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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기록 이야기 #14]1960년대 서울시 무허가주택 정책

[소장기록 이야기 #14]1960년대 서울시 무허가주택 정책

2021-06-02 보존서비스과 조회수 : 1756


 6.25 전쟁 이후 해외 동포의 환국과 더불어 많은 지방민과 피난민들이 더 나은 삶과 새로운 기회를 꿈꾸며 서울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무허가건물이 신당동 청계천 부근, 아현동, 이촌동과 같은 서울 하천변과 산허리 등에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시내 인구분포도>, 1963-11-16,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8369
<1962년 한남동 무허가 건물 철거>, 1962-06-20,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291

 

 하지만 1960년대 중반까지 정부와 서울시는 주택문제를 해결과 무허가 정착지역을 본격적으로 정비할 만한 경제적행정적 역량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도로개설, 관공서 건축 등에 따른 산발적인 철거 외에는 무허가 정착지 정비를 위한 일관적인 정책을 시행하지 못했습니다.

폭증하는 인구에 대비하여 턱없이 부족한 주택 공급과 당국의 묵인 아래 불량한 주거여건의 무허가 정착지는 무분별하게 확대되어 서울의 심각한 도시문제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1966년에 취임한 불도저’ 김현옥 시장은  이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정과제로 인식하였고, 4개년간 무허가주택을 일소하겠다는 목표로  ‘불량건물정리계획을 수립, 추진하였습니다.

무허가주택 단속을 위해 시민신고제를 실시하고 구청별로 단속 기동반을 편성하였습니다또한 철거 및 양성화 계획 등을 직접 설명하기 위해 이동시청이라는 이름으로 무허가 주거지를 순환하여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불량건물 정리계획 확정[사본]>, 1967-09-26, 서울특별시 주택국 주거정비과.
(기록물철명) <<서울특별시무허가건축물양성화계획>>, 1967~1968, 서울특별시 주택국 주거정비과.
불량건물(무허가건물)을 정리하기 위해 3가지 계획을 구상하여 대상인구, 예산, 철거민 보상 및 사후대책을 정리한 문서.
 

   


<무허가건물 신고, 접수>, 1967-08-05,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195 
<서울시 무허가건물 단속기동대 발대식>, 1970-10-08,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255
 

   

<이동시청(종로구, 중구)>, 1967-05-29,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8740
<이동시청(동대문구)>, 1967-06-07,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8737


1967년 수립한 불량건물정리계획은 대단지 이주, 불량건물개량화, 공동아파트건립의 세 가지 정책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첫 번째 정책은 서울시 외곽에 대규모 이주단지를 조성하여 도심의 철거민들을 이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현 성남시)에 인구 35만명 규모의 광주대단지를 조성하여 청계천, 종로 등지의 철거민을 집단 이주시켰습니다.
 
또한 시내 불량지구에 시민아파트를 건립공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낙산, 금화, 회현지구 등 고지대 판자촌에 1969년 한 해에만 수백 동의 아파트가 지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부 불량지구는 상태에 따라 개량 및 양성화를 추진하고자 하였습니다.
 

      


<시민 아파-트 건립계획 보고[사본]>, 1969-02-28, 서울특별시 주택관리국 주택행정과.
(기록물철명) <<시민아파트건립사업기본계획>>, 1969, 서울특별시 주택국 주택기획과.
https://archives.seoul.go.kr/item/689981
 


<김현옥 서울시장, 금화아파트 시찰>, 1969-01-23,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347
설명: 무허가 정착지 정리 후, 고지대에 건설되고 있는 시민아파트 모습.

 

<'71서울>, 1971-12-31, 서울특별시 공보실.
(기록물철명) <<71서울>>, 1971,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1236039


 서울의 지도를 바꿔버린 김현옥 시장이었지만, 4년에 걸쳐 무허가주택을 일소하겠다는 계획은 돌격의 추진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19704월 와우아파트의 붕괴로 시민아파트 건설은 동력을 잃었고 김현옥 시장은 시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대단지 이주정책 또한 기반시설과 주거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 무대책으로 이주당한 철거민들의 불만이 19718월 광주대단지 사건으로 폭발하면서 중단되었습니다.
 


<이동시청민원서류처리지시>, 1970-10-05, 서울특별시 건설국 관리제1과.
(기록물철명) <<진정서철>>, 1971, 서울특별시 건설국 관리제1과.
https://archives.seoul.go.kr/item/1137581




<서울시내 판자촌 철거 실태 보고>, 1970, 서울특별시 주택기획과.

(기록물철명) <<광주대단지사업 종합계획 관계철>>, 1970, 서울특별시 주택기획과.


1967년 계획수립 당시 136천동이던 무허가건물 수는 3년 후 187천동으로 늘어나 서울 인구의 36% 이상이 무허가건물에 거주하는 등 이 시기의 무허가주택 정책은 실패로 귀결되었고, 이후의 정책은 철거 후 재배치보다 양성화에 역점을 두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주택현황(국정감사수감자료)>, 1970-10, 서울특별시 주택기획과.
(기록물철명) <<광주대단지사업 종합계획 관계철>>, 1970, 서울특별시 주택기획과.
1970년 10월 당시 서울시 전체 가구의 39.7%, 인구의 36.2%가 무허가건물에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권영덕. 2013. 『1960년대 서울시 확장기 도시계획』. 서울: 서울연구원.
김광중. 1996. 『주택개량재개발 연혁연구』. 서울: 서울연구원.
서울역사박물관. 2016. 『불도저시장 김현옥』.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윤혜정. 1996. 서울시 불량주택 재개발사업의 변천에 관한 연구. 『서울학연구』, 7: 225-262.
이창현. 2019. 서울시 시민아파트 건설과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 처리. 『史林』, 70: 221-248.
최유리. 2014. 『1960년대 서울시 무허가주택문제 –박정희정권 시기 무허가주택 철거와 철거민 대책을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학과 한국사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