도의상 남의 집에 들어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단지 왜 갑자기 우리 집이 없어졌는지가 혼란스러워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껴서 그 자리에서 뱅뱅 맴돌 수밖에 없었습니다.” 3km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우리의 태도를 바꿔야 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정서, 태도와 윤리, 가치와 정체성, 역할과 책임을 다 시 재고해야 했던 것입니다. 위치, 감각, 행동방식 등 우리 자신을 리셋 해야 했었지 요. 그리고는 우리 집의 냄새를 따라가면서 3km 거리를 비행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혼란보다는 변화에 필요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상이 벌치는 사람에게 들은 얘기이다. 3m 거리에 아카이브를 옮기는 것이 좋긴하겠지만 그보다는 2m 거리에 있는 것을 찾아다니면서 혼돈을 느끼는 것도 좋을 것같다. 《맹자》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울타리를 넓히면 가축의 목줄을 메어 놓을 필요가 없다. 일일이 목줄로 가축을 사육하기보다는, 멀찌감치 울타리를 쳐서 사는 동안에는 자유와 안전을 보장 받으며 살아 건강한 가축을 기르자는 뜻으로 이해한다. 맹자의 기록학이 있다면, 울타리를 넓게 치는 기록학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2m 거리도 울타리를 넓게 치는 것이라 생각한다.
 

3) 생태적 세계관의 이해와 역사적 구성

아카이브는 하나의 세계이다. 어떤 세계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유기적 인과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회색늑대 이야기를 해본다.
1995년이었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회색늑대 14마리가 나타났다. 공원측에 서 생태계 복원을 위해 캐나다에서 들여온 늑대들이었다. 늑대는 사슴을 사냥하기 시 작했다. 70년 동안 천적 없이 무사태평이었던 사슴들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개체수의감소보다는 사슴들의 행동이 급격히 달라졌다는 점이 중요했다. 사슴들은 위험한 곳(계곡, 협곡)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사슴들이 떠나자 잡초들이 마음 놓고 자랐고, 나무들도 많아졌고, 근사한 숲이 형성되었다. 숲이 생기자 새들이 날아왔다.곰들도 나타나 딸기를 따먹었다. 곰들은 사슴의 새끼도 잡아먹었다.
나무를 좋아하는 습성을 지닌 비버는 어디선가 돌아와 강둑을 만들었다. 비버의강둑은 수달, 오리, 어류들의 서식지가 되었다. 늑대는 코요테도 잡아먹었다. 코요테의 숫자가 줄자 코요테가 즐겨 먹던 토끼와 생쥐가 늘어났다. 그러자 토끼와 생쥐를좋아하는 여우, 족제비, 오소리, 독소리가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강물이 움직였다. 굽이 줄어들고 침식도 줄어들고 물길도 좁아졌다. 더 많은 웅덩이가 생기고 급류지역도 늘었다. 그것은 숲이 강둑을 견고하게 받쳐주었기 때문이다. 계곡 옆면에서 자라던 식 물들이 강의 경사면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주자 토양침식도 줄어들었다. 회색늑대 프로젝트를 정리하자. 늑대는 사슴과 코요테만 잡아먹는 최상위 포식자가 아니었다. 늑대 는 존재하는 방식이 달랐고 의미도 달랐다. 늑대는 식물들과 다른 동물들에게 서식지 를 주고 생명을 주었던, 생태계를 복원했던 목수였다.8)
8) 죠지 몬비오(George Monbiot), 〈훨씬 더 경이로운 세상을 위해, 야생성을 회복시킵시다〉, TED 강연 (2013.7.6.)

이런 물음이 가능하다. 기록관리는 정부의 늑대였을까. 이 물음은 가지를 친다. 아 카이브는 그럼 정부의 늑대일 수 있을까. 또는 인간이 있는 곳에 생태계가 파괴되어 서 늑대가 필요하다면, 아카이브는 늑대일 수 있을까.
지난 10년을 정체의 시기로 이해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어떤 평가기준인지 궁금해진다. 혹시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의 배치현황인가, 지방아카이브의 설치현황인가. 기록관리법의 항목을 평가기준을 삼아 달성 정도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든다. 정부의 기록관리가 정체일 순 있겠다. 그러나 정부에만 기록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 은가. 너무 자기중심적이지 않은가. 왜 자기 밖에 모르는가. 지난 10년은 기록의 연대 기에서 특이한 시기였다. ‘기록열병’이라 말할 정도로 아카이브는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급격한 변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 함의는 무엇일까.
정부의 기록관리 틀에서 이런 변화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수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 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따로 논의하자, 집어치우자> 하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기록과 시민의 기록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새로운 기록프레임을 고민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카이브의 현재 상황을 진단하는 데 있어, 기록관리법 말고도 다른 평가기준이 있기 때문이며 관계적 접근으로 볼 수 있 는 거시적 평가기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토탈 아카이브 논의와도 연결된다 하겠다. 다만, 기록물이 아니라 관계를 중점적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차이도 있을 수 있겠다.
이 글은 지난 10년을 풍요의 시간으로 이해한다. 농사조차 지을 수 없는 박토가좋은 토양으로 변했던 풍요일까를 가꾼 것은 누구인가.

“농사를 하는 듯 마는 듯 10년이 흘렀다. 무슨 일이 있었나? 가장 박한 땅에서 자란다는 칡과 억새, 가시딸기, 쑥, 망초 따위가 농장을 뒤덮었다. 잡초 줄기를 틀어쥐고 흔들어 뽑아내자 후드득 떨어지는 흙이 그렇게 보드라울 수가 없었다. 땅속 사방 으로 뿌리를 뻗치면서 굳은 흙을 아주 잘게 부숴놓은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들이 나고 죽고를 반복하면서 쌓인 유기물질로 인해 표토가 마치 양탄자처럼 푹신하게 되 었다. 내가 없는 동안 잡초가 농사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9)

9) 황대권, 《고맙다 잡초야》, 2012, 도솔, 122-123쪽.

황대권은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13년 2개월을교도소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그를 지켜준 것은 사소한 물건, 벌레, 잡초였다고 한다. 황대권은 잡초 의 생태적 의미를 이해하고부터는 잡초라는 말을 쓸 수 없었다. 그 말은 무시, 편견, 냉대가 가득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야생초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사람들의 의식을 바꿔보려고 부단히 노 력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책을 쓸 시점에서는 다 포기하고 잡초로 선회했다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단어 하나를바꾸어사람들의 의식을바꿀수 있다면얼마나좋을까마는10년 동안 나는 의식의 변화가 아니라 유행의 변화를 목격했을 따름이다.” 이제는 오히려 야생초보다는 잡초에 더 깊은 애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꼭 그런 잡초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릭은 2007년 무렵부터잡초를 잡초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매년 늦가을이면 잡초기록(그림)을 전시하는 농부들과 어울려 지냈다. 그래서인지 릭은 잡초가 처음부터 사랑스러웠다.
기록관리직이 정부에서 기록관리 한다면서 다 떠난 곳에서, 인간의 일로서 기록을 다룬 것은 잡초와 벌레였다. 이 은유를 사실적으로 말하는 것은 현정과 현정문서 이 야기로 말해본다. 기록을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처음에는 느릿했지만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는 것 같다.
 

4) 기록의 마음

이 글은 사실 마음에서 출발했다. 벌써 20쪽을 향해 간다. 1쪽부터 시작했어야 할논의였는데, 너무 멀리 왔다. 지금이라도 마음과 기록의 관계에 대해 말해야 한다.
마음은 생각, 정서, 감각, 태도, 습관, 기억, 윤리, 도덕, 가치(신뢰, 우정, 사랑 등) 세계관 등의 인구로 구성된 집합체이다. 마음은 인간의 핵심이다. “heart는 라틴어cor에서 왔고, 단지 감정만이 아니라 자아의 핵심이다. 앎의 형식-지적·정서적·감각 적·직관적·상상적·경험적·관계적·신체적-이 수렴되는 중심부이다.”10) 마음은 삶을 이해 하고 구성하는 능력이다. record, courage도 라틴어 cor(심장)로 구성된 말이다. 심 장은 우리 몸의 중요한 장기이다. 심장은 의학만의 특수 장기가 아니다. 심장은 피가순환한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일상에서 폭넓게 활용되는 은유이다. 심장은 피가 순환하는, 또는 우리 삶의 핵심을 순환시키는 신체의 어떤 장소를 상징한다. 늦은 밤 귀가하는 길에서 가끔씩 나오는 근원적인 물음이 보존되어 있는 곳, 자신과 자신에게 중요한 타인에 관한 것을 통합할 수 있는 곳,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충실해질 수 있는 곳,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할 때 필요한 용기를 찾을 수 있는 곳이 마음이다. record가 이런 상징세계의 일원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기록도 마음을 구성하는 인구이다.
10) 파커 J. 파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2012, 글항아리, 38쪽

마음이란 학문영역이 아니거나 그렇더라도 정신의학 계열이나 윤리학 계열이라는분류법 때문인지, 기록관리 대상에서 마음은 누락되어 있다. 현실이 아니기에 빠져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은 지배적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태도를 만날 수 있다.첫째, 남의 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태도일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단견인 것 같다.현재의 사회적 상황을 보자. 아카이브를 다른 분야에서는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다. 인권, 정치, 예술 등에서 이미 아카이브는 주요 논점이 되었다. 아카이브의 주인임을 자 부한다면 아카이브를 쓰는 타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이런 대 화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집에 들어가서 그 집의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둘째, 마음은 기록관리 현장에서 쓸 수 없다는 태도일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지난 20년 동안 정부의 기록관리가 기록현장을 기록행정으로 매우 좁혔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마음에 관한 기록학적 논의는 계속 있었다.11) 이런 기록태도는 기록의 냄새를 맡으며 따라가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록의 마음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기록에 관한 생각과 말, 기록에 관한 태도와 습관, 아키비스트 윤리강령. ‘인권옹호를 위한 아키비스트와 기록관리자의 역할에 관한 기본 원칙’(2016, ICA)에서 요청하는 실천적 기록활동 등이다.
11) 논문 몇 편을 겨우 단편적으로 읽었다. 연구사 정리라 할 수 없다. 독서 목록만 나열해보면 다음과같다.

- 아키비스트 윤리강령을 다룬 여러 편의 논문이 있다.
- 마음의 세부를 다룬 연구로는 우정(조은성 2013), 이미지/심상, 기호(조민지 2014), 실천주의(이현정 2014), 정동(이경래 2017), 보살핌(이현정 2018) 등이다. 마음에 관한 논문으로 읽었다.
- 아카이브의 거버넌스에도 마음이 있다(예. 서울기록원 + 기억발전소 2018의 관계, 경청).
- 몇 편의 석사논문에도 마음이 있다. 습관(이숙 2016), 주권(김신석 2017), 체화된 지식(정다현2017), PR(류가은 2017), 여행(강석주 2019) 등.
- 구술과 공동체 아카이브의 실천적 활동, 포스트모더니즘 아카이브 연구경향, 정치철학의 연구 경향에도 마음이 있지만, 아직 그 정도 연구가 진척되지 못했다.
실천적 기록활동은 마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마음을 말하는 품사를 폭넓게 사용해야 한다. 특히 public mind가 있어야 한다. public이라는 형용사는 공동체를향한 어떤 태도이다. public mind는 자신이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신체(몸과 마음)를 두고 있는 곳이다. 그것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향한 마음이고, 공동체에서 오는 마음이다. 전화통화를 하는 상황처럼, 비록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이 지금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이다. 자신의 어떤 행동이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를 훼손할 수도 있고, 반대로 지지하고 연대하고 강화 할 수도 있다는 의식적 자각이다. 그것은 타인이라는 존재를 의식하는 행동이다. 문제 는 이것이 과연 공공기록관리와 상관이 있는가 하는 것이고, 상관이 있다면 어떤 점에서 상관이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마음은 규범으로, 언어(body language 포함)로 생산된다. 마음은 일정한 사회적 관계에서 생산되고 상호작용하고 다시 수용되는 방식으로 변형된다. 매일 떠오르는태양처럼 매일의 변용성이 마음이다. 기록관계가 어떻게 구성되느냐 하는 것도 기록 의 마음이다. 국가기록원과 공공기록관의 상호관계는 법률적 기록관계이다. 일상적인 이런 기록관계에서 어떤 언어(공문, 전화통화나 회의석상의 말 등)인가, 어떤 태도인 가, 어떤 정서인가 하는 것이 우리는 어떤 기록을 추구하느냐 하는 것이다. 1999년에 는 기록물 관리가 중요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기록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 이 오히려 진지하게 필요한 국면이 되었다.12) 이 국면에서는 기록의 마음도 중요하다 는 생각이다.
12) 정치적인 격동이 여운으로 있었던 2018년 6월, 한국기록학회가 주최한 월례발표회가 있었다. 이 인 상적인 기록모임은 20년 동안의 장기지속 물음인 기록이란 무엇인가를 논의 테이블에 올렸다. 2018 년 이전에도 기록이란 무엇인가 하는 말과 글과 제도화가 있었고, 2018년 이후에도 지속되지 않을 까 한다(설문원 2019). 기록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기록공동체의 영원한 화두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기록관리 분야에서 마음은 사이드 메뉴 취급을 받았다. 시민의 아카이브활동이 민간기록관리라고 취급되며 방치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각각은 서로 다른 존재이다. 누가 누구에게 우월함이나 계몽정신을 가질 수 없다. 연민이면 족하다.
정치적 맥락에서 마음은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힘으로 이해가 된다.
마음은 민주주의적 기질(에릭 M 우슬러너 2013)이다. 신뢰를 예로 들어본다. 신뢰는 마음의 영역이다. 신뢰를 말하는 것이 개 밥풀 뜯어먹는 한가한 소리, 맥락 없는 소리라고 치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아카이브는 민주주의의 심장부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같은 동네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신뢰는 민주주의적 기질이다. 신뢰는 부모로부터 배우기 시작해 살면서 지속적으로 배운다. 신뢰는 구성원들을 하나의 공통체로 묶어주는 고리이다. 신뢰는 존재론의 항목이고 공동체 구성의 원리이다.13)
13) 에릭 M. 우슬러너, 《신뢰의 힘 – 신뢰의 도덕적 토대》, 2013, 오늘의 책.

존재를 인정하느냐는 그 존재를 신뢰하느냐이다. 신뢰는 존재성(정당성)에 관한 것 이고, 존재방식(관계와 역할에 대한 것)에 관한 것이다. 무력으로 자신을 내세우는 방 법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견이다. 장기지속의 원리는 존재를 구성하는 자들의 동의 와 합의이다. 동의와 합의는 신뢰의 표현이자 척도이다. 그것은 당신을 신뢰하지 않는 다, 당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공적 자리에서 내려오면 좋겠다는것이 아니었던가. 이것을 무력으로 제압하다가 끝내 촛불에 굴복했던 것이 아니었던 가. 사인간의 관계만이 아니다. 신뢰는 공적 관계(Public Relation)에서도 적용되는 정치적·구성적 힘(constituent power)이다. 14)
공적 관계(PR)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일방적으로 알리는 홍보가 아니다. PR=홍보 등식은 잘못된 이해이다(류가은 2017). PR은 어떤 기록관계를 맺는 가 하는 논의이다. PR은 public mind 계열에 속하는 기록관리 도구이다. 마음 계열에 속하는 기록도구는 많다. 2장의 도표에도 나열되어 있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많이 부족하다(사실적인 것은 현정문서를 참조하라. 논지를 심화할 수 있을 것 같다).
14) 이 말은 원래 불어 ‘pouvoir constituant’에서 왔는데, 정치철학에서는 ‘새로운 정치체제, 새로운정 치 적 공 동 체 를 구 성 하는 힘 ( 활력 ) ’ 을 의 미 한 다고 한 다( 안 토 니오 네 그리 · 마 이클 하 트, 《 공통 체 》, 2014, 사월의 책, 38쪽). 이 글도 이런 맥락에서 썼다.

마음은 새로운 정치체제,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힘이다(안토니오 네그 리·마이클 하트, 2014). 마음은 모던 아카이브로 태동하던 시기부터 사회학, 정치철학의 탐구대상이었다(김홍종 2009).15)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기록의 마음은 기록자 개인의 실존적인 상황에서도, 그리고 기록을 재구성해야 사회적 차원에서도 논의되어왔다. 예를 들어, 저명한 테리 쿡은 마음으로(archival mindset) 모던 아카이브 150여 년의 역사를 재구성했다(테리 쿡 2013). 한국의 기록공동체도 마음에 주목하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정책포럼에서도 기록의 마음에 대해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애초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았다. 가끔은 기록학을 지배하는 진정한 학문이 경영학이 아닐까 하는 것. 기록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윤리학이 아니라 경영학이 관리하는 것 같다. 그러나 기록과 마음의 관계는 정치학이어야 할 것 같다. 마음을 다양한 정치공동체를 구성하는 원리로 이해하고 여기에 기여할 바는 찾는 것이 기록 의 정치학이지 않을까.
15) “뒤르켐의 ‘집합표상’, 베버의 ‘정신’, 푸코의 ‘에토스’, 토크빌의 ‘습속’, 아날학파의 ‘심성’, 레이먼드윌리엄스의 ‘정서구조’와 같이 사회학의 방대한 전통 속에 이미 존재하는, ‘집합적 마음의 구조화된 질서’라는 의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김홍종, 《마음의 사회학》, 2009, 문학동네, 7쪽)
 

5) 현정과 현정문서

마음의 관점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찾은 문서가 있다. 아카이브의 건축 기술은 현정문서에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현정은 아카이브에 진지했다. 현정의 관심은 아 키이브였다. 현정은 아카이브를 찾아 세상을 주유했다. 현정문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 속에서 고뇌와 번민, 갈망과 정의감, 같이해야 하지 않겠냐는 호소를 만날 수 있다.
물론 논의를 단순하게 해야 했기에 현정이라는 실존하는 가상인물을 만들었다. 대안적 논의를 위해서는 현실감이 있어야 하고 토론의 지점이 명확할 것 같았다. 실존 인물을 연상시키는 캐릭터와 같이 읽을 수 있는 발표된 글을 찾았다. 현정은 이야기 를 이끌어가는 캐릭터이다. 또한 지난 20년 동안 기록을 서식지로 삼아 기록하는 동물로 살았던 사람들, 순간들, 이룩한 성과와 좌절 등에 대한 집합적 표상이다.
예를 들면, 기록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바쳤던 몇 날 며칠, 자라나는 후세를 위해 강의에 바쳤던 밤과 낮, 기록전문직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순간들, 자기가 관리하는 기록의 가치를 고민했던 시간, 시민과 어울리며 기록활동을 했던 시간, 우리를 슬프게 하는 사회적 사건이나 일상의 기록현장에 들어가서는 슬픔에 벤치에 함께 앉아 한 동 안 고민했던 시간, 기록으로 약자를 옹호하려는 정의감을 기록의 본질이라 생각했던 시간, 정부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 기록으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간, 사회를 분석하고 민주주의 방향성으로 이끌어가려고 노력했던 시간, ‘현’을 설득하고 움직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시간, 그리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 간, 보고서 하나를 위해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던 시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 서 기록물을 정리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 한 번의 기록물 폐기를 위해 바친 몇 개월.현정은 이런 노고에 대한 집합적 표상이다.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운 이런 노력의 순간들은 기록으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기록 의 태도이고 사회의 진보를 위한 기록행동이었다. 기록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는 의지였다. 기록을 새로운 언어적, 물리적 질서로 작동하는 별세계(別世界)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기록은 이렇게 하나의 가치 있는 세계로 구성되었다. 다만, 이런 장엄한 기록서사를 다 쓸 수 없어서, 현정이라는 캐릭터가 필요했고, 논의가 필요한 현정문서 로 제한했다. 집합적 존재는 역사적 형성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다. 20년 동안 아카이브를 고민했던 기록자들의 진지했던 시간을 현정문서로 집약시켜 살펴볼 것이다.
현정문서는 다채롭고 풍요롭다. 처음 읽는 사람은 2m 거리감으로 혼돈을 느낄 수 도 있다. 그러나 몇 번을 읽어보면 ‘강의실에 늑대 한 마디가 들어왔다’는 파격의 시 각적이미지를만날수있을것이다. 생경한언어,정서,태도,윤리를기록에삽입하려는 진지한 시도가 있다. 건축에 필요한 기술이 많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도 현정 문서의 주인공은 새로운 존재이다. 선영문서의 주인공이 기록물이라면 현정문서의 주 인공은 ‘타인’이다.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이 이끌어간다. 기록물이 이끌어가는 기록서 사와 인간이 이끌어가는 기록서사는 다를 것 같다.
현정문서는 “나는 기록물을 관리한다.”(A)는 사실보다는 “나는 타인을 보살핀다.”(B)는 프로포즈에 방점을 찍는다. 서술의 편의상 A, B로 구분했다. A의 목적어는 기록물이다. B의 목적어는 타인이다. 목적어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인생사 누구와 엮이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리며 운명이 달라진다. 왕자님의 옷을 입느냐, 거지의 옷을 입느냐에 따라 인생행로가 달라진다. 또는 심순애가 김중배와 엮이면 다이아몬드를 받고, 이수일과 엮이면 푸념을 받는다(아닐 수도 있긴 있다). 순애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요즘이라면 인형의 집 속편에 등장하는 노라에게 물어보면 좋을 것 같다. 기록종사자도 어떤 계열의 문장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기록하는 방법, 태도, 윤리, 정서, 언어, 가치관 등이 달라진다는 생각이다. 오늘은 B가 주인공이다. A는 주인 공을 빛내주는 조연(경합하는 조연)의 역할을 맡는다.
A와 B, 두 개의 계열과 그 계열들을 묶어주는 퐁(fonds)에 대해서 쓴다. ‘기록의 정치성에 관한 단상’을 굳이 계열과 퐁에 넣어 말해보려고 하는 것은 이런 기록언어 의 품사(명사)가 기록종사자에게 익숙하기 때문이요, 오늘 말한 것들을 담을 수 있기 까닭이다. 은유(예: 잡초와 벌레)는 서사와 이미지의 씨앗이 된다. 그렇지 않을까. 우리 가 추구할 기록이미지를 위해, 우리가 서식할 수 있는 기록서사를 위해, 그리고 우리 가 기록에 관한 것들을 찾으려는 시간에 시소러스처럼 우리를 안내해줄 은유를 위해,새로운 기록언어가 필요하다. 신체를 바꾸는 것은 신체가 처한 상황을 바꾸는 것이다. 다른 상황에 가면 신체는 바뀐다.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다른 언어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 변신 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설은 다음과 같다. 현정문서는 적어도 아카이브를 건축하는 원리적 출발을 알리 는 문서가 될 수 있다는 것. 또는 노크이지 않을까 하는 것.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소 리일 수도 있고 밖으로 나오면 좋겠다는 소리일 수도 있다. 똑똑똑, 누군가 문을 노크한다.
 

5. 몇 가지 제안

1) 적폐를 대하는 태도 : 이행기 정의

법 제정 20년이다. 이곳저곳에서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은 ‘신장개업’이라도 하는 것 같다. 국가기록원이 고언을 청해 듣겠다는 정책포럼은 20년을 굽어보며 좋은 레시피(정책방안)를 논의해보자는 자리이지 않은가. 좋은 일이라 생각한 다. 별 일이 없었다면 20년은 <제정기 → 혁신기 → 확산기 → 모색기>의 국면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7년까지를 제정기-혁신기로 보는 것, 2017년 3월 탄핵 이후 2년이 새로운 모색기라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는 없을 것 같다. 문제는 2008년~2017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일 것 같다.
이 시기를 적폐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 시기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 이전과 그 이후에 대해서도 새로운 논의가 가능할 것 같다. 이에 대해 말해본다. 이시기는 역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반동적으로) 한 바퀴 굴렀던 시기이다. 정부의 기록관리가 공적으로 쓰이지 않고 사적 전유의 상태로 부당하게 쓰였다. 여론과 군중 을 동원하고 공무원들을 강요해서는 정부기록과 정부기록시스템을 복수, 혐오, 처벌에악용했다. 부당한 통치 권력이었다. 부당한 통치술이었다.
이 글은 적폐의 시간이라는 데에는 동의하며 적폐청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이 다. 이 글에서 말하는 적폐는 2018년 2월 국가기록원에 제출된 <국가기록관리 혁신 방안>(2018.2)에서 언급한 적폐를 말한다. ‘적폐’라는 말은 박근혜정부에서 먼저 쓰기 시작했고, 촛불 때 시민들이 썼고, 지금은 정부 차원에서도 적폐청산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적폐청산은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사회를 보는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다. 국가 기록원도 정부의 적폐청산 흐름에 맞춰 자발적으로 혁신 TF를 꾸려서 보고서 작성을 요청했던 사안이다. 그 후 1년이 지났다. 이미 끝난 사안인가. 다시 재론하는 것이 어리석은가.
식당의 은유가 필요할 것 같다. 한 식당 주인이 신장개업을 한다며 레시피를 열심 히 개발했다. 그런데 한동안 영업을 하지 않아 홀은 어수선했다. 식당은 음식 맛이라 는 당연한 생각이 앞섰던 식당주인은 바닥청소는 그만 깜빡 잊은 채 손님을 받았다.바닥에는 휴지, 오물, 먼지가 있었다. 손님들은 새로운 간판과 음식 맛에 끌려 식당에 들어섰지만 그 곳에서 밥을 먹지는 못했다. 레시피 개발도 중요하지만 바닥청소도 중 요하지 않을까.
국가기록원이 적폐세력으로 몰려서 많이 위축되었다는 말을 가끔 사석에서 듣는 다. 개인과 조직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아무개 아무개가 한 일이기 도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국가기록원이라는 조직이 한 일이라는 점이다. 국가기록원 은 정부조직의 일원이다. 정부조직이 불법적인 일을 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수 에 관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근대국가에 속하는 정부이다. 근대국가는 사인 간의 복수를 금하고 법적 절차를 통해 정의를 구현한다. 전통시대에는 아버지를 죽인 사람과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어 직접 복수를 해서 자식된 도리를 다해야 했 다. 그러나 근대국가는 자력구제에 해당하는 사인간의 처벌을 불법적인 것으로 금한 다. 대신 정부가 나서서 법적 절차를 통해 정의를 구현한다.
적폐청산은 <이행기 정의>에 관한 일이다. 이행기 정의는 과거사 청산을 위한 담론이다. 여기에는 5대 원칙이 있다. 첫째, 어떤 일이 있었는가(진상규명). 둘째, 그 일 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책임규명). 셋째, 옳은 일인가, 옳지 않은 일인가(가치). 넷째, 피해자의 슬픔을 이해하고 같이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슬퍼함). 다섯째, 문제를 개선하려고 하는가(의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배상, 제도개혁, 문화적 구축(추모시설, 기념관 등)16).
16)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사건 토론회 자료집》(국회의원 진선미·국가인권위원회, 2018.6.22.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

이행기 정의는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사적으로 가해자를 찾아가서 응징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에 4.3 70주기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했다. 그리고 진상규명 등의 책임을 안았다. 문재인이라는 사람이 70년전에 제주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었다. 정부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정부가 저지른 국가폭력에 대해 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사과를 해야 했다. 개인과 조직은 구분해야 한다. 이것은 국가범죄, 또는 정부가 정당하게 일했는가 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개인적 접근이 아니라 제도적 접근을 하기 위함이고, 제도적 접근보다는규범적 접근을 하기 위함이다(규범은 ‘인간이 행동하거나 판단할 때에 마땅히 따르고 지켜 야 할 가치판단의 기준’이다. 보다 자세한 것은 후술한다). 이행기 정의가 제대로 집행되면 공동체 구성원들은 그 전에 비해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 수 있다. 적폐청산의 요지는 이것이다(처벌에 대해서는 사법적 처벌로만 좁히지 않으면 좋겠다. 정치적 책임의 차 원에서 다루는 것이 좋을 것 같다. 4장에서 다룰 예정이었다).
국가기록원도 나름의 고충이 있을 줄 안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은 현재 공공기록관 리법의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을 자임하고 있다. 자기 혼자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넘어진 것은 아니다. 한 국가의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이어서 공공기록관리 최종책임자 라고 한다면, 고충만 내세워서는 안 될 것 같다. 1999년 이후 진행된 공공기록관리의 혁신성이 불신을 받기 때문이다. 5대 원칙대로 하자는 말을 지금 이 자리에서 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행기 정의를 위한 별도의 논의 자리가 있다면 그 때는 구체적으로 시 시비비를 가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는 원론적 접근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맑다. 적폐로 이해되는 지난 10년만큼 이 문장의 정치적 실상을 잘 말해주는 시간도 없을 것 같다. 정부기록에 관한 한 국가기록원이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정부기록에 관한 한 청와대보다는 국가기록원이 윗물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정부 의 적폐청산 과정, 이행기 정의의 과정도 결국 정부기록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공기록관리에는 또 하나의 차원이 있다.
이행기 정의는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일 양국의 관계에서, 한국은 일본에 대 해 과거를 반성해야 공동의 미래를 모색할 수 있다고 말을 한다. 반면 일본 정부는 과거를 말할수록 양국의 불신이 깊어지니 과거보다는 미래를 모색하자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믿기 어렵다. 한국 사람들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일본 정부의 태도에 신뢰를 가질 수 없다.
올 해는 법 제정 후 20년이 되는 해이다. 국가기록원이 20주년 행사를 준비하는줄 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불신(식당의 은유에서는 바닥에 떨어진 휴지, 오물, 먼지)을 내려다보고 하나씩 찬찬히 풀어가는 것이 바닥청소이다. 글 을 쓸 때는 바닥까지 내려가서 써야 한다는 은유가 있다. 자기가 자기를 신뢰하는 글 은 자신의 밑바닥에서 나온다는 취지일 것이다. 바닥청소는 신뢰를 복원하는 일이다. 누구나 자력으로만 살 수는 없다. 타력에 의지해서 자신의 이해와 욕망을 덜어내야 한다. 자신을 객관적인 위치에 놓는 것은 자신을 비판하는 타력을 내부로 수용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당사자가 내딛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국가기록원은 타력에 의지해(혁신TF) 개선의지를 보였었다. 이제 마지막한 걸음이 아닌가.
국가기록원이 명분을 가지고 일하면 좋겠다. 찬찬히 이행기 정의를 수행하며 기록 정의를 구현하기를 희망한다.
 

2) 불가능성의 투자

기록관리가 불가능한 것을 찾아보면 어떨까? 다음과 같은 기록풍경을 상상한다.
“미국 아이오와 시절, 한 달에 대여섯 차례씩 돌아오던 낭송의 시간을 기억한다.진지한 낭송, 몰입한 청중들, 그 고요와 긴장, 목소리의 떨림. 우리나라에서도 그것이 가능했으면 하는 생각을 그때 했다. 한 번은 <내 여자의 열매>라는 나의 단편소설을낭독하는 날이었다. 직접적인 독자의 반응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떨리는 일인지 나는미처 모르고 있었다. 영어로 읽기 전에 한국말로 한 부분을 읽었다. 그 순간 그들의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강연과는 달랐다. 다른 느낌의 소통이었 다. 읽기가 끝난 뒤 에란다스는 나에게, 자신의 옆 좌석에 앉았던 여자가 내내 눈물을 흘렸다고 말해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작은 도시에서, 서툰 영어로, 연고도 전혀 없 던 내가 그 생활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문화적으로 풍요한 공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결국 나는 부인하지 못하겠다.”17)
17) 한강,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2003, 열림원, 121-123쪽.

이것은 국가기록원 열람실 풍경과는 사뭇 다른 기록풍경이다. 국가기록원 같은 거대한 전문기록관리관에서는 불가능한 기록시간일 지도 모르겠다(현재의 구조에서는 공공기록관에서도 불가능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의 불가능성을, 국가기록 원의 불가능성이라는 이유로 기록의 세계에서 추방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오히려 국가기록원은 자신의 불가능성을 찾아서는 좋은 곳에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지원은 하되 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정부문법에 따라 투자 처를 찾는 것이다. 일상아카이브/공동체아카이브/여성아카이브 등이 추구하는 ‘더 작 은 아카이브’라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기술된 기록물의 상자를 열어서 문서철을 넘기며 함께 읽는 시간도 괜찮은 방법일 것 같다. 굳이 검색시스템을 통해야만 하는 것 일까? 여전한 의문이다.
 

3) 아카이브 거버넌스

형식적인 거버넌스는 그만두고 실질적인 거버넌스를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다. 실질이 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관계(새로운 기록관계)라 답할 수 있을 것이고, 사례를 제시하라고 한다면 2018년 서울기록원과 기억발전소의 ‘아카이브 거버넌스’에 주 목하게 된다.
이상으로 논의를 마친다. 상징적인 두 문서를 비교하며 10년의 변화를 분석했다.새로운 기록담론에 관한 모색을 담은 글을 썼다. 잘못 알고 있거나 괜한 트집으로 억측을 부리는 것은 사실과 비판으로 잡아주면 좋겠다. 특히 5장 1절에 대해서는 속상함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우정이라 생각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