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건축 아카이브 전시 <종이와 콘크리트>
서울시 정보공개정책과는 <서울기록원 전시설계 및 제작 설치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안서 평가 준비 단계이며 다음달에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됩니다.
기록 전시가 뮤지엄의 전시와 어떤 점에서 다르고, 어떻게 새로운 전형을 제시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종이와 콘크리트> 전은 건축 아카이브 전시의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 새로움이란 신기하고 오래된 오브제와 유물의 나열을 넘어 해석과 제안으로 균형을 이루는 신선함 같아서 반갑고 부러웠습니다.
금융정보분석원의 이철환 선생님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종이와 콘크리트> 전시회에 다녀온 감상을 공유했습니다. 동의를 구해 옮깁니다. 감사합니다.
서울기록원 준비팀은 12월에 이 전시의 기획자인 정다영 선생님의 초청 강연을 한국기록전문가협회와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7.09.01. ~ 2018.02.18.)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중인 ‘종이와 콘크리트’전을 칭찬하는 사람이 많아 시간을 내어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급히 볼 전시가 아니다. 천천히 하나 하나 시간을 두고 보아야 하고, 다녀와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전시다.
먼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왜 전시를 하는가, 혹은 왜 전시를 보는가.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전시의 주제를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다.
<종이와 콘크리트>전은 8~90년대 한국의 건축운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기획된 전시이다.
큐레이터는 한국의 건축운동이 건축을 전공한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서 준비했을 것이다.
전시를 하는 다른 목적은 전시의 주제가 되는 개인이나 조직, 또는 단체나 시기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국의 건축운동을 이끌었던 많은 단체나 개인들을 전시공간으로 모으는 것은 그들의 활동을 알림과 동시에
그들 활동을 기억하고 기리는 소중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종이와 콘크리트’전은 두 가지 목적을 잘 달성하고 있다.
나는 건축/건축학에 문외한이지만 전시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고, 건축 운동의 성과는 이 전시를 통해 잘 기억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하필 왜 건축이 아닌 건축 '운동'을 주제로 선택해 기획했을까.
건축은 위대한 종합예술이다.
건축 자체가 기술과 예술을 모두 접목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예술 장르가 그렇듯) 건축은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운동을 했던 당시 건축가들이 빈민운동에 참여하고, 사회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는 건축을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건축이 반영하고 있는, 또는 건축에 의해 드러난 사회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전시의 주제는 건축이 아닌 ‘건축운동’을 겨냥한다.
당시의 많은 건축가, 그들이 만든 단체와 조직은 더 나은 건물을 짓고자 하는 열망을 넘어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건축을 사회의 맥락속에서 전시라는 형식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적절한 자료를 찾는 것은 기본이고, 더 많은 노력을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둘러싼 배경을 파악하는데 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전시의 핵심은 전시장에 설치된 각종 영상과 자료가 아니라, 그것을 연결하기 위한 큐레이터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전시장의 벽면에는 건축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시기의 연표가 디자인으로 정돈되어 있다.
일반적인 연표라면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건, 그리고 전시와 직접 관련된 사건만을 나열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전시의 연표에는 예를 들어 ‘한국 최초의 패스트푸드 체인 오픈’ 등과 같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우리 삶의 변화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항목이 많이 들어있다.
그런 연표를 찾고, 건축운동이 보여주는 사회 변화와 함께 묶어내기 위해 큐레이터는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 노고가 짐작이 된다.
또 주요 기록이 들어있는 전시대 위쪽으로는 당시 사회를 잘 보여주는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는데,
건축운동 관련 기록을 보고 고개를 들어 영상을 보면 건축운동이 당시 사회와 어떤 맥락을 갖고 전개됐는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엄청나게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전시지만 사실 우리가 세종시의 대통령기록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신기한 장치’는 없다.
기술은 전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칸막이로 구분된 부스에는 관련 자료를 관람자 스스로 복사할 수 있는 복합기 프린트가 설치되어 있다.
기술적으로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마치 그 당시 건축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인 것처럼 종이를 복사하는 행위를 통해 전시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현란한 그래픽보다 훨씬 더 '경험적인' 전시기법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기록의 출처를 적은 종이를 인쇄해서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도 꽤나 감동적이었다.
관람을 마치고 돌아와 그 종이를 보면 또 한번 전시를 관람하는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전시 기획자가 여러 측면에서 관람자를 배려했다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실 이런 훌륭한 전시를 '기록관리'의 입장에서 언제쯤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 혹은 자괴감도 든다.
또 이 전시를 보면서 기록관리의 목적이 전시 등 활용이라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은
‘기록관리’ 그 자체보다 기록을 둘러싼 배경의 탐구와 조사라는 생각을 했다.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건축 공사중인 서울기록원으로 생각이 연결됐다.
은평구 불광동에 짓고 있는 서울기록원이 이런 수준의 전시를 하고자 한다면 더 집중해야 할 것은
마이크로필름리더기, 고속스캐너 등의 하드웨어 인프라나 기록관리시스템 등의 규격이 아니라
(물론 이런 것들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적으로 이런 부분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록을 둘러싼 서울, 서울사람, 서울의 시간을 이해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서울기록원에 '그냥' 기록연구사가 아니라 서울을 잘 아는 기록관리전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야 진귀하고 오래된 ‘기록’ 그 자체의 전시가 아니라, 기록을 통해 당대를 이해하고, 관련된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전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마지막으로 하나 더, 몇 십년 뒤에, ‘기록운동’을 주제로 전시를 하면 과연 기록을 모을 수 있을까… 지금부터라도 기록을 좀 모아봐야겠다.