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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아카이브 #5> '아카이브의 이용자는 누구인가?' 국회기록보존소 김장환

<금요일의 아카이브 #5> '아카이브의 이용자는 누구인가?' 국회기록보존소 김장환

2017-12-29 서울기록원 조회수 : 298

아카이브의 이용자는 누구인가?

김장환 (Jang-hwan Kim), 국회기록보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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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기록관리법은 기록물관리기관을 기록관과 영구기록물관리기관으로 구분하고 있다.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은 아카이브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에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은 그다지 많지 않다.
기록관리를 수행하는 실무자 대부분이 레코드센터에 해당하는 기록관에서 근무한다.
외국 교과서에 나오는 아카이브의 각종 이론들이 사실상 기록관 단계에선 소용없는 경우가 많다. 기록정보서비스 분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대부분의 내용은 아카이브, 즉 영구기록물관리기관에서 적용 가능한 기록정보서비스 관련 내용이 많다.
이 글의 포인트 역시 아카이브의 이용자다. 그러나 기록관도 살짝 언급하도록 한다.
왜냐면, 필자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관의 성격에 따라 (지극히 근대적인 이분법적 시각이지만)
기록을 서비스하는 주체와 그 서비스를 받는 이용자를 구분해서 고민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
이때 유용한 스킬이 경영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고객 세분화' 전략이다.
어떻게 이용자를 세그멘테이션해서 각 이용자층에 적절한 상품을 서비스할 것인가?
이걸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경영학 하위 분야가 마케팅이다.
그리고 마케팅은 저 질문에 STP(Segmentation, Targeting, Positioning)와 4P(Product, Price, Place, Promotion) 전략으로 답한다
(최근에는 6P로도 설명하더라마는, 기본은 여전히 4P이다.).

기록학 교과서에서는 패러다임 시프트로 인해 보존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기록관리가 변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게 사실이다.
각급 기록관에선 여전히 처리과로부터 기록물을 제대로 이관 받기 위해 싸우기 급급하다.
그래도 왠지 적극적인 서비스는 해야 할 거 같고, 기록원 평가 지표에도 나오니까 기록전시와 같은 아웃리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느낌.
조금 여유 있으면 국가기록원 같이 근사한 기록정보콘텐츠도 만들어야 할 거 같고,
외부의 이용자에게도 기록관의 소장 기록을 잘 서비스해야 할 거 같은 느낌.
뭔가 잘못된 질문에 잘못된 대답을 하고 있는 싸한 느낌이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잘못되는 건 없다.
기관장을 포함해서 윗사람들에게 어필하기에도 아마 좋을 거다.

문제는 우리들에게 인력과 예산은 언제나 한정적이라는 점이다. 기록도 가치를 평가하여 선별하듯, 인력과 예산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으로. 기록관의 이용자는? 당연히 모기관의 이용자이다. 처리과 직원이다.
그들이 이관한 기록을 자신이 이관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그게 최상이다.
자신이 이용하는 기록생산시스템으로 본인이 생산한 기록을 자연스럽게 열람 활용하듯이, 기록시스템으로 이관한 기록도 비슷한 인터페이스로,
더 나아가 더 많은 상세검색이 가능하도록 제공한다면, 처리과 직원의 불만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캐비닛을 뒤져 힘들게 봐야만 했던 종이기록까지 디지털화하여 기록시스템에서 제공한다면 해당 이용자는 감동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접근권한 관리를 통해 자신이 생산하지 않은 기록까지 업무에 활용할 수 있다면?
기록관 단위에서 이용자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가 아닐까, 라는 개인적인 생각.

그런데,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국회기록보존소의 어려움은 여기서 시작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록관과 아카이브 역할을 모두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아카이브의 메인 이용자는 처리과 직원이 아니다.
1948년부터 생산된 오래된 기록들은 아무리 예쁘게 포장해서 서비스한다 해도 현재 바쁘게 위원회 지원 활동을 하는 직원들에게 큰 매력이 없다.
그 기록들은 이른바 '비현용(non-current)'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럼 일반 시민을 위해 서비스하면 될까?

이제 이 글이 던지는 질문으로. 아카이브의 이용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다시 앞서 언급한 세그멘테이션으로. 각종 보고서에 자주 등장하는 "대국민 서비스"는 보통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다.
아주 쉽게 일반 시민이라고 퉁쳐서 얘기하지만, 일반 시민도 학생(학생도 다시 대학원생,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교육자, 연구자, 공무원...
수도 없이 세분화할 수 있다.
그런데 강조했듯이 우리에겐 활용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잘하기 위해서는 유의미한 단위로 세그멘테이션해야 함은 물론이다.

바로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아카이브의 주요 고객층은 "연구자 집단"이다.
자신에게 관심이 1도 없는 누군가를 위한 세레나데는 애처러움을 넘어 안쓰러울 뿐이다.
심지어 구애의 대상이 누구인지 모를 세레나데도 있다.
가뜩이나 여유 없는 아카이브에 굳이 박애주의 따위는 필요 없다.
세상은 덕후가 바꾼다.
아카이브도 아카이브를 "잘" 활용할 줄 아는 덕후가 바꿀 수 있다.
고로, 아카이브는 아카이브 덕후를 양성(?)해야 한다.
아카이브 덕후는 다른 말로 '아카이브 매니악(archives-maniac)' 정도로 부를 수 있겠다.
그렇게 본다면, 국회기록보존소의 주요 타깃층(연구자 집단)은 정치학, 역사학, 사회학 연구자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정치학자들은 주로 제도와 프레임 설계, 가설 검증 같은 데 관심이 많아서 사적(史的)인 연구 방법론에 익숙하지 않은데,
한국정치사를 전공하는 정치학 연구자들에게 가이드를 잘 제공해 준다면 충분히 아카이브 매니악이 만들어질 수 있다.
현대사를 전공하는 역사학 전공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법안과 국정감조사 보고서의 이면에 담겨 있는 사회 현상은
사회학 전공자에게도 메리트가 있을 것이다.
아카이브로서의 국회기록보존소는, 이들을 위한 서비스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서울기록원의 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카탈로그나 리서치 가이드와 같은 기본적인 검색 도구(finding aids)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국회에선 정리, 기술의 필요성을 윗사람들에게 설득하는 데만 해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시범사업까지 하는 데 정확히 2년 걸렸다.) 서울시는 누가 서울시의 기록을 "잘" 이용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아카이브의 기록이 도서관의 도서처럼, 미술관의 미술작품처럼 일반 시민에게 친숙한 매체가 아니란 걸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한국기록학회-서울시 공동 월례발표회에서, 연구자 집단도 더욱 세그멘테이션해서 아카이브 사용 경험이 있는 연구자와 없는 연구자,
그냥 구글링을 통해서 들어온 연구자 등을 구분해서 웹을 설계하는 걸 보고 감동했다.
아카이브의 아키비스트는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 모를 화려한 콘텐츠보다
명확하게 식별되어 있는 주요 고객이 제대로 소장 기록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게 우선이다.
콘텐츠와 전시는 그 다음에 고민해도 늦지 않는다.
(물론 콘텐츠 개발과 전시를 할 때에도 STP 전략은 유효하다.).
문제는 민간 영역만큼이나 성과주의에 듬뿍 젖어 있는 우리나라의 공직사회가 그런 걸 두고 보지 않는다는 점.
(그런 면에서 전문직 관리자가 있는 서울시는 행운이다. 물론 그 행운이 수많은 노력 끝에 만들어졌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지만.)

여하간, 이렇게 명징한 세그멘테이션과 타깃팅, 그리고 포지셔닝을 통한 서비스가 이루어진다면,
백 오피스에서 이루어지는 기록관리 활동도 그에 조응하여 바뀔 수 있다.
수집, 평가 정책은 이용자의 관점에 따라 다시 수립될 수 있을 것이고,
기획수집이나 구술기록 아카이빙 사업 따위를 할 때 이용자 관점에서 메타데이터를 정리하는 등 해당 산출물의 품질이 달라질 수 있다.
기록 이관 목록도 향후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정리되며, 데이터베이스화 작업도 향후 어떤 목적으로 디지털 객체가 사용될 수 있는지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스캐닝 작업이라 생각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동일한 기록을 다시 디지털화하는 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국회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마치 한 사람이 기록 수집부터 서비스를 수행하듯 아카이브 내의 각 파트에 서비스 관점이 녹아 있다면,
그게 바로 기록관리 패러다임 시프트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그런 아카이브 매니악을 만들기 위한 유인책들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아카이브는 연구자 집단들에게 도서관이나 박물관과 비교해 볼 때 여전히 친숙한 기억기관이 아니다.
 고로, 연구자들이 아카이브의 기록을 이용할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이걸 잘하는 곳으로 외교부 외교사료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구술자료관 정도가 당장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들 기관은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 보유 기록을 활용하여 연구를 수행하도록 지원하고 학술 발표회를 갖는다.
이른바 윈-윈 전략이다. 이렇게 연구자 덕후가 양성된다면,
우리나라도 미셸 푸코와 같이 아카이브 매니악이 탄생해서 그럴 듯한 연구 성과물을 낼지도 모른다.
(푸코의 고고학은 아카이브의 고문서를 파고들어 완성된다.
그의 박사 논문이기도 한 <광기의 역사>는 아카이브에 쳐박혀 엄청난 고문서 덕질을 해서 작성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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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국회기록보존소도 그 뒤를 열심히 따라 갈 수 있기를 아주 강력하게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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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redit: the university of chic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