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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기록 이야기#12]독립문 이전 기록

[소장기록 이야기#12]독립문 이전 기록

2021-03-31 보존서비스과 조회수 : 1230

1897년 11월 20일, 우리나라의 자유를 기리는 독립문이 준공되었습니다. 독립문은 파리 개선문을 모델로 한 14.28m 높이의 석조문으로, 중국사신을 맞이하는 영은문을 철거하고 그 북쪽에 세워졌습니다.

 

〈독립문 주변 청소〉, 1962.10.28.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6810

‣ 1962년 당시, 현재 위치로 옮겨지기 전 독립문의 모습.


독립문의 건립 취지는 중국(청)의 내정간섭에 대항하고 자주독립국가의 표방이었습니다.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독립문 위에 태극기가 걸린 일 이후로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 기념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청일전쟁을 통해 청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기념물로 왜곡시켰고 1936년 조선총독부는 고적 제59호로 지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독립문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3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독립문〉, 1963.01.21. 서울특별시 문화국 문화재과
기록물철명: 《국가지정 문화재 대장 사적편》, 서울특별시 문화국 문화재과, 1963

‣ 사적 제32호로 지정된 독립문의 문화재대장. 
 

독립문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여러 위기를 버텨내고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서대문 밖 교북동 큰 길가에 있는 랜드마크로, 독립문 자체가 곧 지명이었습니다. 광복 후 독립문 일대는 독립문 광장, 독립문 로터리 등으로 지칭되기도 하였습니다.


〈독립문광장(32)〉, 1963,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
기록물철명: 《No.138005773-005804(광장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 1963.

‣ 당시 삼거리의 중심에 있던 독립문과 그 일대를 독립문광장으로 불렀다.


본격적으로 독립문 이전 논란이 생긴 것은 1976년 10월 건설부고시를 받아 11월 1일 서울시가 사직터널에서 시흥까지 이어지는 도심도로의 확장 및 신설 계획을 발표한 다음 날부터였습니다.
문화재인 독립문의 위치가 사직터널과 신설될 금화터널을 이을 고가도로와 부딪쳤기 때문입니다. 


〈도시계획시설(도로및광장)신설및일부변경〉, 1976.10.11,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
기록물철명: 《건설부고시철-건고시169(76.10.28),건고시197(76.12.9)》,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 1976

‣ 사직터널-독립문에서 시흥동으로 이어지는 성산대로의 신설‧확장 결정 문서.
 

문화재위원회와 실랑이 끝에 1977년 12월 독립문 이전이 결정됩니다. 같은 해 3월부터 이미 공사가 시작된 이 도로의 노선명은 성산대로(현 성산로)로 제정되었습니다.


〈가로명제(개)정공고〉, 1978.06.29, 서울특별시 내무국 시민과
《공고(제264호~제288호)》, 서울특별시 내무국 시민과, 1968~1998
http://archives.seoul.go.kr/item/892342

‣ 신설‧확장된 가로명 제(개)정 공고 문서. 독립문-시흥동의 노선명을 성산대로로 제정하였다.
 

1979년 3월 19일, 81년 3개월간 서있던 자리에서 서북쪽으로 70m 떨어진 지점으로 옮기는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독립문이 이전되는 일대는 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었습니다.


〈독립문고가도로난간결정〉, 1979.02.27, 건설기획국 도로계획과
기록물철명: 《독립문고가도로난간결정》, 건설기획국 도로계획과, 1979

‣ 독립문 건립 당시 위치와 이전 복원 후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성산대교 대로 공사 현장〉, 1978.05.04. 서울특별시 문화공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7876

‣ 현저고가차도 건설 진행 당시. 독립문 광장, 독립문 로터리 등으로 지칭되던 독립문 주변 일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독립문 해체 작업〉, 1979.04.30. 서울특별시 문화공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5976

‣ 독립문 이전 복원 공사. 삼부토건주식회사에서 시공을 맡았다.
 

새로 조성된 자리로 옮겨진 독립문의 현판석 및 태극석을 올리는 모습입니다. 즉 독립문의 상량식으로, 광목에 감싸 올려져 제자리를 찾은 순간 주변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고 합니다.


〈독립문 상량식〉, 1979.12.15. 서울특별시 문화공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5950
 

1980년 3월 31일, 독립문공원의 모든 공사가 완료가 되었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 현저고가차도에서 바라 본 독립문. (카카오맵 로드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