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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기록 이야기 #25] 노면전차의 퇴장
서울 곳곳이 지하철과 버스로 연결되기 이전, 서울 시민들은 어떤 교통수단을 가장 많이 이용했을까요? 바로 노면전차가 있었습니다.
1899년 5월에 등장한 노면전차는 한성전기회사가 사업을 담당하게 되며 본격 운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성전기회사는 거상 김두승과 이근배가 청원하고 전차와 전등 시설에 큰 관심을 보인 고종 황제가 황실의 이름으로 75만 원을 두 차례로 나누어 투자하게 되어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미국 파견 외교관으로 활동한 한성판윤 이채연이 사장으로 취임하여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콜브란-보스트위크 상사(Collbran-Bostwick Development Company)’로부터 설계·설치 자문을 받아 전차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① 〈서울시 전차운수 사업소 개업〉, 1966. 6. 1.,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1859
② 〈신형전차 견본〉, 1968. 4. 17.,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1945
한성전기회사에서 담당한 전차사업은 한미전기회사, 일한와사회사(일한가스회사), 경성전기주식회사(일한와사회사가 사명을 변경)를 거쳐 한국전력공사에서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1966년, 육군 수송장교 출신의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 취임하며 가장 먼저 교통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중 서울시가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전차 사업을 이관받기로 발표하였고, 국무총리 훈령 제32호로 전차사업 이관을 확정 짓게 되었습니다. 이후 서울시는 조례 제44호 ‘서울특별시 운수사업소 설치 조례’를 발표하며 전담 기구를 설치하며 사업을 이어나가게 되었습니다.
〈서울특별시 시영 전차 운임 조례 개정〉, 《폐지조례규칙철-시영전차운임조례》, 1967. 6. 24., 서울특별시 기획관리관 법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784187
〈전차승차권갱신공고〉, 《공고(제106호~제130호)》, 1966. 7. 28., 서울특별시 내무국 시민과.
https://archives.seoul.go.kr/item/864528
서울시가 전차사업을 인수한 뒤 요금을 살펴보면 기존에서 2배 정도 인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수익의 극대화와 지출의 무리한 억제 등 경영성과의 향상에 주력하였지만, (중략) 지속적으로 적자 요인은 일익 가중되고 있어 누적된 적자 재정을 보전하고 경영의 합리화를 기하기 위하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업 인수 후 개정된 전차 표의 모습도 알 수 있습니다. 구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해당 금액만큼 환불해주고, 신권 활용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보통승차권, 군인·경찰승차권, 일반·통학 정기승차권의 모습과 함께 서울시 휘장이 인상적입니다.
〈세종로지하도공사에따르는전차일부노선임시휴지및변경운행〉, 《공고(제90호~제105호)》, 1966. 6. 9., 서울특별시 내무국 시민과.
https://archives.seoul.go.kr/item/864494
전차의 초기 노선은 돈의문(서대문)에서 출발하여 종로, 흥인지문(동대문), 그리고 홍릉(명성황후의 능) 구간이었기에 ‘홍릉선’이라고 불리며 운행되었습니다. 이후 서울시의 행정구역이 확대되고 상권이 발달하면서 숭례문(남대문), 용산, 마포까지도 노선이 확장됩니다. 서울기록원 소장기록물을 통해 전차노선의 일부 구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사라진 ‘신신백화점(화신백화점)’이라는 명칭도 보입니다.
〈서울특별시 시영 전차 운임 조례 개정〉, 《폐지조례규칙철-시영전차운임조례》, 1967. 6. 24., 서울특별시 기획관리관 법무관.
https://archives.seoul.go.kr/item/784187
하지만 전차 운행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전차사업 시작 초기에는 시민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였고, 6.25 전쟁 이후 많은 전차가 소실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물가는 계속 오르지만 전차 요금을 쉽게 올리지 못하여 회사 운영과 인건비도 충당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전차는 제대로 수리 한번 받지 못하여 고장이 매우 잦았고 수리할 경비도, 교체할 시설도 부족하여 1960년대 전차 운영은 사업 개시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① 〈서울시고가고속도로건설사업계획〉, 《고가도로고시철-건고745(67.11.23),건고794(67.12.15),건고782(67.12.8)》,
1967. 8. 9.,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
https://archives.seoul.go.kr/item/1707419
② 〈서울특별시고속전차건설추진위원회 규정폐지 의뢰〉, 《폐지조례규칙철-서울특별시고속전차건설추진위원회규정》,
1970. 9. 14., 서울특별시 기획관리관 법무과.
https://archives.seoul.go.kr/item/785746
이에 김현옥 시장은 전차 운영의 어려움과 교통문제 해소를 위해 단기와 중·장기로 나누어 대책을 모색하였습니다. 단기대책으로는 고가도로와 지하도 건설, 버스와 택시의 증차 및 노선 재조정 등이 있었고, 중·장기대책으로는 전차의 철거와 지하철의 건설이 있었습니다.
〈광화문 세종로 지하보도 설치공사〉, 1966. 4. 19., 서울특별시 공보실.
https://archives.seoul.go.kr/item/2322
〈전차전면운휴〉, 《공고(제227호~제267호)》, 1968. 11. 29., 서울특별시 내무국 시민과.
https://archives.seoul.go.kr/item/866168
시민의 발에서 서울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된 전차는 70년간의 운행 끝에 1968년 12월 1일 0시를 기준으로 퇴장하게 되었고, 이를 뒤이은 것은 지하철 1호선(당시 종로선)의 착공과 자동차 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참고문헌>
김대한. 2015. 『전차 개설에 의한 한양도성 문루 주변지역의 도시 변화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서울시립대학교 일반대학원 건축학과 건축학전공.
김성원. 2017. 『서울 도시철도와 수도권 교통결합체의 구성에 관한 연구, 1962-2016』. 박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
박리디아. 2021. 『19세기 대중교통수단, 노면전차의 특성과 지속 이유의 고찰』. 석사학위논문, 경성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시공학과.
서울기록원. 2020. 『속력 시대의 개막; 2020년 서울기록원 전시콘텐츠 조사·연구 사업』. 서울: 서울기록원.
서울역사편찬원. 2018. 『땡땡땡! 전차여 안녕!』. 서울: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역사박물관. 2019. 『서울의 전차』.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손정목. 2005. 『한국도시 60년의 이야기 1』. 파주: 한울엠플러스(주)
지하철 1호선의 등장
https://archives.seoul.go.kr/post/2659
서울의 버스
https://www.facebook.com/seoul.met.archives/posts/pfbid0Q62YRojkGT9dJULq7SEfDDijhdVTiSxT8zu19deyb2bYNoVCnnVfYtTxsqZ73atYl
서울의 택시
https://www.facebook.com/seoul.met.archives/posts/pfbid0LSpE5r5coMsKHiUwk49uiTkxoNhCqDCYAKZ1SS2AQ39fYeadBu9ZA9tW2ocr3kSpl
서울의 고가차도
https://www.facebook.com/seoul.met.archives/posts/pfbid02sKWHUs41bA83vK9V2uMMYkW6SsExa1LQns997LMHRcSp18GkFdvHGUCoh5bT7tUn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