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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정치성에 관한 몇 가지 단상(1)

기록의 정치성에 관한 몇 가지 단상(1)

2019-04-25 서울기록원 조회수 : 373



* 4월 25일 국가기록원이 주최한 <1차 기록관리 정책포럼: 국가기록관리의 사회적 역할과 사명>에서 한신대 이영남 선생님이 발표한 내용입니다. 아카이브를 다루는, 공부하는, 관심을 갖고 있는 공동체가 함께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두 번으로 나누어 공유합니다. 저자의 주장은 서울기록원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1. 프롤로그
2. 두 세계의 조우,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
3. 기록관리의 역사적 등장과 그 함의

4. 정치적 존재인가, 아카이브
5. 몇 가지 제안
 

 

1. 프롤로그

릭이 릭인 것은 릭이기 때문이다. 릭은 기록관리 정책포럼이 뭔지 몰랐다. 자판기의 커피처럼 누군가 누르면 나가면 되지 하는 심정으로 무작정하고는 발표자가 되었다. 그런데 원고독촉용 전화를 건 아무개 연구사님(실명은 예의상 공개하지 않는다)에게 왜 원고가 제 시간에 나와야 하는지를 찬찬히 듣고서야 비로소 정책포럼이 꽤 중요한 자리임을 알 수 있었다. 나설 자리가 아닌데 끼었구나, 이건 장난이 아니구나 하는 자각이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공공기록관리의 대소사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에 대해 릭은 평소에도 심적인 부담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다. 릭이 피곤한 얼굴로 주변의 지인들에게 공공기록관리를 떠나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했던 이유이다. 그러나 인생은 내가 여기에서 계획을 세울 때 저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릭이 골방에 박혀 떠나는 계획을 세울수록 자판기의 판매량은 늘어난다.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글쎄, 어렵지는 않다. 매사의 출처는 자기 욕망인 법이니 사실 릭은 자판기가 되고 싶은 것이다.
릭은 자신을 줏대 없는 사람으로 이해한다. 다른 사람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을 몰라도 자신은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을 자판기와 동일시하는 릭은 <커피가 필요해> 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기도 모르게 자판기로 변신한다.
얼마 전부터는 자판기 알고리즘이 이상해졌다. 커피를 누르면 율무차, 율무차를 누르면 커피이다.
방금 전에 뭘 시키셨죠? 상대에게 되돌아가 묻지 않고 그냥 그 순간의 기억에만 의지하는 것이다.

일본에는 치매 할머니들이 서빙을 하는 식당이 있다고 한다. 이름은 행복식당. 집이나 시설에 가두는 식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함께 살자는 취지로 운영되는 식당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행복식당과 식당 사람들의 대의에 공감해서는 짜장면 대신 짬뽕이 나와도, 비싼 탕수육이 나와도 무척이나 기분 좋게 먹는다. 오히려 이번에는 어떤 음식이 올까, 이번에는 왜 이 음식일까 하는 생각에 즐겁게만 하다.
공동체가 주체가 되어 문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개인에게 맡겨두지도 않고 관행적으로 복지시설에 맡겨두지도 않고, 지역에서 공동체가 주체가 되어 문제를 함께 풀겠다는 의지이다. 시사하는 바가 있다. 가급적 릭은 행복식당에서 밥을 먹으려고 한다. 릭은 자신의 본질이 자판기라는 것을 체념하면서도 알고리즘이 변한 후에는 다소 즐거워졌다.
사회통념상 이런 자리는 공문체(official document style) 논문이어야 한다. 행정기관에서 ‘정책’을 말하려면 공문체 논문이어야 한다는 점을 릭도 알고 있다. 릭도 이력서만 보면 정상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기록을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꾼 릭은, 노라의 운명을 닮아가고 있다. 공문체 논문의 단일한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릭에게 기록은 향연이다. 동무들과 함께, 소규모 기록모임에서, 서사체(narrative style) 기록산문을 낭독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 기록물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기술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릭이 자기취향만을 위해서 서사체를 고집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기록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기록에는 어떤 가치가 있어야 하는가 하는
나름의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이영남 2018).


서사체 산문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시발점, 시퀀스(전개 순서), 문장형식, 목표를 기준으로 두 문체를 비교한다.
공문체는 다음과 같다. ①공문은 규정을 근거로 삼아 출발한다. ②시퀀스는 <배경/필요성 → 현황 → 개선방안 → 추진일정>이다. ③문장에는 주어가 없다. 문서를 기안하고 결재하는 담당자가 있다는 점에서 주어가 없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담당자/담당부서는 행위자이긴 하나 주어는 아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들은 이런 말을 한다. 규정과 절차, 지시에 따른 것뿐이다. 그렇다면 규정과 상부가 원청이고 그들은 하청이다. 하청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어, 문제가 생기면 규정을 개전하고 절차를 바꾸며, 진정한 상부인 제도를 개선한다. ④문장에는 감정이 없다. ⑤공문에는 성과가 있다. 공문만 보면 매사 순풍이다. 성과를 기록하지 않는 공문은 없다.
서사체는 다음과 같다. ①이야기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②시퀀스는 <주인공의 등장 → 예상치 못한 사건의 발생과 균형의 깨짐 → 균형을 회복하려는 시도와 연이은 좌절, 조력자의 등장 → 반전 → 균형의 회복>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무언가를 이루려고 상당히 애를 쓰지만 그것을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③이야기에는 주어가 있다. 이야기의 서두에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소개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잠시 하늘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그 상황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수용한다. ④이야기에는 감정이 있다. 정서적 변화가 이야기의 본령이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다음과 같은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주인공은 심장에서 박동치는 윤리를 의식하며 근원적인 자기질문을 던진다. 새로운 곳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주인공은 도덕을 재구성한다. ⑤이야기는, 특히 자전적 기록은 좌절과 실패를 기록한다. 성과만 있는 인생은 없다. 이력서에는 성과만 기재할 수 있지만 이야기에는 좌절과 실패를 기록해야 한다. 정서적 변화와 윤리적 질문, 관계와 공동체성의 회복이 성과라면 성과일 수 있다.
이야기는 살아온 시간을 정리하는 기록형식이다. 우리는 각자 산다. 각자의 체험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체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에 각자의 신체적 체험을 공유하고 소통해야 한다. 이야기라는 기록형식은 이 때 등장해 각자의 체험을 사회적 경험으로 변용시킨다. 이야기는 사실적 정보제공을 위함이 아니다. 사실을 논증하는 것도 아니다. 목적은 다른 데에 있다. 이야기의 종착점은 도덕성이다. 이야기에 담기는 사건의 줄거리,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정서, 태도와 윤리, 가치와 지향은 결국 도덕성을 형성한다. 이야기가 끝나면 뭔가 이전과 달라진 느낌이 드는 것은 도덕성의 거대한 산이 조금 움직인 것을 의미한다.* 트라우마 이야기는 너무도 강력해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기 힘들다.
*로널드 B. 토비아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 2007, 풀빛

지난 10년, 뜻밖의 사건이 기록을 강타했다. 대통령 서거, 기록사건(예. 국가기록관리 혁신TF에서 제출한 《국가기록관리 혁신방안》(2018.2)의 사건들), 세월호 참사, 강남역 살인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비정규직 사망사건, 대통령 탄핵 등의 사회적 사건은 기록공동체도 강타했다. 이런 사회적 사건을 공문체로만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도덕성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도덕성은 자기 내부의 목소리이다. 그리고 각자의 태도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행동이다. 어려울 것은 없을 것 같다. 최근 4명의 대통령을 태도와 언어를 살펴보면 도덕성의 차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도덕성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살아온 시간에 대한 몸의 기록이다. 기록공동체의 태도도 그것이 아닌가 한다. 지난 10년의 사회적 사건에, 기록공동체는 그리고 각각의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를 했는지, 그 시간을 어떻게 고민하며 보냈는지에 대해, 기록서사로 구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이야기라는 기록형식에는 은유, 스토리텔링, 플롯 등의 이야기 장치가 필요하다. 이야기 작업은 기록의 윤리적 과제를 점검하고 기록공동체의 도덕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이다. 이 글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릭은 서사체와 공문체가 공존하는 아카이브를 욕망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기록에는 전문성이 있고 전문성은 공문과 보고서와 공문체 논문이 담당할 몫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 릭의 생각이다. 온전한 날개를 바라는 것이며, 새들의 비행원리인 차이를 지향하는 것이다. 새의 비행은 자동차의 주행과는 원리가 다르다. 자동차는 동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의 차이에서 오는 힘이 새들의 비행 원리이다. 좌우의 기록학, 또는 서사체-공문체의 뒤섞임이 개척할 아카이브도 있을 것이다.
릭은 연구논문/정책보고서보다는 단편소설에 비중을 둔다. 릭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도 일리가 있다. 이런 영화 대사가 있다. ‘아버지도 유대인이고 엄마도 유대인이니 나도 유대인입니다. 날더러 뭘 어쩌란 말입니까?’ 괜찮은 식당을 운영하며 행복하게 살던 한 유대인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면서 표현한 서글픔이었다. 어느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릭이 되어 버린 릭은, 그 뒤로는 릭으로 산다. 불가해한 이단아 취급을 받아도 어쩔 도리가 없음을 아는 것이다. 공공기록관리에 대해 아는 바 없으나, 물질이 없으면 마음이라도 보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초대를 받았다. 그러나 물질(국가기록관리에 관한 비전과 방책)이 없어 가난한 릭은 기록을 사랑하는 마음 한 자락을 서사체 산문에 담았다. 어수선한 프롤로그에 양해를 구한다. *
*첫 문장은 ‘일상생활과 기록’ 수업시간(한신대 2018년 봄)에 한 학생이 제출한 기말보고서의 첫 문장을 베낀 것이다. 이 학생은 문창과 학생이었다. 기록이 줄거리인 중편소설을 기말과제로 제출했다. 아카이브의 아름다운 세계가 작품에 있었다. 릭은 그림책 <프레드릭>의 주인공인 Frederick의 줄임말이다. 프레드릭은 동료들이 곧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서 양곡을 준비할 때, 햇살과 바람과 시와 이야기를 모은다. 프레드릭 이야기는 해피 엔딩이다. 릭은 이 글에서는 기록하는 사람의 은유이다.
 

2. 두 세계의 조우,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

1) 두 세계의 조우

좌우가 있고 위아래가 있다. 앞뒤가 있고 긍정과 부정이 있다. 이런 식으로 인간에게는 대립되는 두 측면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인지가 있다. 기록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표로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약간의 설명을 덧붙인다. 방향은 타원의 방향이다. 선형적 이미지는 어딘가를 향해 계속 가는 것이 방향이지만, 타원의 이미지는 회향하는 것이다. 어디에서 출발하느냐가 어디로 회향하느냐이다. 타원의 한 점에서 출발해서 타원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출발한 곳에서 멈춘다. 조직에서 출발하면 조직으로 회향한다. 중간에 이용자가 있긴 하겠지만. 인간에서 출발하면 인간으로 회향한다. 중간에 무엇이 있든. 조직의 일로서 기록은 기록물을 관리하는 것이다. 기록물이 생산되는 조직을 분석하는 것은 어떤 기록물을 관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반면, 인간의 일로서 기록은 ‘타인을 관리하는 것’이다. 타인이라는 말과 관리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 뉘앙스 때문에 거부심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철학이나 윤리학에서 타인은 윤리적 관계를 말한다. 부부, 부모와 자식, 연인, 직장동료 등의 특별한 사회적 관계를 의미한다. 길거리에서 스쳐지나가는 존재는 물론 아니지만 마주쳤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윤리적 관계가 될 수 있다. 관리의 계열에는 따뜻한 느낌의 방법이 많다. 예를 들면 보살핌이 있다(‘현정문서’ * 참조). 매일 만나는 부부 사이라도 생각 없이 만나지는 않는다. 말 한마디에 반응하면서 끊임없이 상호조정하면 부부를 형성해간다.
*이현정, <참여와 개입 : 공동체 아카이빙 윤리의 모색>, 한국기록학회 제117회 월례발표회 발표문(2017.9.9.)

기록형식에 대해서는 1장에서 언급을 했지만, 몇 자 덧붙인다. 이야기는 인간의 시원적 기록형식이다. 다음은 몇 백 만년을 반복했던 인류의 저녁장면이다. 작은 집단의 인간들이 불가에 모여 앉아 요리를 해서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인간이란 존재는 화식(火食. cooked food)과 기록을 섞으며 진화했다. 인간은 꽃을 보며 아름다움이란 관념을 형성했으며 이야기를 하면서 서사체 기록동물로 진화했다. 문자가 나온 것은 겨우 1만년이다.
세계관을 말해본다. 기계적 세계관은 커피-커피, 율무-율무 하는 식의 명쾌한 세계관이다. 상식적인 세계관이다. 이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직접적 인과성은 세계의 직접적인 모습이다. 각자의 체험을 직접적으로 지배한다. 예를 들면, 서 있는 장난감을 민다. → 장난감이 쓰러진다. 목이 말라? 물을 마셔. 갈증이 해소될 거야. 이런 식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직접적 인과성은 있는 것은 아니다. 생태적 세계관은 상호 유기적 관계성과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세계관이다. 이 세계에는 유기적 인과성이 작동한다. 유기적 인과성은 직접 체험할 수 없더라도 인지(認知. cognition)로 이해할 수 있는 인과성을 의미한다. ‘나비효과’ 같은 은유는 유기적 인과성을 말한다. 어떻게 남미 대륙의 나비 한 마리가 한반도의 기상과 연결될 수 있을까. 한 인간의 신체적 체험으로는 알 수 없지만, 과학/인지는 이것을 유기적 인과성으로 명징하게 알려준다(조지 레이코프 2014). 생태적 세계관에서 작용하는 유기적 인과성에 대해서는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회색늑대 프로젝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3장). 여기에서는 설명을 생략한다.
도구를 말해본다. 기계적 장치는 조직에서는 익숙한 일상이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마음은 낯설 것 같다. 마음 자체가 낯선 것은 아니다. 뜬금없음에 대한 것일 것 같다. 왜 기록과 마음이 연결되느냐 하는 것에서 낯섬을 느끼지는 않을지. 어쩌면 거부반응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언어와 정서, 태도와 윤리, 가치와 정체성, 관계와 의례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간단하지 않다. 다만, 조직도 법조문이라는 언어를 가지고 있으니 다른 언어는 없을까 하는 것이고, 한국의 기록관리가 효율의 정서로 작동되고 있다면, 다른 기록정서는 없을까 하는 것이다. 한국의 기록관리가 조직 위주의 기록관리라면, 가치를 내세우는 기록은 없을까 하는 것이다. 절차만 따지지 말고 사람들이 만나는 형식인 의례도 보자는 것이고, 관계 맺는 방식도 기록의 관심사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자세한 것을 후술한다(4장).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과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우리가 행동한 결과의 좋고 나쁨을 결정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프레임을 인식한다. 프레임은 가치와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며 담론을 지배한다. 새로운 프레임은 새로운 언어를 필요로 한다. 프레임의 재구성은 공적 담론이 변화해야 가능하며 일정한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필요하다. 결국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은 사회변화를 의미한다(조지 레이코프 2014, 12-13쪽). 어떤 프레임으로 기록을 관리하는가 하는 것은 기록의 일만이 아니라, 인간의 일이고 사회의 일일 것이다. 공공 프레임이 형성한 기록이 기록관리라면(3장 1절), 공동체 프레임이 지향하는 기록은 아카이브이다(3장 3절)
이상으로 간략하게 도표를 설명했다. 조직의 일과 인간의 일은 기록의 두 측면일 것 같다. 지난 20년을 회상하면 조직의 일이 <기록관리>로 성장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고, 인간의 일은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라는 생각이다. 이 글에서는 이 지점에서 <아카이브>를 새롭게 규정해보려고 할 것이다. 이 글은 전자를 비판적으로 이해한 후 후자를 재구성하려는 시론적인 논의이다.
 

2) 기록을 업으로 삼는 우리는 누구인가

이 글에서는 두 개의 세계를 ‘세포분열의 원리’로 이해한다. 인간은 2n의 질서정연한 세포분열로 조직을 형성하면서 신체를 이루고, 그래서 세상에 나왔다. 세포분열의 원리는 생명의 원리이다. 분열이라는 말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중재의 힘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관리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입장의 대립과 갈등이든 세계관의 대립과 갈등이든, 민주주의는 갈등을 관리하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을 관리한다. 기록학의 과제에는 기록의 중재성이 있다. 민주주의에서 기록의 중재성은 괜찮은 방향성이다.
중재성을 캐릭터로 재구성한다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가 될 것 같다. 헤르메스는 우편배달부이다. 헤르메스는 두 세계를 오가며 메시지를 전하며 양자를 중재한다. 1999년에 우리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으로 출발했다. 기록전문직이 전부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은 아니다. 더구나 법적 인정을 받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은 더 적다. 그러나 대세는 이 방향이다. 법적 인정을 받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다수를 차지할 것이다. 그런데, 법적 신분은 달라도, 소속은 달라도, 이해는 달리해도, 우리를 공통적으로 묶어주는 것이 있다. 한 문장으로 줄이면, 우리는 기록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아닐까.
기록자는 뭘까. 궁금함이 밀려온다. 기록자를 기록물관리전문요원으로, 나아가 기록전문직으로 좁히지는 않기로 한다. 좁히기 시작하면 배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기록할 일이다. 무대에 등장할 기록형식은 그림이지 않을까. 사진을 찍지는 말자. 인간의 심리는 이상해서 사진을 찍으면 그 사물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사라진다. 그러나 그림은 다르다. 그림을 그리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고 그 길어지는 시간만큼 인간과 사물 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형성된다. 기록자를 그림으로 그리자. 이 글에서 그리려는 기록자는 헤르메스이다. 헤르메스를 위한 시 한 편을 써본다.

동무여,
우리가 만일 기록자이거든 기록자인체 하자
속이지 말고 기록자인 체 하자!
그리고 땅에 엎드려 땅을 핥자
혀의 피가 땅 속으로 흐르도록,
땅의 말이 나올 때까지

동무여, 연민의 동무여
그리고도 마음이 만일 우리를 속이거든
해를 향해 외쳐 물어라
‘이 마음의 씨를 영영 태울 수 있느냐’고
발을 옮기지 말자 석상(石像)이 될 때까지.*

*포석 조명희(1894-1938)의 시, <동무여>를 일부 수정했다.

100년의 시간을 뚫고 온 시가 아닌가. 동무는 대등하고 친밀한 관계성을 상징하는 캐릭터이다. 그런데 기록자는 누구이고, 왜 땅의 말을 갈구하는가.
그러나 시만 읽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3. 기록관리의 역사적 등장과 그 함의

1) 말 한 마리가 정부로 들어왔다.

선영은 정부의 사무관리제도에서 잔뼈가 굵은 직업공무원으로 1990년대에 정부기록보존소장으로 일했다. 선영은 일단의 정부기록보존소 직원들과 공공기록관리법 제정을 추진했다. ‘선영과 아이들’(1990년대 가요계의 판도를 일거에 바꾼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그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은유이다. 이하 선영으로 줄인다)은 학계와 시민단체와 협력하는 등 다각도에 걸친 노력을 했다. 정부가 돌아가는 사정과 세상 물정에도 밝았으며 추진력도 셌던 선영은 마침내 1999년을 이정표적인 해로 만들었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영은 기록의 판도를 일순간 바꿨다. 오늘 이 자리의 시발점도 20여 년 전 어떤 날에 있을 것이다.
선영은 당시 정부기록보존소 기관지인 『기록보존』에 ‘기록관리법 제정과 기록보존제도의 확립’이라는 글(이하 선영문서)을 게재했다. 9쪽의 군더더기 하나 없는 간결한 문서이다. 선영은 정부 수립 후 50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우리나라는 건국 50년 동안 기록물 관리에 관한 기본법 없이 공무수행 처리지침에 불과한 사무관리규정에 의거하여 기록물을 관리해왔다.”(11쪽). 이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독법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1945년 8월 15일에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이런 문장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역사가 사라진 곳에는 당연함과 익숙함만이 있다. 사무관리제도에 근거해서 기록물을 관리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일정한 시기에 형성되고 발전한 역사적 산물이다. 무심히 당연하다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깃든 역사적 사실이었다. 지금 익숙해진 것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문장은 정부의 관행화된 의식에 가파른 역사성을 넣었다는 점에서, 본질을 꿰뚫는 명문이 아닐 수 없다.
선영문서는 공공기록관리의 독립선언서이다. 50년 동안 사무관리제도의 지배를 받으며 ‘가장 인기 없고, 후미진 업무’(10쪽)로 전락했던 문서관리는 마침내 개념을 기록관리로 바꾸며 독립했다. 사무관리제도의 한 귀퉁이에 있던 문서관리가 기록관리로 당당하게 변신했다. 개념(기록관리)이 생기자 제도(법률), 기구(기록관), 인력(기록물관리전문요원), 재산(기록물), 원칙과 방법론이 맞물려 들어왔다. 비로소 우리 사회에 새로운 기록제도, 의미 있는 기록담론이 등장했다.
이상으로 기록관리가 등장했던 방식과 그 의미에 대해 간략히 정리했다. 요약한다면, 지난 20년은 기록관리가 정부를 구성하는 법률적 존재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한편으로는 <공공기록관리라는 특이한 무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현과 아이들’은 이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다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2) 20년 후 기록관리에 대해

기록관리는 낡았다. 기록관리는 정부의 필요에 의해 세워졌다. 선영은 행정을 넘지 못했다. 기록관리기관이라는 말을 관행적으로 쓰지만, 기록행정기관이 정확할 것 같다. 국가기록원은 행자부의 기록관리 행정을 담당하는 기록행정기관, 공공기록관은 해당 기관의 기록행정을 담당하는 기록행정부서(담당자)가 아닐까. 그리고 기록관리직의 경우, 기록전문직보다는 기록행정직의 성장과정은 아니었을까. 선영은 사무관리제도 아래에서 숨죽이고 있던 문서관리를 기록관리가 아니라고 했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행정 아래에서 숨죽이는 기록관리를 아카이브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선영은 공공프레임으로 접근한 것 같다. 선영문서는 기록관리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올바른 국정수행을 위한 것으로 잡았다. 기록이 국가행정의 일부라는 선언이었다. 이 자체는 문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프레임은 정부의 장기지속 프레임이다. 선영의 정신은 ‘문서관행’을 끊는 것이었지만 프레임 설정에서는 관행 안에 머물렀다. 아쉬운 대목이다.
기록관리에서는 생태적인 지루함이 느껴진다. 다양한 동물들이 살아야 할 곳에 사료를 먹는 사슴만 가득한 것 같다. 사슴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사슴이 일방적으로 너무 많다는 점이 문제이다. 1999년을 기점으로, 낡은 문서관리가 새로운 기록관리에 밀려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면, 역사의 무심함에 따라, 새로운 무언가에 밀려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쓸쓸한 먼지가 배웅을 한다. 2017년이 기점이 될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기록관리도 우주의 물리법칙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선영은 말했다. 공무수행 처리지침에 불과한 사무관리규정에 의거하여 기록물을 관리해왔다고 왔다고. 그러나 선영, 아무리 선영이지만 이 대목에서는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공무수행지침에 불과하다는 사무관리규정과 그 규정의 일부 조항이었던 문서관리는 1961년에 시작되어 1999년까지 정부문서를 관리하던 상당한 제도였다. 두 세대가 넘는 역사성을 보유한 제도이다. 또한, 사무관리제도에서 문서관리를 빼와서 기록관리제도가 신장개업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무관리규정과 그 일부인 문서관리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정부문서의 법적 다툼이 있으면 법원은 여전히 사무관리규정(명칭은 바뀌었지만)에 따라 판단한다. 기록관리제도가 사무관리제도를 대체한 것은 아니다. 기록관리는 사무관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둘을 구속하는 상위의 존재에 귀속되어 있다.
사무관리와 기록관리는 업무수행/국정수행이라는 퐁을 구성하는 계열로 존재한다. 이것을 단순하게 봐서는 안 될 것 같다. 기록관리제도는 정부행정의 일부이고, 행정기능의 일부인 기록행정이다. 그래서 기록관리법의 기록물관리기관은 정부의 기록관리를 행정적으로 수행하는 기록행정기관이다. 기록물을 보존하는 기능은 부차적이다. 정부차원이나 행정차원에서, 또는 행안부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본질은 행정일 것 같다. 20년 전, 선영의 기록선언은 대단한 선언이었고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알리는 이정표적인 선언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는 모두 거기에서 출발한 존재이다.
그러나 기록관리는 이제 지루해졌다. 자식들은 커가는 데 여전한 단칸방처럼 비좁기만 하다. 엄청난 출발에도 불구하고 과거 문서관리가 그랬듯이 새로운 것으로 신장개업을 해야 할 정도로 낡았다. 역사의 짐을 홀로 지고 가는 당나귀가 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지난 10년의 적폐’ 때문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은 적폐청산이면 족하다(이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되어가지만). 그런 특수한 사정보다는 자연적인 이유를 찾아야 하리. 나이가 들면 누구나 자기 생을 마감하듯이 기록관리라는 사회적 존재는 자연스럽게 낡은 것이 되었다.
기록관리 정책포럼을 신장개업 하는 식당의 레시피 개발 같은 자리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비단 정책포럼만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지난 2년(2017년 3월 이후) 국가기록혁신TF, 2017년 12월 열기에 찼던 경주회합 이후 이어진 일련의 논의, 최근의 국가기록관리위원회 특위, 정부의 다른 기록물관리기관의 시도 등이 있었다. 정부가 문을 열면 그 바깥에는 ‘민간단체’가 있다. 민간단체도 제법 논의를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학회와 협회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모임들도 많을 것 같다. 신장개업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정부와 민간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이세신궁 프로젝트를 닮지 않았나. 일본의 이세신궁은 일본 내에서도 신사를 대표하는 특별한 상징성을 갖는 신궁이다. 신궁 중에서도 신궁, 특별한 곳이라고 한다. 이세신궁의 역사는 독특하다. 20년 마다 건물을 허물고 완전히 다시 짓는다. 이세신궁은 690년에 지어져 2013년 현재 62번째로 지어졌다. 이유가 분명하지 않기에 다양한 해석이 있다. 그 중에는 집 짓는 기술의 보존이 있다. 여기에 끌린다. 20년이면 한 세대이다. 새로운 세대마다 집 짓는 기술을 전수,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계획서, 세부추진계획서, 설계도 등의 기록물을 서고에 넣어두면 되지 않느냐는 평범함은 여기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비범한 뭔가가 있다. 의문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세신궁 프로젝트의 엄청난 비효율성, 비경제성 때문이다. 잘만 관리하면 몇 백 년은 족히 쓸 수 있는 건물을 20년마다 허문다? 어리석음과 미련함마저 하찮게 여길 거대한 궁금함을 자아낸다. 왜 그럴까? 이세신궁 프로젝트의 비효율성과 비경제성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아마도 건물을 짓는 기술(경험)이 건물보다 중요하다는 뜻일 것 같다. 이것은 효율을 시금석으로 삼는 경영학의 관점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태도이다. 건물은 오래될수록 운치를 더하는 법이다. 건물을 다시 짓는 비용이 막대해도 건물을 짓는 기술을 보존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의 출처가 궁금하다.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들은 경영학이 아닌 윤리학을 건축의 원리로 삼았다. 이런 전통이 출발했던 7세기에는 경영학이 없었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경영학이 도입된 19세기 이래로도 일본에서는 이세신궁 프로젝트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세신궁의 존재성에 대한 그들의 집단적 믿음(개인이라면 양심이나 신념) 때문은 아닐까 한다. 이세신궁이 존재하는 이유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비범한 프로젝트를 탄생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이세신궁은 어디에 있을까? 건물의 주소지보다는 가치의 측면에서 말해본다. 이세신궁은 건물에 없다. 신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있을 것 같다. 신궁을 보존하는 길은 건물이 아니라 신궁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랑한다고 해서 순수한 마음이라 할 수 없다. 집짓는 기술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세대를 전승하면서 경험을 보존하겠다는 의지로 관리되는 마음이다. 관광객의 마음이 아니라 목수의 마음이다. 20년마다 이세신궁을 짓는 목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집을 짓는다. 과거의 세대와 지금의 세대가 모여서 기술을 전수하고 전수 받는다. 신궁은 경험이 이전되는 시간에 살아 있다. 자신들이 신뢰할 수 있는 경험 안에서 신궁이 지어지지 않는다면, 눈에 보이는 건물에 이세신궁이라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뜻일 것 같다.
선영은 정부에 기록관리를 세웠다. 기록관리는 이세신궁처럼 허물고 짓고를 반복해야 할 것 같다. 선영도 선영문서의 ‘4장. 과제와 전망’에서 계속 짓자고 권했다. 그것은 선영이 기록관리를 건설할 때 새로운 세대와 함께 집을 지으면서 집 짓는 기술, 또는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일 것 같다. 기록의 연대기에 1999년은 그런 해이다. 그러나 자고로 새로운 세대는 이전 세대의 윤리를 억압으로 받아들인다. 선영의 집짓기 기술은 정치적, 사회경제적, 기술적 변화로 인해 그리고 후속세대의 의식과 욕망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기록의 새로운 세대란 기록관리를 허무는 운명을 짊어진 자들이지 않을까.
과거 선영에게 다가간 새로운 세대도 그랬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선영에게 목수를 명한 것은 아니었다. 선영 이전에도, 1969년 창설 이래 정부기록보존소장으로 여럿이 다녀갔다. 임명장에 답이 있지 않다. 문서는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다른 것은 마음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도 선영은 자신을 목수로 이해했다. 이것은 순전히 마음에서 작동하는 양심과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시대적 흐름도 있는 줄 안다). 목수가 되었던 선영은 곰곰이 생각했다. 결국,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새로운 목수를 기다렸다. 어서 와, 그럼 이제 시작할까, 하는 몇 년에 걸친 스토리였다.
이세신궁 스토리의 엔딩은 심플하다. 목수의 운명을 타고난 자는 자신이 세운 것을 허무는 운명에 복종해야 한다.
 

* 4장과 5장은 4월 29일 월요일에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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