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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기록 이야기#18] 그린벨트 시리즈#2 그린벨트 유지기

[소장기록 이야기#18] 그린벨트 시리즈#2 그린벨트 유지기

2022-06-22보존서비스과조회수 : 360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자연환경 보존을 위해 지정된 것으로 이의 해제는 불가하며 동구역은 건물의 신축 등 신규개발은 제한하나 기존 주택은 존치함과 ···”
〈민원사안처리요청〉, 《개발제한구역》,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도시계획과, 1984. 2. 21.


위의 문구는 70년대 초 그린벨트가 지정된 이후, 개발제한구역이 어떠한 방식으로 관리·감독되었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의 문구입니다. 『그린벨트: 개발제한구역연구』는 80년대부터 97년 이전을 관통하는 이 시기를 ‘정책 유지기’라 분석합니다. ‘구역경계지정 불변’이라는 절대 원칙하에서 작은 행위 규제 완화 정도만 가능했던 시기입니다.
(권용우·변병설·이재준·박지희, 『그린벨트: 개발제한구역연구』, 박영사, 2013, pg. 77)
 

     
 

〈자연보호 청원경찰 발대식〉, 서울특별시 문화공보관, 1978. 2. 1.
1978년 서울시 그린벨트 감시원 전원이 자연보호를 위해 청원경찰로 임명되었다. (내용출처: 동아일보, 1978.02.01., 7면)
https://archives.seoul.go.kr/item/1711

‘개발제한구역 기록, 1970 ~ 2004’ 시리즈에서 그린벨트 유지기에 해당하는 기록은 ‘《개발제한구역》’과 ‘《개발제한구역규제완화》’ 2개 기록철에 해당합니다.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도시계획과 개발제한구역 기록, 1970 ~ 2004’ 시리즈
https://archives.seoul.go.kr/aggregation/172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도시계획과 개발제한구역(1983) 기록철
https://archives.seoul.go.kr/aggregation/311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도시계획과 개발제한구역규제완화(1993) 기록철
https://archives.seoul.go.kr/aggregation/313
 
《개발제한구역》 철의 기록들은 70년대 초 지정된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제한하고 구역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유지기의 행정 기조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개발제한구역》 기록철의 다수를 이루는 민원과 민원처리 문서들은 ‘민’과 ‘관’의 합치될 수 없는 간극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민’에 해당하는 토지소유자는 건물증축과 토지보상을 요구하였지만, ‘관’은 도시계획법에 따라 ‘해제가 불가함’이라는 원칙을 일관되게 고수하였습니다.

 

   
〈민원사안처리요청〉, 《개발제한구역》,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도시계획과, 1984. 2. 21.
https://archives.seoul.go.kr/item/17888

··· “온 가족이 긴축·초긴축을 하여 13년전 1971년도에 서울특별시 진관외동 소재(현 신도국민학교 정문앞길 건넌편의 수만평 넓은 대광장지대)의 대지 60여평을 사서 당시 내집을 지우려고 건축허가신청을 당시 행정구역인 고양군청에 제출한바 있었는데 있때 맛참 그린벨트 제한하였다고 하는 이유로 서류가 기각반료되였읍니다.”
···
“돈없는 자와 녹녹치 못한 고로 큰 땅도 몼갖고 집지우려고 겨우 땅 한칸 마련해서 오로지 내집 마련의 그날만의 목표를 삼는 나와같은 소시민이 어디 한두사람이 있겠읍니까? 수천명이나 될 것임을 알고 있음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개인의 재산은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해서 자유경제의 취지로 설정해두고 있는 이 마당에서 넘우나 국가에서 오래토록 묶어둔다면 언제까지 묶어둘 생각인지 모르겠읍니다. 저 개인의 재산권을 묶어 침해당한다면 저와 같은 소시민층은 죽어야 되는 겄 밖에 않덴니 이를태면 국가에서 이런 땅을 사드려서 국가 공익사업에 활용하시고 소시민에게는 그 보상금을 지급해주어야 소시민도 살아갈 수가 있고 뿐만 아니라 대지를 다른 곳에라도 사서 집을 짓도록 해주셔야 오른일이 아니겠읍니까.
한간에서 들리는 말로서는 군사보호지역이라고 해서 이북에서 남침하면 전쟁터가 댄다고 제한해둔다고도 말하는데 그릇타면 그린벨트 내 기존건물에 증축·개축 등은 있을 수 없는겄이 되어야 할진데 이 모두가 앞뒤 순서가 취지에는 어긋나고 있읍니다. 빗에 쪼들리는 우리나라 사람은 가진자들의 극대화된 사치와 방종에서 바로잡아야 된다고 누구나가 다-믿는바입니다.”


〈민원사안처리요청〉, 《개발제한구역》,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도시계획과, 1984. 2. 21.
내용일부 발췌

  

〈민원사안처리요청〉, 《개발제한구역》,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도시계획과, 1984. 2. 21.
https://archives.seoul.go.kr/item/17888
무허가 건물에서 생활을 이어가던 의뢰인이 부지매입을 통해 신축 건물을 증축하려 하였으나, 개발제한구역 제한으로 인해 건물증축이 불가하게 됨으로써, 재산상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개발제한구역》 기록철의 민원, 진정서, 질의서 등은 ‘그린벨트’로 인한 사유 재산상의 피해를 호소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로 종합됩니다. 즉, 이러한 증언들은 70년대 초 개발제한구역 설정의 긴박한 추진과정 속에서, 우려되었던 사유재산상의 피해와 그로 인한 내재된 갈등이 기록으로 가시화된 지점입니다.
 
다른 한편, 80년대 개발제한구역을 관리하는 ‘관’의 일관되고 완고한 입장 역시도 《개발제한구역》철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민원처리로써 완료된 서울시 도시계획과의 생산문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공통적으로 적혀있습니다.
 

“개발제한구역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도시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존키위해 지정된 것으로 이의 해제는 불가하며, 건물의 신축 등 신규 개발은 제한되나 기존주택은 존치되면 또한 관게법 범위내에서 중·개축도 가능하여 주민생활에 대하여는 제한조치를 가하고 있지 않음을 알려드리니···”

 



〈도시계획민원처리〉, 《개발제한구역》,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도시계획과, 1984. 2. 25

https://archives.seoul.go.kr/item/17816


이러한 ‘관’의 1차적인 의무는 개발제한구역 규제원칙을 철저히 적용하여 그린벨트를 유지·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적은 규제를 통해 도시 연담화를 방지하고, 개발제한구역 내의 ‘부동산 투기 위험을 방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린벨트 유지기는 개발제한구역을 넘어서 도시의 ‘비지적(leapfrogging) 확산’과 수도권 교외화 현상이 심화되던 시기와도 겹쳐집니다. 수도권의 교외화는 70년대부터 진행되기 시작했으며, 80년대는 특히 동두천시·송탄시·구리시·평택시·안산시·과천시 등이 기존 행정구역에서 분리·생성되던 시기입니다. 여기서 비지적 확산이란 도시 개발이 연속된 공간 선상에서 일어나지 않고, ‘개구리 뜀뛰기’처럼 공지를 두고 난개발로 이어지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그린벨트 바깥쪽으로 도시개발이 확산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권용우·변병설·이재준·박지희, 『그린벨트: 개발제한구역연구』, 박영사, 2013, pg. 98)

 

  
 

〈헌인릉 무허가 비닐하우스 철거〉, 1989. 7. 7., 서울특별시 공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5787
1989년 서울시는 시직원 120명과 포크레인 등을 동원해 서초구 내곡동 헌인릉 주변의 그린벨트 내 무허가비닐하우스 60동을 완전 철거했다. (내용출처: 경향신문, 1989. 7. 7., 9면)

개발제한구역 내에선 건축물 내지 인공물을 새로 짓거나 기존 건축물의 용도를 바꿀 수 없고, 구역 내 나무도 함부로 벨 수 없으며, (개발제한구역을 바탕으로) 도시계획 사업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린벨트 규제 기조가 전면적으로 전환된 것은 아니지만, 93년을 기점으로 그린벨트 ‘구역 해제 없는’ ‘규제완화’가 시행되기 시작합니다. 김영삼 정부는 그린벨트 지역 내 주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1993년 ‘개발제한구역 관리제도 개선’을 추진합니다.
(*권용석·권일·이양주·원광희·장희순, 『개발제한구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17, pg.51 )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도시계획과 개발제한구역규제완화(1993) 기록철
https://archives.seoul.go.kr/aggregation/313


 
 
 

〈개발제한구역내행위제한에관한개선의견제출〉, 《개발제한구역규제완화》,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도시계획과, 1993. 7. 20.
https://archives.seoul.go.kr/item/21130

그리고 이어진 1993년 9월 27일 건설부에서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방안」을 공표하기에 이릅니다.

 
 


〈개발제한구역제도개선안통보〉, 《개발제한구역규제완화》,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도시계획과, 1993. 10. 8.
https://archives.seoul.go.kr/item/21131

“제도개선 방안
 
개발제한구역 제도는 지난 20여년간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방지와 자연환경을 보전하는데 크게 기여해 왔으나, 그 뒤에는 100만명에 달하는 구역내 주민의 불만이 쌓여 왔습니다.
 
신정부 출범이후 지난 7개월동안 건설부는 개발제한구역 제도의 개선을 위하여 현지주민의 의견을 집중적으로 청취하는 한편, 공청회 등을 통하여 주민의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였습니다. 그리고 관계부처 협의과 당정협의를 거쳐 오늘 제도개선 방안을 확정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여론수렴 결과, 주민들은 그 동안의 경제적·사회적 불이익을 해소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반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국토는 우리 당대만의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이기 때문에 이 제도를 확고히 지켜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따라서 금번 제도개선의 기본방향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였습니다.
 
첫째, 현재의 개발제한구역은 확고히 유지한다.
둘째, 총사용 대지면적 범위내에서 원주민을 우선으로 주민생활불편은 최대한 해소한다.
셋째, 종래 규제위주 행정에서 벗어나 주민을 위한 소득 증대사업을 최대한 지원한다.
넷째, 정부와 공공기관도 주민생활과 무관한 공공시설의 설치는 자제한다.
다섯째, 사후관리를 철저히 함과 동시에 부동산 투기에는 강력하게 대처한다.”


93년 당시의 주요 세부적인 개선사항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 원주민 소유주택의 증·개축 허용범위를 현재의 35평에서 2층 이하 60평까지 대폭 확대
▲ 연립주택은 가구당 40평 이내까지 허용
▲ 원주민 소유의 30평에 미달하는 소형주택은 인접토지를 편입, 30평까지 증축
▲ 외지인이 소유하고 있는 주택의 증·개축 허용범위는 30평 유지
▲ 전입자는 5년 이상 거주한 주민에 한해 40평까지 증·개축 허용
▲ 근린생활시설 범위 확대(의원, 일용품소매점, 약국 등 25종에서 금융업소, 설계사무소, 예체능계학원 등 소규모 사무소와 주민편익시설 추가)
▲ 공설운동장, 공공도서관, 탁아소, 노인복지시설 설치 허용 등
참고: https://www.mk.co.kr/news/home/view/1993/09/41535/

1993년 이후에도 신정부하에서 개발제한구역에 관한 규제완화정책은 계속됩니다. 1995년에도 김영삼 정부는 건설교통부를 통해 「개발제한구역관리규정」을 일부 규정을 개정하고, 허가승인 권한을 완화하였습니다. 당시의 기록은 건설교통부가 생산하고 서울시가 접수한 문서로 남아있습니다.
 

 
 

〈개발제한구역관리규정개정통보〉, 《개발제한구역규제완화》,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도시계획과, 1995. 3. 18.
https://archives.seoul.go.kr/item/21133
 

이 시기의 그린벨트 정책은 구역 내 건축 규제에 대한 일부 완화에 한정된 것으로, 지정면적에 대한 해제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개발제한구역 내 주민들은 시대적 요구에 어울리는 그린벨트 정책을 꾸준히 요구하였고, 이어지는 김대중 정부에서 개발제한구역 정책은 본격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참고자료]
권용우·변병설·이재준·박지희, 『그린벨트: 개발제한구역연구』, 박영사, 2013
권용석·권일·이양주·원광희·장희순, 『개발제한구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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