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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기록 이야기#15]서울광장의 형성

[소장기록 이야기#15]서울광장의 형성

2021-07-07 보존서비스과 조회수 : 734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적인 광장이며, 서울을 대표하는 광장인 ‘서울광장’.
 

〈서울시청 앞〉, 1969.07.28,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3602


서울광장의 기원은 대한제국의 황궁인 경운궁(덕수궁) 동측에 1898년 대안문(대한문)을 세우고 그 앞 공터를 황도의 중심 공간으로 삼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공간의 형성배경에는 1896년 9월 내부령 제9호 〈한성내 도로의 폭을 규정하는 건〉에 근간을 둔 한성부 도시개조사업이 있었습니다. 기존의 간선도로인 종로와 남대문로를 정비하고, 아관파천 했던 고종이 환어할 경운궁을 중심으로 방사선 가로망과 광장을 신설하는 계획이었습니다.
 


〈한국경성전도〉, 1903, 경부철도주식회사 발행.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 당시 계획한 규모로 추진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1903년의 지도를 통해 황토현-청계천 신교(新橋)-경운궁 북쪽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대안문에서 원구단(환구단)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신설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광장의 형성은 한일병합조약 2년 후인 1912년 총독부에서 발표한 47개 노선의 경성시구개수 예정계획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광화문-황토현-대한문-남대문(숭례문)-경성역(서울역)까지 이어지는 도로개설을 위해 덕수궁 동측 궁역을 철거하여 넓은 직선도로인 태평통(세종대로)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태평통과 황금정통(을지로)을 수직으로 연결함으로써, 대한문 앞으로 태평통, 황금정통, 장곡천정(소공로)이 교차하는 삼각형의 교차로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교차로는 ‘대한문앞광장[大漢門前廣場]’이라고 불렸습니다.
 

第三 : 黄土峴廣場ヨリ大漢門前廣場ヲ經テ南大門ニ至ル路線 : 幅員十五間
제3 : 황토현광장에서 대한문앞광장을 지나 남대문에 이르는 노선 : 폭원 15간(27.3m)
 
第八 : 大漢門前廣場ヨリ黄金町ヲ直通シ光煕門外ニ至ル路線 : 幅員十二間
제8 : 대한문앞광장에서 황금정을 직통해 광희문밖에 이르는 노선 : 폭원12간(21.84m)
 
第十四 : 大漢門前廣場ヨリ朝鮮銀行前廣場ニ至ル路線 : 幅員十間
제14 : 대한문앞광장에서 조선은행앞광장에 이르는 노선 : 폭원10간(18.2m)
 
第十八 : 大漢門前廣場ヨリ西小門通ヲ經テ獨立門道ニ至ル路線 : 幅員八間
제18 : 대한문앞광장에서 서소문통을 지나 독립문길에 이르는 노선 : 폭원8간(14.56m)

 *1間 = 1.82m

〈경성시구개수예정계획노선도〉, 《총독부관보》 제81호, 1912.11.06.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이 사업은 1913년 시작되어 1915년에 마무리되었습니다.


대한문앞광장이 도시의 중심[都心]이자 상징이 된 것은 1926년 서울시청의 전신인 경성부청이 광장 북측에 자리 잡으면서입니다. 경성역과 조선총독부의 중간 지점에 입지한 경성부청은 부청이 도시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시빅센터 개념을 중요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36년 부청 앞 사방으로 관통하는 교통의 요지이자 공공집회의 장소였던 대한문앞광장(21,000㎡)도 ‘광장’으로 공식 지정되었습니다. 이때 지정문서를 보면 ‘태평통2정목(부청앞)[太平通二丁目(府廳前)]’으로 쓰고 있어, 덕수궁에서 부청을 중심으로 광장의 명칭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총독부 고시 제722호〉, 《총독부관보》 제2986호, 1936.12.26.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광복 이후 ‘시청앞광장’이라는 명칭 변화 외에 현 상태를 유지해 오다가 1952년 3월 25일 내무부 고시 제23호로 면적 28,800㎡로 확장해 변경 결정하여 고시하였고, 다시 1963년 7월 1일 건설부 고시 제431호로 28,000㎡ 확정 고시하였습니다.
 

 

〈서울특별시도시계획 광장계획도에 의한 광장지적고시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 1953.01.06.
기록물철명: 《서울특별시도시계획공원계획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 1953.
https://archives.seoul.go.kr/item/33640


〈서울도시계획광장확정〉,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 1963.07.01.
기록물철명: 《도로(소로)결정고시철-건고431(63.7.1),서고767(63.6.29),건고444(63.7.11),서고775(63.8.19),건고564(63.9.20),서고804(63.12.24),건고743(63.12.30)》,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 1963.


이러한 광장계획에 의거하여 광장 경계부는 각기 다른 시기와 배경으로 형성되었습니다. 먼저 광장 동측은 을지로와 소공로를 잇는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1956년부터 그 주변의 토지와 건물 등을 매수하였습니다. 도로가 확장되며 분리된 당시 몇 채의 건물과 주로 나무가 심겨 있었던 용지도 광장에 포함되어 교통섬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삼각교차로에서 사각 형태의 교통광장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시청앞광장도로공사〉, 서울특별시 건설국 관리과, 1956.06.13.
기록물철명: 《사정원안철》, 서울특별시 건설국 관리과, 1956.
https://archives.seoul.go.kr/item/1121859
‣ 광장 동측 도로 확장 공사를 위해 매수할 용지를 표시한 도면.


〈내려다 본 서울시청 전경〉, 1977.08.10. 서울특별시 문화공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3847
‣ 동측의 교통섬은 주로 주차장으로 사용되었으며, 70년대 후반 을지로-소공로 도로를 폐쇄하여 전체를 주차장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광장 서측은 1968년 전차노선의 폐지와 함께 태평로를 확장하는 사업으로 달라졌습니다. 태평로를 50m로 확장하는 공사로 인해 덕수궁 담장이 16.5m 서쪽으로 이전하게 되었으며, 이때 도로상에 남겨졌던 대한문은 1970년 지하철 1호선 개착 공사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도로확장공사에따른지장물철거요청〉, 서울특별시 건설국 관리과, 1968.02.21.
기록물철명: 《소공동지하도보상관계철》, 서울특별시 건설국 관리과, 1968.
https://archives.seoul.go.kr/item/1127371


〈대한문이설에대한협조〉, 서울특별시 건설국 관리제1과, 1970.07.02.
기록물철명: 《토지보상에따른관계철》, 서울특별시 건설국 관리제1과, 1970.
https://archives.seoul.go.kr/item/1132784


〈서울시청 앞 도로 전경〉, 1968.06.15,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3661
도로상에 남겨진 대한문의 모습.

 

광장의 남측은 플라자호텔 건립을 포함한 소공동·북창동 재개발사업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1966년 10월 미국 존슨 대통령 방한 당시 시청 맞은편의 남루한 모습이 전 세계로 중계되면서, 실추된 서울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도심재개발사업이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존슨 미국 대통령 환영 시민대회〉, 1966.10.31,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7892


이에 1967년 남측 전면부에 있던 대한체육회관이 철거·이전되고 1971년부터 그 뒤편 소공지구의 재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화약(한화)과 화교 집단 등이 있던 1지구에는 당초 고층빌딩의 화교회관을 건립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화약이 화교의 땅을 모두 매입해 일본 마루베니와 합작하여 현재의 플라자호텔을 건립하였습니다.
 

〈도시계획(재개발구역및특정가구정비지구)지적고시〉, 서울특별시 행정국 민원과, 1973.10.05.
기록물철명: 《고시(제164호~제181호)》, 서울특별시 행정국 민원과, 1973.
https://archives.seoul.go.kr/item/873352
‣ 1971년 광장과 맞닿은 소공지구 1지구가 가장 먼저 재개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71년 소공지구 전경〉, 1971.12.27,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471
‣ 소공지구 재개발계획 시안.

〈서울시청 앞 도로〉, 1977.03.05, 서울특별시 문화공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3656
‣ 1976년 9월 완공된 플라자호텔.


완공을 앞둔 1976년 7월, 부분 준공 검사에서 플라자호텔의 저층부가 광장 계획선에 저촉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재시공 시 안전상의 문제가 있어 광장 면적을 90㎡ 축소한 27,910㎡로 변경하였고,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도시계획시설(광장)변경및지적승인〉,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 1977.08.22.
기록물철명: 《간선.광장고시철(4)-서고시249(77.7.27),서고시271(77.8.8),서고시275(77.8.9),서고시276(77.8.9),서고시291(77.8.23),서고시293(77.8.23)》,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 1977.


〈도시계획 시설(광장)변경 및 지적 승인〉, 서울특별시 도시정비국 도시정비과, 1977.08.23.
기록물철명: 《고시철(8)》, 서울특별시 도시정비국 도시정비과, 1977.
https://archives.seoul.go.kr/item/1096225
‣ 1977년 8월 25일 서울시고시 제291호에 의해 서울광장의 면적이 27,910㎡로 축소 변경되었습니다.


참고문헌
서울도서관, 『서울광장, 70년의 이야기』, 서울특별시, 2015.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2』, 도서출판 한울, 2003.
최상철·한영주, 『서울광장의 재조명』, 서울연구원,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