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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기록 이야기 #24] 서울시민회관

[소장기록 이야기 #24] 서울시민회관

2022-08-19 보존서비스과 조회수 : 1807

장소는 도시와 기억을 형성합니다. 수많은 장소가 시대상을 표상하는 기억의 공간으로 기능했습니다. 그러나 장소가 되는 공간은 사라지고 다시 생성됩니다. 서울시민회관 역시 그러한 장소 중 하나입니다. 시민회관(市民會館)은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60년대 서울시민의 공연예술행사를 책임졌던, 대표적인 문화공간입니다.
 

서울 시민 회관 전경 사진

〈시민회관 전경〉, 서울특별시 공보실, 1963. 2. 14.
https://archives.seoul.go.kr/item/2832

서울기록원 카탈로그
[공간/지역] 서울시민회관, 1961 ~ 1972
https://archives.seoul.go.kr/authority/GEOL-00591
 


#우남회관에서 시민회관으로
 
서울시민회관은 ‘우남회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부민관(현 서울특별시의회)와 시공관(구 명치좌, 현 명동예술극장)를 제외하면, 전후 증가하는 행사와 공연을 수용할만한 문화시설이 없던 현실에서, 이승만 정권과 서울시는 근대화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1956년 6월 다목적 공연장*인 ‘우남회관’을 착공합니다.
*50년대 후반 신문 기사에선 공연장이 아닌 ‘공회당’이란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됩니다. 실제로 시민회관은 집회 장소의 성격이 강하나, 공연장으로도 기능했던 점을 감안하여 다목적 공연장이라 우선 정의하였습니다.
 
문제가 되었던 사안은 ‘우남’이란 명칭이었습니다. ‘우남’은 이승만 대통령의 호로,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을 ‘우남회관’으로 명명하는 것에 대해 “개인을 위한 기념사업으로 변색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비판이 계속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우남’이란 명칭을 철회할 것을 언급하였습니다. 4.19.혁명 이후 진행된 60년 8월 서울특별시의회에선 서울시민의 세금이 투입된 문화시설 건립사업에 대해, 우남회관이란 명칭 대신 ‘시민회관’으로 개칭할 것을 가결하였습니다. 건물명에는 시민회관뿐만 아니라 충무회관, 세종회관, 학생회관 등도 함께 고려대상이었습니다.

 
우남회관명칭개칭에 관한건의의견 일부.


〈우남회관명칭개칭에관한건의의건(37회임시회3차)〉, 《의안(임시37회)》, 서울특별시 의회사무처, 1960. 8. 11.
건설중인 우남회관의 철근 구조를 촬영한 전경사진 건설중인 회관 내부를 촬영한 사진, 태극기와 배너가 걸려있다. 회관 상량식에서 연설중인 관계자 상량식에 참여한 수십명의 인파.


〈우남회관 상량식〉, 서울특별시 공보실, 1958. 12. 27.
https://archives.seoul.go.kr/item/2947#none

1958년 12월 27일 총 공사비 13억 5천만환으로 공사 중이었던 우남회관의 상량식이 세종로 공사현장에 제단을 마련하고 거행되었다. 상량식에서 허정 서울시장이 상량문을 낭독했다.

우남회관 설립을 위한 과도한 예산책정도 문제였습니다. 대부분 시비(市費)로 이루어졌던 우남회관 공사비는 당초 계획했던 예산을 뛰어넘어 추가 예산까지 편성하여 최종적으로 총공사비 이십억환이 투여되었습니다. 50년대 국내 경제는 전후 극심한 빈곤의 시대로, 시민회관 건립은 그 막대한 예산 투입으로 인해 설계 초기부터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의원 과반수를 차지하는 민주당은 시민회관 건립 사안에 대해 의견이 갈라지는 분열을 겪었고, 시의회는 국회의사당조차 건립되지 않았고, 주택·학교시설과 같은 건물도 충분하지 않은 당시의 시대 현실을 고려하여 ‘공사중지’를 권고하였습니다.
 

〈우남회관 문제로 논란〉, 동아일보, 1956. 10. 30.
“공사비 오억여환의 방대한 예산으로 방금 서울시내 세종로 한복판에 공사진행중인 「우남회관」 건설로 서울시에서 총액 일억육천일백사십만환에 달하는 「추가공사입찰」을 공고한 것을 계기로 이십구일 「시의회」에서 논난이 벌어져 다수의원들은 “학급난·주택난 등 실정에 비추어 당국에서 공사집행을 중지할 수 없는가?”라는 요지의 신랄한 발언을 전개하였다”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56103000209203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6-10-30&officeId=00020&pageNo=3&printNo=10437&publishType=00020


〈“시민생활에 불요불급” 우남회관의 공사예산삭감〉, 동아일보, 1957. 5. 13.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57051300209203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7-05-13&officeId=00020&pageNo=3&printNo=10631&publishType=00020
 
〈서울시의 연간의 공과3 우남회관 예산으로 일시 옥신각신〉, 조선일보, 1957. 8. 20.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57082000239102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7-08-20&officeId=00023&pageNo=2&printNo=10879&publishType=00010
 

우남회관 신축공사 예산조서 우남회관 신축공사 예산조서


〈우남회관신축공사예산조서〉, 《우남회관 신축공사 예산조서》, 서울특별시 경영기획실 예산담당관, 1957. 7. 31.
https://archives.seoul.go.kr/item/780237
*1957년(단기 4290년) 7월 기준으로 책정된 ‘우남회관’ 건립에 필요한 예산조서이다.  소요예산으로 '금십삼억칠백삼십만환'이 적혀있다.

〈준공 가까운 시민회관〉, 경향신문, 1961. 9. 17.
“시민의 유일한 공회당과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으로서 200만 시민의 문화생활에 기여할 뿐만아니라 민족문화의 온상지가 될 시민회관(가칭)의 공사는 현재 96% 진척되었다. 총공사비 20억(거의가 시비고 국고보조가 약간) 연 공사 인원이 12만 명으로 오는 10월 말까지 준공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61091700329204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1-09-17&officeId=00032&pageNo=4&printNo=4835&publishType=00020

 
UNKRA 자금으로 도입된 자재대금 약송어음을 발핸한다는 것을 통보하는 문서.


〈UNKRA 자금으로 도입된 우남회관 건축용 자재대금 약속어음 발행 교환의건〉, 《시의회참고자료》, 서울특별시 행정국 행정과, 1959. 7. 13.(단기 4292년)
https://archives.seoul.go.kr/item/849770

*우남회관(시민회관) 건립에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은, 당시의 서울시 자체 예산만으로는 온전히 감당할 수 없었다. 서울시는 외자도입을 통해 부족한 공사비용을 충당하고자 하였다.


# 시민회관의 시작

과정상의 어려움을 뒤로 하고, 1961년 11월 7일 서울 시민회관이 개관합니다. 시민회관은 이천승이 설계하고, 지하 1층·지상 4층에 10층 탑을 지닌 당시로선 초고층 건물이었습니다. 4층 대강당은 3000여 객석을 보유하고 있었고, 영화 상영을 위한 ‘에네르망’ 최신 영사기, ‘에어컨디션 장치’ 등을 갖춘 문화시설이었습니다. 이렇게 시민회관은 시민을 위한 공회당이자 예술의 전당이란 포부를 지니며 그 시작을 알립니다.
 

늦은 시간 환하게 불을 켜 놓은 회관의 전경사진 회관 광장에서 진행중인 음악회와 참석한 인사들을 촬영한 사진

〈시민회관 개관기념 음악회〉, 서울특별시 공보실, 1961. 11. 7.

https://archives.seoul.go.kr/item/2804#none
 


〈대한뉴스 제339호-건설의 새소식〉, 국립영상제작소, 1961. 11. 11., ⓒ한국정책방송원
 
시정문서 역시도 시민회관 관련 기록들이 남겨져 있습니다. 사용료 징수조례, 연단위 예산안들이 주된 기록물들입니다.
 
 
 
1961년도서울특별시시민회관비특별회계세입세출예산서 예산서 세부내역이 기입된 표
 

〈1961년도서울특별시시민회관비특별회계세입세출예산서(안)〉, 《각특별회계당초예산안(2-1)》, 서울특별시 경영기획실 예산담당관, 1961. 12. 31.
*시민회관은 국고보조를 받지 않은 서울시의 특별회계로 운영되었다.

 
시민회관 사용계획서 제출 공문. 시민회관 운영의 원활과 대관계획에 참고할 수 있도록 정부각기관 및 공공단체에 사전 통보하여 1963년 대관업무에 만전을 가하고자 한다는 공문. 시민회관사용계획서제출의 배부처로, 동아일보, 한국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일요신문, 경제신문사, 서울신문, 국립중앙방속국, 문화방송국, 연예협회, 국악협회, 작곡가협회, 음악가협회, 농렵중앙회, 교육연합회, 수산연합회, 산업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조흥은행, 국민은행, 서울대, 이화여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숙명여대, 경기고, 서울고, 서울여고, 경기여교, 명성여고, 재무국, 보건사회국, 교육국, 관광운수국, 도시계획국, 수도국, 용산구청, 종로구청, 서대문구청, 성북구청 등이 적혀있다. 


〈시민회관사용계획서제출〉, 《공고(제1호~제76호)》, 서울특별시 행정국 민원과, 1963. 1. 14.
 
시민회관 사용료 징수조례 개정 사유서. 시민회관 수입의 대부분을 정액제 사용료의 징수에 의하여 구성하고 있으므로, 29년도 예산편성에 있어 공무원의 보수 증액분과 기타 물가 상승에 따른 각종경비의 증가분을 보충하기 위하여 사용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사유서로, 대강당 사용료를 8에서 10퍼센트 인상하고, 예식장 사용료를 20퍼센트 인상, 소강당사용료는 동결하거나 6퍼센트 인상해야 한다는 내용. 개정 사유서에 적힌 내용을 반영했을 경우 요금표. 개정전과 개정후의 대강당, 소강당, 별관의 대관료 변화가 적혀있다. 각 장소는 평일, 주말, 오전, 오후, 야간, 오후야간, 전일 등으로 요금표가 세분화되어있다. 
 

〈시민회관 사용료 징수조례 개정〉, 《폐지조례규칙철-세종문화회관사용료징수조례》, 서울특별시 경영기획실 법무담당관, 1968. 10. 26.

*시민회관의 건립 예산과 유지관리비는 시설 운영 방향성의 문제를 야기했다. 공공성의 성격을 지닌 시민회관은, 순수공연예술 작품을 상연하고 성장시켜야할 의무가 있었지만, 시설 운영관리비와 투입되는 인건비는 수익을 위한 상업성 쇼(대중예술) 대관을 부추겼다. 높은 대관료와 비용 인상 정책 역시도 순수공연예술계의 접근성을 담보할 수 없는 원인 중 하나였다.



# 서울사진아카이브의 시민회관 기록 사진
 
서울시민회관은 서울시가 주관하여 운영한 만큼, 서울시의 기록 사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시민회관은 공공의 집회 장소인 공회당, 공연예술 전문 공연장, 영화관, 대중예술 공연장 성격을 복합적으로 지닌 다목적 공연장이었습니다. 서울사진아카이브는 서울시에서 주관하고 시민회관에서 열린 행사와 공연에 대한 사진기록을 디지털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서울기록원 서울사진아카이브 서울시민회관 키워드 검색
https://bit.ly/3A4dRfR
 

시민회관 개관 1주년을 맞아 한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무대위에서 공연하고 있다. 시민회관 개관 1주년기념 공연 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배경으로 관계자 수십명이 5열로 앉아 촬영한 사진 


〈시민회관 개관 1주년 기념행사〉, 서울특별시 공보실, 1962. 11. 7.
https://archives.seoul.go.kr/item/2923

 

 
시민회관에서 열린 송년파티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이 음식이 놓인 테이블에 둘러모여 서있다. 시민회관에서 공연하고 있는 시립교향악단과 청중들의 모습을 위에서 찍은 사진 


〈서울 시립교향악단 송년 연주회 및 송년 파티〉, 서울특별시 공보실, 1963. 12. 21.
https://archives.seoul.go.kr/item/2713#none
서울 시립교향악단이 시민회관에서 1963년 마지막 정기연주회를 마치고 송년파티를 열었다.(내용출처: 경향신문, 1963. 12. 19, 5면)
 
*[주제] 서울시립교향악단, 1948 ~
https://archives.seoul.go.kr/authority/TOPIC-00258

 
한복을 입은 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이 무대위에서 가야금을 켜고 있다. 어린이합창단 대표자에게 검은양복을 입은 어른이 무언가 수여하고 있다. 


〈시립국악관현악단 창단식 및 기념연주회〉, 서울특별시 공보실, 1965. 3. 2.
https://archives.seoul.go.kr/item/2748
〈제4회 서울 어린이합창단 정기음악회〉, 서울특별시 공보실, 1965. 12. 29.
https://archives.seoul.go.kr/item/2730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서울시립어린이합창단은 60년대 당시 서울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단체로, 시민회관에서 열린 공연에 대한 다량의 기록이 남아있다.

지휘자를 둘러싸고 민속가극단 인원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민속 가극단 창단식〉, 서울특별시 공보실, 1963. 6. 20.
https://archives.seoul.go.kr/item/3015
*서울민속가극단은 서울시가 후원한 일종의 시민회관의 상주단체였다.


서울 시민회관은 공회당(집회장소)과 대중예술 공연장으로도 기능했지만, 순수예술 공연장의 목적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시정기록 바깥의 전문 예술공연장으로서의 시민회관 기록은 공연예술아카이브에 남겨져 있습니다.
 

아르코예술기록원 소장자료
〈런던.로열.페스티벌.발레단 : 초청대공연〉, 1969년 시민회관 공연
https://www.daarts.or.kr/handle/11080/107905

공연예술박물관 소장자료
〈투란돗트〉, 국립오페라단, 1972.10.15.~1972.10.17., 시민회관
https://archive.ntok.go.kr/ntok/perform/masterDtl.do?detailKey=IPH00078



#화재로의 전소와 새로운 문화공간 시대로의 이행
 

1972년 12월 2일 저녁. 시민회관에선 문화방송(MBC) 개국 11주년 기념 10대 가수 청백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남진, 하춘화, 정훈희와 같은 당시의 스타들이 참석하는 무대였습니다. 문제는 무대 막이 내린 후, 전기과열로 인한 합선으로 발생한 화재였습니다. 무대 위 조명장치가 터지면서, 불길은 순식간에 시민회관 건물 전체를 뒤덮고, 53명의 사망자와 7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날의 화재 사건으로, 시민회관 역시도 전소되어 버립니다. 이후 서울시는 새로운 시민회관을 건립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합니다. 재건을 위한 자문회의·설계모집공고·외자도입 등을 계획하고 수행한 기록물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시민회관 외벽너머로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다. 하늘은 화재로 인한 연기로 뿌옇고, 사다리차를 탄 인원이 건물을 라이트로 비추고 있다. 

〈시민회관화재진화모습1〉, 《시민회관화재》, 공보처 홍보국 사진담당관, 1972. 12. 2., ⓒ국가기록원

http://theme.archives.go.kr/viewer/common/archWebViewer.do?bsid=200200068452&dsid=000000000001&gubun=search
 
 
서울시장과 수행인원이 병원을 찾아 환자의 상태를 보고 있다. 시장이 몸을 반쯤 일으킨 화재 부상자에게 진중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양택식 서울시장, 시민회관 화재 부상자 위문〉, 서울특별시 공보실, 1972. 12. 3.
https://archives.seoul.go.kr/item/8347
1972년 양택식 서울시장이 시민회관 화재로 인해 부상당한 환자를 위문하고 있다. 시민회관 화재로 인해 소강당을 제외한 시민회관 건물이 불이 타버리고, 53명의 사망자와 76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내용출처: 동아일보, 1972. 12. 04, 7면)

 
총력안보의회 명패가 걸려있는 회의실에서 시민회관 재건립 자문위원회의가 진행중이다.  총력안보의회 명패가 걸려있는 회의실에서 시민회관 재건립 자문위원회의가 진행중이다.  


〈시민회관 재건립 자문위원회의〉, 서울특별시 공보실, 1973. 1. 22.
https://archives.seoul.go.kr/item/8118#none
1973년 서울시청 상황실에서 작년 12월 화재로 인해 전소된 시민회관을 재건립하기 위한 자문위원 회의하는 모습이다.

 
시민회관 현장 설계 모집 공고 시민회관 건립계획 설계를 별지 공고안과 같이 공고하고자 한다는 공문. 공고일 73년 1월 20일, 조간 및 석간. 수신처 일간지 2개사. 공고금액 사십만원, 예산과목은 시민회관 특별회계. 시민회관비, 사업비, 수수료등을 포함하며 공보실에 의뢰함. 이하 내용 위와 같음. 


〈시민회관현상설계모집공고〉, 《공고(제1호~제43호)》, 서울특별시 행정국 민원과, 1973. 1. 22.


1978년 세종로에 새로운 시민회관이 개장합니다. 그곳이 바로 현재까지 서울의 대표 문화공간으로 기능하는 ‘세종문화회관’입니다.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이 자리잡은 곳에 ‘시민회관’이 있었습니다. 시민회관은 비록 전소되었지만, 근대화와 함께 전후세대 대중·공연예술의 기억과 감수성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시민회관 관련 기록은 공연예술 아카이브, 대중예술 아카이브를 교차하는 심층적인 연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김만중, 「서울의 공회당 건축물에 대한 역사적 고찰-서울시민회관으로부터 세종문화회관에 이르기까지-」, 세계 역사와 문화 연구, 2021
유인경, 「서울시민회관의 공공극장 운영 방향성에 관한 연구 - 상주단체인 서울민속가극단의 활동을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2020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ByDate.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