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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아카이브 #7> ‘타인의 삶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김진성

<금요일의 아카이브 #7> ‘타인의 삶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김진성

2018-01-26 서울기록원 조회수 : 291

금요일의 아카이브(#friday_archives) 일곱번째 글은 서울특별시 정보공개정책과의 김진성 선생님이 보내주셨습니다.
한국기록전문가협회 기관지 vol.3(2015년 7월)에 실렸던 글입니다.
포스팅 허락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래 글은 다음 영화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Das Leben der Anderen,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2006년, 137분

독일민주공화국(이하 동독) 국가안전부-통칭 슈타지(Stasi:Staatssicherheit)-는
한 때 동유럽 최고의 정보ㆍ방첩기관으로 일컬어 졌지만, 1989년 독일 통일시 해체되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개념적으로 정보ㆍ방첩기관은 첩보의 수집 및 분석, 스파이ㆍ공작활동 대응을 주요 업무로 수행하지만,
실제로는 그 대상과 범위의 모호함, 비밀 수행 원칙, 기계적인 관료주의 기구 및 문화 등을 원인으로 국제ㆍ국내법규에 저촉되거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활동을 수행하는 경우-즉, 헌법위반 및 인권침해-가 종종 있어왔다.
특히 슈타지의 경우 너무 많은 조직원(공무원)들이 너무 많은 대상인원(국민)들을 잠재적 적성분자로 취급하여 감시했다는 점에서
독일 통일 후 이슈가 되었다.
(1989년 당시 동독 인구는 약 1,600만 명 정도인데 슈타지 직원 및 협력자는 약 20만 명에 이르렀다.)

미행, 도청, 위협, 구금 등 국가기관이나 심부름센터가 하는 업무의 차이는 그 행위의 근거나 기준이 적법한지,
활동 전반에 대한 내외부의 제어나 감시가 가능한지이지 그 내용 자체는 아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비즐러는 슈타지의 방첩 전문가이며 특기는 심문, 도청, 위조 등으로 묘사된다.
그가 성실히 조직의 직무를 수행하는 이유는 특정한 정치이념에 충실하기 때문이라기보다, 그 직무 자체에 대한 성실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사의 개인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친정부인사에 대한 감시업무에 대해서도 자신의 직분을 다할 뿐이다.
개인의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지만 타인에게 보여질 때 자료 내지는 대상화된 존재가 된다.
몰래 누군가를 엿보고 듣는 것은 윤리적으로 그릇된 행위이지만 그 자체의 쾌감은 실재하는 것이다.
비즐러의 후배가 이를 즐기는 모습과 비즐러 본인이 감시대상자의 예술적 취미를 감상하는 것이 그러하다.
다만 비즐러는 그 순간 타인의 삶이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을 발견한다.

친정부인사이던 드라이만은 동독 정권의 강압적인 체제에 회의를 느껴서 이에 반대하는 글을 서독 언론에 익명으로 투고한다.
이를 도청으로 알아낸 비즐러는 갈등하지만 보고서에 허위 사실을 기재하고 드라이만이 사용한 비밀 타자기를 감춘다.
(당시에 타자기 기종별로 독특한 타이핑 형식이 타자본 종이에 나타나기에, 작성자가 누구인지 특정하는데 증거로 쓰일 수 있다.
현재 디지털 파일들은 작성자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는 메타데이터를 포함하고 있다.)
드라이만의 애인인 크리스타는 슈타지에 구금되어 압박 끝에 드라이만이 익명의 기고자임을 자백한다.
드라이만은 정권을, 비즐러는 조직을, 크리스타는 애인을 배신했다.
일반적으로 배신은 옳지 않은 행위이지만, 더 큰 대의를 위한 행위는 배신이 아니라고 한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 대의를 위한 행위가 (감수하겠다고 다짐한) 내가 아닌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은 정당한가.
둘째, 어느 직무를 수행하는 것 자체가 대의에 어긋난다면 그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은 대의에 부합하는가.
셋째, 일신의 안녕을 위해 배신을 한 경우에 대한 구원 내지 구제는 어떠해야 할까.

슈타지가 해체되면서 그 조직원들이 소관 기록물을 폐기하는데 소요한 기간은 약 6개월 남짓으로 전체 중 어느 정도가 폐기되었는지,
중요 기록물은 어느 정도 폐기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 중에 슈타지가 기록물을 비밀리에 폐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동독의 시민들과 검사, 인민경찰들은 일부 슈타지 지부 사무실과 기록물들을 접수하고 보관했다.
이 기록물의 규모는 파일목록 1.6㎞, 녹음테이프 18만 개, 사진 1백만 장, 세절 문서 17만 자루로 전체 약 178㎞에 달하며,
약 6백만 명-2백만 명은 서독인-의 인명정보를 포함했다.
남겨진 기록물들은 독일 통일 후 대통령 직속의 슈타지 기록물관리청(BStU:Bundesbeauftragte für die Staatssicherheit-Unterlagen)에서 관리되며 개인, 공공ㆍ민간기관, 언론 등에게 자기관련성이나 목적에 따라 제한적으로 제공된다.
(BStU와 슈타지 기록물에 대해서는 하도헌, 「독일통일과정에서의 슈타지(국가보위부) 해체ㆍ청산에 관한 연구」,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정치통일전공 석사학위논문, 2005를 참조)

영화에서 드라이만은 통일 이후 자신이 감시받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그리고 이름 모를 어느 슈타지 직원이 자신을 도와주었음을 알게 된다.
실제 슈타지 기록물은 정치적 청산, 역사적 연구, 개인의 복권이나 사건 규명, 공무원 임용 심사 등에 이용되지만,
일부 내용의 신뢰성 문제 때문에 때때로 공개나 제공이 거부되기도 한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삶을 엿보면서-방법은 윤리적으로 바르지 않았지만- 그 일부를 자신의 삶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서 평소의 직무 성실성 원칙도 저버리며 기록물을 변조하고 증거물을 은폐했다.
그 결과 그는 한직으로 좌천되었고 마지막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코드명만이 남았다.
만약 한국에서 유사한 상황이 있었다면, 그리고 제반 상황이 공개되었다면 어떨까.
기록물관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비즐러는 기록물의 신뢰성을 훼손했다.
그리고 그 행위는 타인의 삶을 구했다. 비록 그에 동조할 수는 없지만 그의 삶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의문들에 대한 해답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