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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열람실 전시 펼쳐보기 #5] 한눈에 모아보는 서울시 표어

[기록열람실 전시 펼쳐보기 #5] 한눈에 모아보는 서울시 표어

조회수 : 1,396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울시 공문서의 형태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던 대한민국은 해방 후에도 공문서를 작성할 때 세로쓰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글 타자기의 이용이 늘어나고 있던 1950년대 후반 공문서의 가로쓰기가 검토되었고, 1961년 「정부공문서규정」 방침에 따라 한글국어체로 가로쓰기가 시행되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컴퓨터를 활용하게 되면서 공문서의 규격도 B5에서 현재의 A4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각종 관련 법령의 제정과 문서 작성 수단의 변화를 거쳐 지금의 공문서 작성 양식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공문서의 형태와 더불어 문서에 찍힌 표어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가 있었습니다.
서울시 공문서 속의 표어를 살펴보면 당시 사회의 고민과 발전방향이 담긴 시대적 풍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60~70년대 전반적인 사회 이슈는 “건설”이었습니다.
정부는 전쟁의 여파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였고, 이러한 경제개발계획의 영향으로 수많은 인파가 서울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서울시는 급속한 인구 증가로 인한 교통 혼잡, 환경오염, 과밀한 주거 및 빈약한 대중교통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택 건설, 도로 확장, 신시가지 마련, 지하철 건설 등을 통해 도시 기반시설을 구축함은 물론, 시민들에게 ‘건설·질서’ 정신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건설의 해”



서울도시계획일부변경, 1968.04.11.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

기록물철명: 공원고시철-건고212(68.4.11)용마,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 1967 ~ 1968

토지구획정리사업의 대상 중 중곡지구에 해당하는 지역 가운데 중곡동, 능동 일대가 계획공원용지(올림픽경기장 후보지)로 책정되어 있어 서울의 도시계획상 일부를 변경한다는 내용의 건설부고시이다.
 “대건설의 계속”  “가정 및 환경건설”



공작물(제방)설치공사중지, 1969.04.23. 서울특별시 건설국 하수과

기록물철명: 하천(풍납)제방축조공사(유성건설,김병학), 서울특별시 건설국 하수과, 1968 ~ 1969

하천공작물설치면허에 따라 실시된 풍납동 한강연안지역 내 호안축제공사의 중단에 대한 보고서이다.
저지대 침수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한강 제방 축조 설치공사가 진행되던 중 문화재(사적 제 11호 풍납리 토성) 보호구역과 일부 저촉되어 공사가 중지되었다.

 
 

또한 1970년대 유신정권에서 주력한 ‘새마을 가꾸기 운동’으로 주민의 소득증대와 ‘근면·자조·협동’ 등의 정신계몽을 강조하였습니다.
 

“자조·자립·협동”  “새마을운동의 기수가 되자”




현지개량사업추진상황보고, 1972.12.05. 서울특별시 주택관리관 주택개량과

기록물철명: 새마을운동현지개량사업진도상황보고철, 서울특별시 주택관리관 주택개량과, 1973 ~ 1973

각 동네마다 시행한 새마을운동 현지개량사업의 주택개량 실적을 구청에 보고하는 내용의 보고서이다.
지구별로 사용된 사업비와 집행실적, 건물개량 추진 현황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표가 첨부되어 있다

 
 “10월 유신 제1차년도”  “유신이념구현의 해




업무협조, 1973.11.17. 서울특별시 건설국 건설행정과

기록물철명: 새마을사업보고서, 서울특별시 건설국 건설행정과, 1973 ~ 1973

새마을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자재 지원을 구하는 업무 협조 공문에 첨부된 서류이다.
오류동 온수마을의 새마을 사업에 소요되는 관급자재에 대한 검수 및 수불을 철저히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80년대의 주요 쟁점은 “성장”입니다.
1960~70년대 고도의 성장 정책을 발판삼아 급속하게 경제가 성장하고 발전하던 시기였습니다.
인구 급증으로 여전히 주택이 부족했으며, 국민 소득도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여 중산층의 비율이 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 호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발생한 도시 내 주택 부족과 부동산 투기를 해결하기 위해 500만호 주택 건설을 발표하였고, 목동신시가지 건설과 함께 많은 주택단지가 건립되었습니다.
경제력의 성장은 곧 국력의 성장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서울 도시발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정성어린 86준비, 가슴마다 보람보람” “뜻모아 하나로, 힘모아 세계로”



신월동주택지토취현황보고, 1986.06.19. 서울특별시 건설관리국 주택기획과

기록물철명: ‘85신월아파트건립추진관계철, 서울특별시 건설국 건설행정과, 1985 ~ 1987

신월동 시영아파트 건립에 따른 주택지 토취작업 현황에 관한 보고서이다.
신월 시영아파트가 세워진 지역은 김포공항의 최초이륙지점으로 소음이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설계와 시공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자 하였다.

1980년대는 86 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88 서울올림픽, 서울장애자올림픽대회와 같은 대규모 국제대회가 연이어 개최되던 시기였습니다.
이 때 서울시는 시민의 생활문화를 개선하는 데 총력을 다 할 뿐만 아니라,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올림픽 대비’라는 특수한 목표를 설정하고 대규모 개발로 체육시설과 도시기반시설을 우선 확충했습니다.
또한 김포공항에서 서울 중심부로 이어진 항공로에 위치한 무허가 주택을 철거한 뒤 제방을 쌓고 주택단지로 개발하였습니다.
이러한 도시 재정비를 통해 곧 열릴 국제대회에서 달라진 대한민국의 모습을 세계에 뽐내고자 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구호는 이러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86아시아경기 앞으로 00일”



 
오쇠동특수사격장주변이주대책에따른보상조치, 1985.08.27. 서울특별시 건설관리국 주택개량과

기록물철명: 특수사업이주대책(강서구오쇠동), 서울특별시 건설관리국 주택개량과, 1985 ~ 1987

항공건설사업과 관련하여 김포공항 확장공사에 따라 오쇠동 특수사격장 주변의 철거민 이주대책이 시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이주민에 대해 강서구가 서울시에 보상에 관한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는 문서이다

 
“김포공항 확장사업 완공목표 앞으로 339일”
 


오쇠동사격장주변건물철거보상에관한회신, 1987.01.30. 서울특별시 건설관리국 주택개량과

기록물철명: 특수사업이주대책(강서구오쇠동), 서울특별시 건설관리국 주택개량과, 1985 ~ 1987

서울시가 지시한 공문에 대해 공항건설사무소에서 회신한 문서이다.
서울시는 공항건설사무소장에게 오쇠동 사격장 주변 이주 희망자의 건물철거보상금을 공항건설사무소 '87년 예산에서 지급하라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90년대에는 외환위기로 겪게 되는 “불황”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성장과 분배의 불균형은 심각한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었고,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아시아의 여러 국가와 함께 한국도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대기업을 포함한 수많은 기업이 쓰러졌으며, 이로 인해 무수히 많은 실직자가 생겨났습니다.
경제적 위기는 물론, 이미 호황을 겪은 세대의 박탈감도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습니다.

“서울 새로운 탄생”



서울특별시중소기업구조조정사업추진지침발령, 1994.05.17. 서울특별시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

기록물철명: 폐지조례규칙철-중소기업시설자금지원사업추진지침, 서울특별시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 1994 ~ 1996

서울특별시가 중소기업진흥법등에 의거 중소기업구조조정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적용되는 지침을 발령한다는 내용의 문서이다.
예규 제 587호와 구조조정사업 제정 시행에 관한 계획서가 첨부되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실금융기관과 기업을 정리하고 국제적 회계기준을 도입하는 한편, 실업대책을 마련하여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열린 가슴 밝은 대화 보람의 일터”



실업자재취직훈련 실시에 따른 협조요청, 1998.04.24. 복지여성국 보육지원과

기록물철명: 보육교사교육원학사운영관리, 복지여성국 보육지원과, 1998 ~ 1998

노동부에서 실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업자재취직훈련과정을 개설하고자 성신여자대학에서 신청한 보육원 신규인가에 대해 서울시에 협조요청을 구하는 공문이다.
 
  

또 전반적으로 침체된 사회적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국가의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금모으기’ 캠페인을 했고, 이를 통해 모든 국민이 함께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절약을 강조하여 낭비와 사치를 근절하고자 하였으며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구호를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경제위기를 우리 힘으로 극복합시다” “과소비행태를 바로잡고 절약하는 생활을 합시다”



`98 중소유통업 구조개선자금지원 협조 요청, 1998.11.26.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도시정비과

기록물철명: 진정(질의)관계철,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도시정비과, 1998 ~ 1998

성동구 관내 추진 중인 왕십리종합시장 재건축조합으로부터 98 중소유통업 구조개선자금을 지원해달라는 민원과 관련한 업무요청 공문이다.
화재로 불탄 왕십리종합시장의 이주사업 도중 시공사의 부도와 IMF 외환위기로 건설업무가 중단되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재래시장을 재건하기 위해 시설자금을 지원받고자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금까지 살펴보신 것처럼 표어는 시대적 풍경을 보여주는데요.
서울기록원과 함께 표어를 한눈에 돌아보며, 과거의 서울로 들어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