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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기록이야기 #26] 피맛골
조선시대 종로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교자나 가마가 지나다니는 큰길인 육조거리가 있었습니다. 이 길에서 교자나 말을 타고 다니는 고관대작이 지나가면 백성들은 길가에 엎드려 예의를 표해야 했습니다. 백성들은 매번 엎드리는 것이 번거로웠을뿐더러, 무관이 달리는 말에 치이는 교통사고의 위험도 있었기에 백성들은 말을 피해 좁은 길목으로 다니기 시작합니다. 이 길을 따라 목로술집 모주집, 장국밥집 등이 연이어 생겨났으며, 서민들의 격조가 담긴 이 골목을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따와 ‘피맛골’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시대 종로거리의 피맛길의 모습
큰 길이 조선시대 육조거리이고, 양옆으로 표시된 빨간색 칠한 부분이 백성들이 말을 피해 다니던 ‘피맛길’이다.
<서울의 골목길 8회 - 종로 피맛골>, 서울특별시 교통방송, 2011.2.
‘피맛길’의 유래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백성들이 말을 피하기 위해 뒷골목으로 다니다가 생긴 길이라는 것이고, 나머지는 조선 도시계획의 산물로 백성들의 원성과 불편을 고려해 광화문 사거리부터 숭의문까지 조정에서 좁은 길을 터주었다는 설입니다. 경국대전 공전편 도로정비규정에는 “대로는 폭 56척(약 17.48m), 중간길은 16척(약5m), 좁은 길은 11척 (약 3.42m)”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피맛길의 도로 폭은 경국대전에 규정된 것보다 좁지만, 시대가 흐르며 건물들이 도로 방향으로 침범해 생긴 현상임을 감안한다면 두 사람이 교차해서 통행할 수 있을 정도의 일정한 도로 폭은 유지되기 때문에 조정에서 만들어준 길이라는 설의 증거로 활용됩니다. 또한 하급관리들이 업무수행에 신속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마련된 도로로 시작했다가, 그 일대에 저렴함과 신속성을 위한 음식점이 들어서면서 일반 서민들의 주된 통행로와 거주지로 발달하기 시작했다고도 합니다.
〈역사기행 서울의 재발견 7회 - 피맛골을 추억하다〉, 서울특별시 교통방송, 2009.5.28.
어떻게 생겨난 길목이든 벼슬아치들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피맛골은 ①지배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온전히 숨길 수 있는 은신처이자, ②팥죽집, 떡집, 선술집, 색주가 등이 집중된 서민들의 고단한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해방구였습니다. 특히 선술집은 피맛골의 상징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도시에 있는 서민들이 그들의 시름을 달랬던 장소이자,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잔술집(잔 단위로 술을 파는 가게)으로 발전해 70~80년대까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역사기행 서울의 재발견 7회 - 피맛골을 추억하다〉, 서울특별시 교통방송, 2009.5.28.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길목을 따라 이어진 피맛골은 광복 이후에도 시민들이 많이 찾는 맛집 골목이 되었습니다.
〈역사기행 서울의 재발견 7회 - 피맛골을 추억하다〉, 서울특별시 교통방송, 2009.5.28.
〈가로정비 작업>, 서울특별시 공보실, 1967.6.29, https://archives.seoul.go.kr/item/2110
60년대까지의 피맛골은 주객들이 정취를 즐기는 장소였다면, 7~80년대에는 유신체제와 독재정권으로 인한 시대의 고민과 아픔을 간직한 청년들이 모이던 곳이었습니다. 낮에 최루탄 가스에 쫓기던 사람들은 밤이 되면 피맛골의 선술집에 모여 민주주의 현실을 토로하곤 했습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돈이 없던 학생들은 돈 대신 서로의 시계를 가게 주인에게 맡기며 술 값을 외상했기 때문에 ‘외상술’이라는 명칭이 당시 많이 쓰였다고 ‘와사등’(30년 넘은 피맛골 가게)의 점주는 말합니다.
〈역사기행 서울의 재발견 7회 - 피맛골을 추억하다〉, 서울특별시 교통방송, 2009.5.28.
1980년 초 도심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고, 2003년 서울시 건축위원회에서 재개발을 허가함에 따라 청진동 피맛골 일대가 사라질 뻔했는데요. 조선부터 이어진 약 600년의 서민들의 애한이 서린 피맛골을 보존하자는 시민들의 바람을 이어 종로 2가에서 종로 6가에 걸친 일대를 본래 피맛골의 모습을 보존 및 재현하는 작업을 시행합니다. 그래서 청진동 도시 재개발사업은 기존의 있던 길을 철거해 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닌, 남은 구간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면서 거리에 보도블록을 깔아 길가를 깨끗이 정비하는 사업으로 계획되었습니다.
서울특별시 문화국 문화재과, 2000.9.30., https://archives.seoul.go.kr/item/1075599
하지만, 그럼에도 재개발로 인해 골목은 여기저기가 끊기고 파헤쳐져 추억의 음식점들은 여러 군데로 흩어지거나 영원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시설은 깔끔해졌지만 옛 정취를 잃어버린 피맛골에 대한 시민들의 그리움과 사랑은 2011년 뮤지컬 제작으로 이어집니다. ‘서울시 대표 창작 뮤지컬 제작’이라는 프로젝트로 공모를 통해 피맛골의 분위기와 한국적 신화 요소가 잘 어우러진 작품인 뮤지컬 ‘피맛골연가’가 공연되었습니다. 또한, 2013년에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피맛골 일대가 지정되어 현재까지 꾸준히 시민의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뮤지컬 “피맛골 연가” 공연 안내>, 《(행정)전산/후생》, 서울특별시 종로소방서 세종로119안전센터, 2011.8.11.
<참고 자료>
- 전종한, 「도시 뒷골목의 ‘장소기억’ -종로 피맛골의 사례-」, 대한지리학회지』44권(6호), 대한지리학회, 2009, p783
- '장소영의 피맛골 연가 미니콘서트’ 장소영 음악감독의 이야기 中
- 〈역사기행 서울의 재발견 7회 - 피맛골을 추억하다〉, 서울특별시 교통방송, 2009.5.28.
- 〈서울의 골목길 8회 - 종로 피맛골>, 서울특별시 교통방송, 2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